결국 수술을 포기했다. 당시 VRE라는 감염균을 보균하고 있던 엄마는 수소문 끝에 감염 병동을 보유하고 있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전원을 위해 수혈을 진행하는 동안 엄마도 느꼈던 것 같다. 우리가, 내가, 엄마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엄마를 처음으로 알코올 중독 치료 병원에 입원시켰을 때가 대략 7년 전이었다. 당시 나는 회계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휴학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과 독서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엄마의 연락은 잘 받지 않았었다. 술에 취해있을 게 뻔했으니까. 그나마 엄마를 챙겨주던 남동생이 군대에 가자 엄마의 알코올 의존은 더 심각해졌다. 아빠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엄마를 집에 데리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엄마와 다시 함께 살게 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지만 더 나은 해결책이 없는 것 같았다. 비어있던 남동생의 방에 엄마가 들어오게 되었다.
우리 집에 들어오면 술은 안 먹지 않을까 했던 기대와는 달리 엄마는 매일 술을 마셨다. 매일 같이 술에 취해 부리는 행패에 나도 아빠도 지쳐갔다. 이모들과 상의 끝에 결국 엄마의 격리 치료를 결정하게 되었고, 여느 날과 같이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엄마를 앰뷸런스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정말 많이 울었다.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엄마에게 화가 났다. 병원에 도착한 후 엄마는 간호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병실로 이동하는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술에 취해 초점 없는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은,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고 소리치고 있었다.
한동안 매일 악몽을 꿨다. 엄마의 눈동자가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는 꿈. 이후로 엄마는 몇 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그때마다 엄마의 눈동자는 내 꿈에 등장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수술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나는 엄마의 눈동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눈동자는 내 죄책감이었다.
엄마를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내가 다시 엄마의 눈동자에 쫓기기 시작한 지 딱 일주일이 되던 날, 엄마는 이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