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엄마는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주로 술친구들이었다. 때때로 어떤 남자와 함께 살기도 했다.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던 때에도 엄마의 소식은 전해 듣고 있었다. 차라리 그 남자와 한 곳에 정착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런데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동네에 가서 술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의 짐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모들과 함께 없는 돈을 끌어모아 마련해 준 월세방의 보증금도 사라지기를 수차례, 집이 없어지니 자연스럽게 그 안을 채우던 가전들은 물론 옷가지들도 자취를 감췄다. 영수증만 가득한 지갑과 신분증, 핸드폰, 입고 있는 옷 한 벌과 안경, 통장 하나, 도장 하나. 엄마의 유품은 이게 다였다. 잠시 집 앞에 외출하는 것처럼 엄마는 매일을 살아내고 있었다. 엄마는 이 세상에 잠시 들른 배낭여행자 같았다.
영정사진으로 쓸 만한 사진도 한 장 없었다. 장례식장 측에서 신분증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만들어주었다. 사진을 가로지르는 홀로그램을 지우고 사진의 크기를 키우고 나니 흐릿한 영정사진이 완성되었다.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유품 외에 엄마가 내게 남기고 간 것이 하나 있었다. 언니였다.
몇 년 전, 아빠로부터 내 위로 언니가 하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빠와 엄마가 만나기 전에 엄마는 이미 결혼을 한 번 했었고, 전남편과 엄마 사이에 딸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평생을 큰 딸로 살아왔는데 언니라니. 어안이 벙벙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며칠 뒤에 주민센터에 가서 엄마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보았다. 엄마의 자녀는 셋이었다. 나와 성이 다른 언니, 나보다 딱 열두 살이 많은 언니, 나에게 언니가 있었다.
페이스북에 언니 이름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혹시나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알고 있는 게 이름 석자뿐인 사람을 쉽게 찾을 수는 없었다. 아빠는 자세히 모르는 것 같았고 이모들에게 물어보기도 뭐해서 그냥 가슴속에 묻었다. 언젠가 만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그랬던 언니를 만났다. 엄마의 임종을 앞두고 병원에 찾아온 언니는, 엄마와 똑같은 얼굴로 많이 울었다. 인사도 나눌 새 없이 함께 상복을 입었다. 엄마를 잃은 날 나에게 언니와 형부, 두 명의 조카라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