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사망보험금의 의미

by 현정

몇 년 전 이모들과 상의해서 엄마의 생명보험을 하나 들어 놓았다. 우리 남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라고 생각하면서 꾸준히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었다. 큰 이모의 아들, 그러니까 이종사촌 오빠가 보험설계사여서 오빠에게 엄마의 보험 설계를 부탁했다. 당시만 해도 엄마가 술에 취해 길거리를 떠돌다가 사고를 당할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20대 초반일 때 엄마는 퍽치기를 당하기도 했었다. 나도 이모들도 엄마가 사고가 나기 전에 병에 걸려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튼 상해가 아니라 질병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사망보험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장례식에서 받은 조의금과 엄마의 사망보험금으로 그동안 밀렸던 병원비와 장례식 비용을 모두 치렀다. 빚이 생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돈이 남았다. 남은 돈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새로운 고민거리가 되었다.


처음에는 동생과 상의 하에 남은 돈을 3등분 해서 세 명의 이모들에게 다 보내드릴 생각이었다. 엄마가 병원 생활을 할 때부터 장례를 마칠 때까지 이모들이 많이 고생하셨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연락을 받은 이모들은 마음은 고맙지만 다 받을 수는 없다고 딱 잘라 거절하셨다. 엄마의 병원비를 계산하느라 생긴 빚 정도만 갚아드리고 얼마의 돈이 나와 동생에게 남았다. 내 앞으로 남겨진 돈은 딱 400만 원이었다.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빚을 갚을까,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나도 독립을 해야 할 텐데 그때를 위해서 보관해둘까, 아니면 지금처럼 돈과 시간 모두 여유 있는 때가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 유럽 여행을 갈까.


저축을 하는 것은 일단 선택지에서 지웠다. 나는 나를 너무 잘 알았다. 아무리 묶어두려고 한들 이 돈은 야금야금 사라질 게 분명했다. 남은 선택지는 두 개. 빚을 갚는 것과 유럽 여행을 가는 것.


내가 가진 빚은 학자금 대출과 서민금융진흥원에서 받은 청년 대출이었는데, 어차피 400만 원으로는 내 빚을 모두 갚을 수 없었다. 학자금 대출만 해도 500만 원이 넘게 남아있기 때문에. 그리고 두 대출 모두 아직 상환일이 도래하지 않은 상태였다. 학자금 대출의 경우 이자지원도 받고 있고.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400만 원 전부를 여행에 쏟아붓자니, 그건 또 뭔가 내키지 않았다. 죄책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 “엄마 죽은 돈으로 여행을 간다고?”라며 나를 손가락질할 것만 같았다. 사실 여행을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내가 나를 질책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의 사망보험금을 어떻게 쓰는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때부터 사망보험금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엄마의 부재에 대한 위로금일까, 아니면 지나온 내 삶에 대한 보상금일까. 전자라면 나는 그 돈으로 절대 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내가 나를 질책하던 것처럼 ‘엄마 죽은 값’으로 유흥을 즐기는 것이 될 테니.


그 돈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어떤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엄마의 사망보험금은 내게 후자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 보험금을 모두 이모들에게 드리려 했었다. 동생이 그렇게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그 돈을 마주하고 싶지가 않았다. 통장에 찍힌 0의 행렬이 왠지 지난 내 인생의 값어치가 되는 것 같아서 솔직히 좀, 불쾌했다. 그 숫자들이 마치 나를 보며 “넌 딱 이만큼만 고생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 정말 힘들었는데.


한동안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일단 빚부터 줄이자 라는 생각에 빚을 갚기로 마음먹었다가도, 내가 지금 아니면 언제 유럽을 가보겠어? 하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올랐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매일 같이 묻고 다녔다. 갑자기 돈이 500만 원쯤 생기면 빚을 갚을 건지 여행을 갈 건지. 사람들은 보통 여행을 얘기했다. 그런데 그 돈의 출처를 알고 나면 주춤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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