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강원도로 여행을 간다. 인제를 시작으로 며칠간 강원도를 돌아다닐 예정이라고 했다. 내게 인제에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다음날 터미널에 내려주겠다고. 고민을 좀 하던 찰나, 친구에게 숙소 사진을 받았다. 안 갈 수가 없었다. 이튿날 나는 친구와 함께 인제로 떠났다.
인제의 밤은 완벽했다. 숙소에는 우리 둘 뿐이었고, 주변에는 나무와 하늘뿐이었다. 산골짜기에 위치한 개인 별장을 방문한 기분이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밝고 둥근달이 떴다. 내가 여기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이.
다음 날, 아침 9시쯤 자작나무 숲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관광버스를 이용해서 단체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우리처럼 따로 온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들의 행렬 중간쯤 나와 친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두 가지의 코스가 있었다. 하나는 50분짜리, 또 하나는 1시간 20분짜리. 우리의 선택은 당연히 50분짜리 코스였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공복인 상태로 3시간의 산책을 하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았던 게 첫 번째 이유였고, 1시간 20분짜리 코스에는 이미 사람이 너무 많아 지나치게 시끄러웠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산책이 시작됐다. 아니, 등산이. 산책을 하러 와서 등산을 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작나무 숲이라고 해서 자작나무가 심어져 있는 숲길을 산책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자작나무가 뭔지도 몰랐다. 이 산에 있는 나무들이 자작나무인가 싶었다. 걷고 또 걷는데 다른 산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가 왜 유명한 거지?’하는 의문이 내 그림자에 붙어 다녔다.
입구에서 예고했던 대로 등산을 시작한 지 50분에 다다랐을 무렵,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샤워를 왜 했을까 싶을 정도로 땀을 잔뜩 쏟아냈고, 생각 없이 신고 온 단화가 발가락을 힘껏 괴롭히고 있을 때였다. 고통 끝에 더 큰 낙이 온다고 했던가. 눈앞에 걸려 있는 자작나무 숲이라는 작품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함박눈이 쏟아진 것 같았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풍경, 여름 속의 겨울, 그날 자작나무 숲의 모습이었다.
연신 감탄을 뱉어내며 숲 속을 거닐다가 숲 한가운데에 위치한 벤치에 앉았다. 네 분의 아주머니들이 다가와 사진을 부탁했다.
“세 장 찍어주세요, 세 장~ 치이즈-!”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한 장 더요!”
고맙다고 인사하며 돌아서 가는 아주머니들에게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딱 엄마의 또래였다.
“저런 아줌마들 보면 엄마 생각이 진짜 많이 나. 저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한숨 섞인 하소연이 허공에 흩어졌다.
등산 장비까지 필요한 코스는 아니었다. 편한 운동화 하나면 충분히 오를 수 있었다. 특히나 그 아주머니들이 올라온 1시간 20분짜리 코스는 등산이라기보다 진짜 산책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주머니들의 등산복이 부러웠다. 어쩌면 저분들에게도 나만한 딸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그 딸들이 부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동화 속 벤치에 앉아 다짐했다. 엄마가 보지 못한 세상을 내가 마음껏 보고 살리라고. 언젠가 엄마를 만나게 되는 그날 내가 보고 온 세상을 모두 얘기해주겠노라고. 그리고 그날엔 꼭, 순간순간 엄마가 그리웠다고 고백하리라고.
그렇게 나는 엄마를 마음껏 그리워하기 위한, 동시에 엄마를 잊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20대 초반에도 해보지 않았던 배낭여행을 시작했다. 유럽 말고, 동남아도 말고, 국내 배낭여행을. 아무 계획 없이.
그날 자작나무 숲은 내게 말했다. 엄마와의 이별이 끝나면 또 오라고. 기다리고 있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