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 ; 양양
배낭여행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고 꼭 들려야지 생각한 도시가 두 곳 있었다. 그중 하나가 양양이었다. 그래서 배낭여행 첫 여행지로 양양을 선택했다.
올 연초, 강원도로 당일치기 가족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물론 엄마 없는 가족여행. 속초와 강릉 사이를 오가는 짧은 여행이었다. 낙산사를 구경하고 나와 주문진을 향해 달라가던 도중, 지금까지 봤던 바다 중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만났다. 차를 세우고 말없이 내린 우리는 각자 그 황홀한 바다에 빠져들었다. 휴대폰을 꺼내 지도 어플을 켰다. 그리고 현위치 버튼을 눌렀다. 이름 모를 바닷가에 빨간 점이 떠올랐다. 네가 지금 있는 곳이 바로 여기라면서. 지도를 캡처했다. 언젠간 꼭 다시 오리라고.
그 바다에 다시 가지는 못했다. 안타깝게도 뚜벅이 여행인지라. 막상 다시 가보니 예전만큼 아름답지 않을까 겁도 났다. 그냥 그때의 눈부셨던 바다를 마음속으로 품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여행은 시작됐다.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 다다랐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저녁으로 먹을 것을 사들고 가기 위해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시장까지 걸어서 14분, 약 900m. 매일 만보 걷기도 하고 있는데 이 정도는 껌이지 하면서 호기롭게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배낭.
배낭여행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던지라 모든 것이 서툴렀다. 내 몸만 한 가방은 어딜 가든 민폐였고 장애물이었다. 3주가 될지, 한 달이 될지 모르겠는 무계획 여행이었던지라 커다란 배낭은 짐으로 가득했다. 세상 모든 걱정을 다 안고 살아가는 사람인 나는 무엇 하나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시장 구경은 재밌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의 최대 단점이 바로 식사다. 먹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다 사들고 올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오늘은 왠지 회가 먹고 싶지는 않아서 닭강정 한 상자를 사들고 숙소로 향했다.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 다짐한 게 하나 있었다. 배낭여행인 만큼 최대한 택시는 타지 말자. 웬만하면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 그런데 이 다짐은 첫날부터 무너져버렸다. 숙소까지는 버스로 40분, 택시로 15분. 가방은 무거웠고 버스 정류장은 멀었다. 서울과 달리 버스 배차간격은 길었고, 같은 버스인데도 왜 다 목적지가 다른 건지 자꾸 방면을 확인하란다. 사실 이것저것 다 핑계고 그냥 빨리 숙소에 들어가서 가방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배낭여행을 시작한 지 다섯 시간 만에, 나는 배낭여행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택시를 탔다. 기사님과는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숙소에 다 와갈 무렵 기사님이 길을 잘못 접어들었고, 골목을 되돌아 나오면서 결제를 했다. 미터기는 꺼졌고 나는 그냥 내리겠다고 했다. 어차피 숙소 코앞이라 괜찮다고 했더니 기사님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냥 타고 가. 짐도 많은데.”
첫 배낭여행에 길을 잘못 접어든 택시, 들고 달리기엔 너무 무거운 짐과 전혀 연고도 없는 동네까지. 최대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나의 두려움을 단 번에 씻어내려 주는 따뜻함이었다. 그 순간 왜 엄마가 생각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고는 택시에서 내렸다. 바다가 보였고, 어쩐지 엄마가 느껴졌다. 양양의 바다는 눈물 나도록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