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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May 14. 2021

선크림 프리 3년 차, 달라진 게 있다면?

이 시국이 되면서 ‘파데 프리’ 메이크업이 각광받고 있다. ‘파데 프리’란 ‘Foundation free’의 줄임말로, 파운데이션이나 쿠션 등을 사용한 피부 보정 단계를 덜어낸 메이크업을 말한다. 매일 하는 화장에, 일상이 되어버린 마스크 착용까지, 바야흐로 면피(面皮) 수난시대다. 때문에 아직 마스크를 벗어던질 수는 없으니 모공을 덮는 화장품이라도 걷어내 주자는 게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마스크 때문에 어차피 피부 잘 보이지도 않는데 뭐!’라는 마음도 한몫했을 테다.




파데 프리를 넘어 ‘선크림 프리’ 생활을 시작한 지 3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럼 뭘 바르고 다니느냐? 아무것도 안 바른다. 아침 세안 후에는 스킨로션을 열심히 바르고, 얼굴에 혈색을 불어넣기 위한 틴트 정도만 사용한다. 반 토막 난 눈썹은 진작에 문신으로 채워놓았다. (솔직히 문신이나 틴트는 그냥 내 얼굴인 걸로 인정해줘야 한다.)  물론 내가 굳이 화장을 하거나 옷을 갖춰 입어야 하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긴 하다.


선크림 프리를 시작한 건,

1. 매일 선크림을 바르고 그걸 씻어내기 위해 또 다른 생활화학제품을 사용하는 것
2. 그냥 자외선을 직빵으로 맞고 종종 피부과에서 레이저와 같은 시술을 받는 것

이 둘 사이에 별반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주워들은 뒤부터였다. (내 기억에 2번이 오히려 더 낫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건 너무 기억 미화 혹은 합리화인 것 같으니까 그냥 이 정도로 넘어가겠다.) 솔직히 이 말의 진위 여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피부가 괴로운 거라면 내가 덜 귀찮은 걸 택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어쨌든 선크림 프리 3년 차에 접어들어 무엇이 달라졌는가 하면.


1. 아침 준비 루틴과 세안 단계가 굉장히(!!!) 단순해졌다는 점

나 같은 파워 저녁형 인간들은 모두 알고 있다. 아침의 5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선크림 바르고 흡수시키고 어쩐지 번들거리는 얼굴에 괜히 파우더 한 번 두드려 주고, 그러고 나면 안 그래도 소심한 이목구비가 모두 자기주장을 잃은 것 같아 쉐딩도 좀 해주고 눈썹도 덧칠해주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 보면 지각이다.

저녁이라고 한가하겠는가.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 잡히기만 해), 내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한 클렌징 워터, 클렌징 오일, 폼 클렌징, 닦토.. 이중삼중 세안은 또 얼마나 귀찮은지. 씻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

선크림을 안 바르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메이크업 제품들과 점점 멀어지고 덕분에 추가 세안을 해야 할 필요도 사라졌다. 이것만으로도 하루에 최소 1시간은 세이브되는 기분이다. 대만족.


2. 화장품에 지출하는 비용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점

1번에서 언급한 내용과 비슷하다. 메이크업을 자주 하지 않게 되니 관심도 떨어질뿐더러 새로운 화장품을 구입하지도 않게 된다. 클렌징 제품의 경우 원래 3개월에 한 번 구매했었다면, 지금은 6개월에 한 번 구매해도 될 정도로 사용 기간이 늘었다. 매일 사용하던 선크림은 아예 구매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걸로 아껴지는 비용도 꽤나 쏠쏠하다.


3. 혹시나 화장이 뜨거나 뭉치치 않았는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점

나처럼 수분 부족형 지성인 사람이 건조한 사무실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하루 종일 근무한다면 화장이 당연히 뜰 수밖에 없다. 그것도 되게 지저분하게. 선크림만 발라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덥고 습한 여름, 이마에 난 땀을 급하게 소매로 훔치면 아뿔싸, 옷소매에 하얗게 선크림이 묻어 나온다.

선크림에게서 해방을 선언하고 난 뒤, 혹시나 화장이 벗겨지거나 뜨지 않았을까 불안해할 일이 없다. 손거울을 신체 일부인 양 들고 다닐 필요도, 얼굴이 비쳐 반사되는 곳마다 멈춰 서서 상태를 확인할 필요도 없다. 손거울은 오로지 눈에 눈곱이 꼈는지, 치아에 틴트가 묻었는지 확인하는 용도일 뿐이다. 


4. 피부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는 점?

솔직히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다. 자외선이 주름이나 기미, 피부 처짐 등을 유발하고, 염증이나 피부암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피부과와 더 친하게 지내야 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직까지 별다른 문제는 없다. 화장품 등 각종 생활화학제품에서 멀어졌다고 피부가 더 좋아진 것도 아닌 것 같다. 아, 약간 타긴 했다. 그치만 난 원래 까마니까.


5. 오히려 화장이 즐거워졌다는 점

가끔 화장을 하고 싶은 날이 있다. 해야만 하는 날도 있고. 이럴 때 오히려 좀 설렌다. 화장하는 일을 엄청 즐기게 되었다고나 할까. 예전에는 화장이 일이었다면 지금은 취미가 된 느낌이다.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얼굴로 생활하다가 가끔 풀메이크업된 얼굴을 거울 속에서 맞이하면 꽤 기분이 좋다. 솔직히 화장한 얼굴이 더 예쁘긴 하니까. (여담이지만 불과 5-10년 전만 해도 나는 엄청난 메이크업 덕후였다. 메이크업 실력에 자부심 쫌 있는 편.)




선크림 프리는 단순히 지금 나의 선택이지 신념 같은 것은 아니다. 고로 추천하지도 않는다. 그냥 내 경험담을 들려주는 것일 뿐 그 이상의 생각은 없다. 선택은 늘 개인의 몫이니까.


+) 첨언하자면 나는 맨얼굴에 엄청난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모공 하나 없는 아기 피부의 소유자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도 성인 여드름과 짙은 다크서클에 신경 쓰는 30대 여성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다닐 수 있는 건, 그냥 내가 내 맨얼굴을, 그리고 맨얼굴일 때의 편안함을 좋아해서다. 어쩌면 선크림 프리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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