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통과한 시간을 돌아보며

by 수현


한바탕 바빴던 가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일상으로 돌아와 창문을 열어 집안 공기를 환기시키니, 바깥바람이 매서워 서둘러 외투를 꺼낸다. 시간은 늘 그렇듯 바쁜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서운한 마음에 애꿎은 달력만 매만진다.


아직 올해가 두 달이나 남았지만, 나의 한 해가 어땠는지 빼곡히 적은 다이어리를 펼쳐본다. 마주하는 모든 것에 치열했던 날도, 그런 내가 버거웠던 날도, 누군가로 인해 행복했던 날도, 그 누군가가 다름 아닌 나였던 날도 모두 애틋하게 느껴진다. 기껏해야 두세 줄짜리 짧은 일기였지만 마음에 남는 몇몇 날을 꺼내본다.


2024.12.31

해가 넘어간다. 변화와 도전이 있었지만 불안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서른의 내가 서른하나의 나를 안아준다. 믿고 의지할 곳은 결국 나의 품. 자신감을 가지자. 자신감을 가져야 자신감이 생긴다.

>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외로웠던 시기. 지금의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 — "나를 믿어야 해."


2025.01.04

24시간 중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한 치의 지루함 없이 순수한 즐거움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다시금 느낀 하루였다. 할 말이 떨어지는 날이 올까?


2025년 겨울의 어느 날

1 알 수 없는 불안은 우울과 손을 잡고 찾아온다. 약해진 마음은 단단한 나를 모양내어 잘라낸다. 자르면 자를수록 줄어드는 나의 면적. 해를 좇고 사람을 만나야지. 부지런히 살아내자.
2 어떤 관계에서든 — 설령 아주 가까운 사이라도 — 결국엔 내가 나다워야 한다. 상대를 위해 내 마음을 모른 척하다 보면 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하되, 당연하게 아프지는 말자.
3 지금 보니 나는 겁이 난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단정 짓는 비겁하고 못난 버릇을 가지고 있더라. 나의 오류와 부족함을 인정하고, 쉽게 재단하지 말자.

> 괴로운 순간에도 배울 점을 찾고, 돌파구를 만들려 애썼던 시간들이 모여 나를 성장시켰다.


2025.03.24

나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분명히 태어난 이유가 있을 건데 그 이유를 아직도 못 찾았다. 20대에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태어났다고 믿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통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도움을 참 많이 받으며 살고 있다. 그들의 응원이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세웠다.
뭐 하나 해내지 못하는 내가 밉다. 내가 나를 미워하니 얼굴도 점점 미워진다. 그래서? 이것저것 탓하며 미워만 하는 못난 나를 깨고 나아갈 때다. 소멸되는 하루하루를 붙잡아보려 한다. 잉여의 시간을 붙잡고, 내 삶을 채워야 한다. 어차피 주어진 생이라면 고통은 잊고 즐거이 살아야지.
내일은 새 옷을 입고 좋아하는 걸 하러 가야겠다.


2025.06.22

머릿속이 복잡해 잠을 설쳤다. 내 머리니까 내 생각도 내 입맛대로 통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가만 보면 ‘하고 싶지 않아.’ 외치는 마음속엔 ‘하고 싶어.’라는 진짜 욕망이 숨어있는 듯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떠오르는 마음을 눌러 담고, 부푸는 기대를 터트리는 일의 반복 같다. 실망하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 들키지 않으려 혼자 하는 숨바꼭질.


2025.06.27

과연 펜이 나올 것인가! 내 소중한 볼펜... 쓸모를 잃으면 버려지는 법. 나의 쓸모를 찾자. 그래도 넌 안 버려. 힘을 내, 힘을 내!!!!

> 펜 하나에도 정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내가 바보같으면서도 좋다. 이 시기의 나는 나의 쓰임을 찾기 위해 분투한 것으로 보인다.


2025년 여름의 어느 날

1 오늘은 기어코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옷을 입을 때부터 땀이 났지만 에어컨 밑에서 편안한 상태로 집에 누워 쉬는 순간보다 생기가 돌았다. 나의 체력과 활력은 반비례한다. 꼭 한 번 와보고 싶던 집 근처 카페에서 새로운 커피를 시켜놓고 일기를 쓴다. 1시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외관도 기분도 한껏 달라졌다. 공간만 바뀌어도 완벽하게 달라지는 나. 1시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달라지게 될까? 다음 달의 나는? 내년의 나는?
2 일도, 러닝도, 취미도 열심히. 배 터지게 먹은 복숭아처럼 달콤한 여름을 나고 있다.
3 기억나는 행복 조각들 — 꾸준한 러닝, 오늘 펼친 책의 첫 번째 단편, 귀여운 동물들, 공포 방탈출, 약속 없는 주말의 평화, 한강 피크닉

> 7월은 회복에 주력했던 달. 그 덕에 마음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2025.08.25

요즘 자주 생각한다. 내 하루는 결국 내가 만든다는 것을. 궂은날을 보냈다고 해서 그 기분에 잠식될 필요는 없다. 얼른 벗어나 꽃과 풀 가득한 나의 '비빌 언덕'으로 돌아가면 된다. 기억력이 나쁜 내가 싫었는데, 어쩌면 그 덕에 덜 아프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2025.09.08

눈 내리는 바깥을 바라보다가도, 벚꽃 날리는 봄날에도 눈물짓던 때가 있었는데, 벌써 뜨거운 여름 가고 가을바람이 분다. 가을은 떠나보내는 계절. 코로 숨을 크게 들이켜 가을을 발끝까지 담아야겠다.


2025.09.11

원망하기엔 나는 이 삶을 너무도 사랑한다. 해질녘 노을도, 서울의 야경도, 하늘에 걸터앉은 둥근달도. 그렇다면 어쩌겠어. 사랑하는 이 세계를 더욱 껴안아야지.


2025.10.01

기깔난 10월을 맞이하고 싶었는데, 10월은 그저 10월이고 나는 여전히 나다. 마음에 드는 나도, 아닌 나도 평생 동안 그저 나일뿐. 욕심에 목매지도, 그렇다고 게을러지지도 않게 중심을 잘 잡자.


한 해를 돌아보며 느끼는 것은, 나는 여전히 불완전하지만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계절에도 지금처럼 나를 지키며 성장하고 싶다. 붕어빵과 눈사람을 기다리며 마음에도 슬슬 불을 때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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