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말괄량이 기질을 타고나 늘 온몸에 상처를 달고 다니는 아이였다. 조심성이 없는 주제에 모험심이 많아 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리거나 눈을 감고 걷기를 즐겼고, 이유도 모르게 멍들고 흉이 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과거의 내가 몸에 남긴 흉터처럼 태어나 죽는 날까지 부딪히고 스친 모든 추억은 흔적을 남긴다. 내게도 뇌의 구석구석 진하게, 또 연하게 남은 흔적들이 제법 있다. 떠올리면 슬며시 웃음이 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보기만 해도 따갑고 괴로웠던 '시절의 아픔'이 겨우 매듭진 것도 보인다.
뇌에 남은 흔적은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그것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해서 발걸음을 우뚝 멈춰 세우기도, 조각의 기억을 한 순간에 눈앞으로 불러오기도 한다. 일면식도 없는, 어쩌면 그 순간 이후 다시는 영영 마주치지 못할 누군가의 뒷모습을 따라 떠다니는 향기를 맡고는 옛 기억에 웃음 짓게 되기도 하고, 진부한 노랫말 같지만, 생경한 거리에서 마주치는 익숙한 멜로디를 듣고 순식간에 시간을 여행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한다. 작은 부피에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저장해 두는 USB처럼 내 머릿속에도 언제든 불러낼 수 있는, 저장공간 넉넉한 드라이브가 있는가 보다.
갓 성인이 되었을 적 아르바이트를 했던 치킨집에서 양파를 썰다 채칼에 엄지 손가락을 베었는데, 아직도 무심코 캔음료를 따려 엄지손가락에 힘을 받치면 온몸에 힘이 빠지며 당황한 내가 서있는 치킨집 주방 한 켠이 떠오른다. 콜라 그깟 것 별 것도 아닌데 대체 이 놈의 흔적은 언제 사라지는 건지 마주할 때마다 참 신경이 쓰인다. 맷집이 안 생기는 건 기억의 흔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흔적들에게서 피어난 새살이 새로운 나의 일부가 되고 빠짐없이 데이터화되어 나를 보호한다. '채칼을 다룰 땐 조심해야 해.', '미워질 정도로 사랑하지 마.'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 수록 조심하게 된다. 이것은 어른의 법칙이다. 낯선 환경에 놓이기를 경계하고, 어떤 종류의 마음이건 간에 깊어지는 건 아무렴 피하고 싶다. 헬멧이고, 보호대고, 잔뜩 둘러맨 지금이 참 안심은 되는데,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울퉁불퉁 못생겼어도 저 기억은 참 뜨거웠는데, 그때의 내가 참 기특했는데. 거울 속 나를 가만- 본다. 재미없어 좋겠다 너는.
이번 주는 비가 많이 내렸다. 역시 장화를 꾸역 우겨 신고 외출했던 나는 오늘 공원으로 러닝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비 좀 맞으면 어때, 날이 이렇게 시원한데! 기왕이면 앞으로 내게 남는 흔적은 밉지 않게 아물었으면 좋겠다. '아팠지만 참 소중했어.' 웃으며 더듬는 흔적이면 좋겠다. 또한 어딘가에 새겨진, 혹은 앞으로 내가 새겨 나갈 나의 흔적 역시 그렇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