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더러운 얘긴데 써도 돼요?

왜 글을 쓰는지 아는 아이들

by 책사이애


"선생님 더러운 얘긴데 써도 돼요?" 아이들에게 나눠줄 소금 빵과 카스텔라 케이크를 조각내고 있는 내게 아이가 묻는다. 평소에도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 설전이 설왕설래하는 친구다. 무슨 이야기가 쓰고 싶어 저러나.

"그럼! 되고 말고. 하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더럽게 만들기 위한 글이기만 하면 안 돼. 왜 그 더러운 이야기가 너의 글에 필요한 건지 탄탄하게 설명하면 되는 거야."


오늘 아이들과 쓸 글은 일기 쓰다. 일기, 단순한 '하루의 기록'으로만 해석하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을 수 있다. 반대로 뭔가 대단한 일들을 써야 한다는 압박(대부분, 사람들에게 글이란 걸 평범하거나 소박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다)도 동시에 느끼는 일기 쓰기는 어른이나 아이나 어려운 글쓰기다. 오늘만큼은 아이들에게 왜 일기를 써야 하는지를 꽤 정성 들여 설명해야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일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 학교나 부모님께서 권해서 일기 쓰기를 했고, 학교에서도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단조롭고 납작했다. "얘들아 너네 일기를 왜 써?"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자신들이 생각한 이유를 앞다투어 꺼낸다.

저는 안 쓰는데요!

일기는 그날 그날에 기록이에요.

시간이 지나서 보면 추억이 되려고 쓰는 거예요.

나중에도 기억하려고요.


예상한 대답들이다. 틀린 대답은 하나도 없지만 무조건 맞다고만 하기에는 입이 근질거렸다.

"그럼 얘들아, 그날그날을 기록하고, 추억이 돼야 하고, 잊어버리기 전에 기억하려는 건 왜 그런 거야? 왜 그런 걸 기억하고 기록하는 거야?"


하고 싶은 말에 조금 더 다가서기 위해 시간을 충분히 주기로 한다. 한참을 고요하던 아이들. 그중 모자를 푹 눌러쓴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는 말한다.

"선생님 혹시 일기를 통해서 무언가를 알아내야 하는 건가요?"


영리한 아이라 평소에도 전투적이고도 똑똑하게 글을 써내는 친구다. 눈치가 빠른 아이는 선생님이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을 어느 정도 짐작한 듯했다. 조금 더 질문을 붙여주면 아마도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칭찬을 담뿍해주고는 칠판에 크게 적었다.


'나를 알아 가기'


일기는 쓰는 과정에서 또는 쓰고자 하는 태도에서 또, 쓰인 기록에서 누구보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쓰는 것이라 설명했다. 마냥 숙제처럼 쓰는 일기 말고 진짜 너희들이 쓰고 싶은 이야기 속에 본인이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이들은 뭔가 단박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꽤 그럴싸해 보이는 선생님의 설명에 내심 기뻐하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와우 일기 쓰기가 그렇게 멋진 일이었어?' 하는 표정들 말이다.


일기라는 글쓰기가 가진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는 곧바로 수업을 시작했다. 몇몇의 규칙과 육하원칙, 날씨와 덧붙여 잘 쓰인 일기의 예까지 설명이 끝나자 아이들은 연필을 들기 시작했다. 어느덧 글쓰기가 2년 차에 접어든 이 친구들은 내가 설명을 이어 가는 순간조차도 아이들은 마음속으로 이미 글로 써내릴 상황과 단어들을 부지런히 떠올렸을 것이다. 집중해서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아이가 대뜸 질문을 해온다. 진짜 더러운데, 이 얘길 써도 되겠냐고. 아이는 쓰고자 하는 문장들의 방향을 점검하며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가장 먼저 글을 완성한 그 친구가 나에게 손을 번쩍 든다. "선생님 다 썼어요!"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이미 다 끝났다고 하니 뭔가 아쉬워 아이글이 쓰인 종이를 받아드는데 어이쿠. 아이의 글은 이미 충분히 잘 쓰여 있었다.


아이가 더럽다고 표현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자 숨길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쿡쿡 웃음을 참으며 손으로 입을 가리자 옆에서 열심히 글을 쓰던 아이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주의를 기울인다. 집중이 깨질까 조심스럽게 어서 쓰던 글을 마저 쓰라고 말하고는 아이의 글을 조금 들여다본다. 수정할 것도 표현이 어색한 것도 없다. 최근 문단 나누기를 배운 아이들은 이후 내가 부러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문단으로 나누어 보며 스스로 연습한다. 저학년 친구들과 수업할 때 내가 가장 감동스럽게 느끼는 지점 들이다. 배운 것을 꼭 써먹어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잘 가르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이렇게 매 순간 아이들을 통해 배우게 된다.


'더럽다'라고 이미 밑밥을 잔뜩 깐 아이의 글은 아니나 다를까 '똥'에 관한 이야기였다. 퍼뜩 든 생각이, 아이의 글이 전과 다르게 매우 유쾌하고 새로웠다. 이 친구는 관심사가 많지 않아 대부분의 글은 자신이 지금 온전히 빠져 있는 축구에 관한 얘기들 뿐이었는데 일기에서 똥이라는 소재를 언급하며 이전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재미있는 글을 쓴 것이다. 아이가 지난 주말 부모님과 할머니 밭에서 무를 뽑았고, 그 과정에서 대변이 급한 아빠가 도리 없이 삽으로 땅을 파 대변을 처리하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아이의 글만으로도 그날의 상황과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아이를 비롯 이 공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아이들 모두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순간의 경험과 경험 속에서 느낀 감정을 정성 들여 꾹꾹 눌러썼다. 마지막 자신의 글을 읽고, 그것에 친구들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아이들은 연신 깔깔거리며 웃었다. 수업은 끝이 났지만 친구들과 머물렀던 시간 속 웃음과 뜨거움은 여전히 공간 안에 남아 있다. 다음 시간 친구들이 같은 자리에 앉았을 때 이 따뜻함이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되살아나기를 바라본다.



이미지 <우리반 문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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