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cup time 250904
둥둥 -이유리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 중에서]
“당신은 가족도 연인도 아닌 타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면서 대가를 바라기는 커녕 한 치의 망설임도 걱정도 없었어요. 그저 상대방의 안위만을 염려했고 어떻게 죽어야 그에게 피해가 없을지만을 생각했죠. 그때 당신의 뇌파는 아아,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웠어요.”
얼마전 우연히 본 영상속에서 슈퍼 스타 이효리님이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본 적 있냐고, 자기는 정말로 누군가를 사랑해보고 싶다고. 태어난 직후부터 수십년을 살아오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하나. 그 무수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면 그녀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무엇이란 말인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뭘까? 한동안 물음이 꼬꼬무 온 마음을 어지럽혔다. 사랑의 크기나 강도, 농도와 온도를 잴 수 있는 리트머스지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게 있다고 해도 믿지 않을지 모를일이지만 말이다. 퍼뜩, 자식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지 싶다가도 진정한 사랑일까? 금세 의구심이 든다. 게임 속 캐릭터를 키우기 위해 실제 자기 자식은 굶어 죽게 만드는 부모에게 사랑은 무엇일까? 도대체 어떤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
소설 속 은탁은 무더운 여름 날 우연히 마주친 15살 아이돌 지망생 형규를 만나면서 하나의 세계를 건넜다. 그저 “고마워요 누나”였다. 그녀가 느낀 그 강렬한 사랑은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이성의 끌림도, 동경도, 팬심도 아니었다. 이후 자신이 가진 모든 력, 그러니까 재력, 체력, 노력, 급기야 꼼수력까지 총 동원해 형규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은탁의 공세에 차츰 인지도가 오르고 있지만 형규는 대마에 손을 댄다. 이 대마마저도 은탁은 형규를 위해 공수해주는데 그 대마가 든 캐리어와 함께 물위에 둥둥 떠있는 상태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고로 물에 빠졌고, 얼결에 붙잡은 캐리어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운이 좋아 발견된다고 해도 캐리어 속 대마가 들통나면 형규가 위험해진다고 판단한다. 대마를 유실하기 위해 스스로 가방을 열어 물 속으로 가라 앉기를 선택하고 만다.
은탁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정말이지 모든 걸 쏟아 붓고 그것마저도 부족해 상대가 빠질 곤경에 자신을 먼저 빠트려 곤경을 막아주는 일. 소설은 그녀가 형규에게 느끼는 감정이 결코 소유욕이 아님을, 정말이지 순수한 애정임을 이야기한다. 읽는 내내 크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순수하지 않다면 그것이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그 사랑을, 순수하고도 광활한 사랑을 받는 대상인 형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딘가, 생면부지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는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첫 눈에 반한 통증같은 강렬함도, 눈빛을 마주하고 선 온기도, 그 흔한 인사도 한번 나눠보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눈 앞에서 생과사의 경계에 섰을 때 앞뒤 잴 것 없이 생으로, 생의 선 안으로 그 사람을 끌고 오기 위해 자신을 밧줄로 쓰는 사람들. 이효리님이 던진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행위를 나는 스스로 밧줄이 된 사람들이라 대답해본다. 그대, 단 한번이라도 누군가의 밧줄이 되어본 적 있는가?
#한컵사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