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보이는' 것이 뭣이 중헌디?

달리는 몸에 관하여

by 책사이애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어르신과 마주 앉았다. 친정엄마 연배와 비슷한 어르신이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나에게 꼭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며 만든 자리였다. 누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어안이 벙벙한 것도 잠시, 2년 가까이 매 달 보는 멋쟁이 어르신과 이런저런 사담을 나눌 기회가 생겨 거두절미, 유치원생처럼 어르신 뒤를 졸졸 따라나섰다. 깔끔한 일식집에서 스시를 먹고 근처 카페로 이동해 앉자마자 대뜸 하시는 말씀이 "선생님, 너무 말랐어요. 그렇게 약하면 나중에 나이 들어서 뼈 상해요. 잘 먹고, 운동하셔야 해요!" 아마도 진즉부터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신체 중 유난히 가느다란 부위가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목과, 팔목, 발목이다. 눈에 잘 보이는 부위다 보니 언뜻 보면 마른 체형에 가까워 보일 수 있다. 덮어놓고 "살 좀 쪄!"라는 말을 이전에도 수없이 들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신체를 두고 '저주받은' ooo이라며 한탄하기도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축복받은' ooo에 가까웠으니 살아오며 덕을 전혀 보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아무리 살이 쪄도 쉽게 표가 나지 않는 몸, 그렇다. 내 몸은 축복받은 몸에 가깝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것이 '뭣이 중헌디?' 건강은 '보이는 것'과는 크게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마흔의 중반이 되니 명징하게 알 수 있다.


얼마 전 8월, 러닝계에서는 레전드급인 가수(라는 직업이 이제는 어색하지만) 션의 광복절 기념 815런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마라톤 풀코스 거리인 42.195km의 두 배인 81.5km를 쉬지 않고 완주하는 션의 행보는 무려 6년간 이어졌다. 어떻게 사람이 80km를 하루에 뛰어? 처음엔 반신 반의 했다. 막상 태극기를 휘날리며 완주 테이프를 끊는 그의 모습은 반의를 반신으로 모두 보내 전신을 완성케 했다. 해내는 사람이 있구나! 시간 기록을 보면 7시간이 넘는다. 7시간 넘게 오직 끝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발자국을 떼는 션의 모습에서 나는 단순한 대단함을 너머 경이를 느낀다. 그런 션의 얼굴, 자세히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주름 투성이에 검게 그을리고 수분기가 가신 할아버지 얼굴에 가깝다. 션을 이야기할 때 상대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달리기를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대부분,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은 대뜸 '늙어 보이는' 션의 얼굴부터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보란 듯이 얼마 전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영상을 공개해 실제 그의 신체는 20대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렸다. 검사한 의사는 굉장히 놀라워했다. 의사 본인도 이런 수치는 본 적이 없다며, 뼈를 비롯 혈액과 근육등 신체 전반의 건강상태가 매우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건강해 보이는 것과 실제 건강한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반대로 늙어 보이는 것과 실제 늙은 것에도 보이지 않는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늙었다는 것은 비단 생년 나이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르신은 60대가 되면서 병원을 마실 가듯 가셨다고 했다. 신체의 몇몇 부분을 수술로 떼어내고 또 여기저기 연쇄적으로 쇠해지는 몸을 감당하기가 버겁고 또 젊었을 때 돌보지 않은 아둔한 치기를 후회했노라 말씀하셨다. 그러니 아직 40대, 팔팔한 선생님은 하루빨리 관리를 시작하라는 조언이 이어졌다. 70대가 다 된 어르신은 말씀과는 다르게 굉장히 건강해 보이셨다. 늘 옷매무새에 신경을 쓰고, 화장을 곱게 하신다. 손을 보면 일생 고된 일은 해보지 않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여전히 곱고 늘 3cm 높이의 미들힐도 신고 다닐 만큼 척추나 다리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물론 이 모든 건 그저 어쩌다 한번 만나 잠시 시간을 나누는 사이에서 손쉽게 발견할 수 있는 '외모'일뿐이고, 실제 어르신의 건강상태를 알 수는 없다. 그것처럼 어르신 또한 그렇게 만나는 나의 건강상태를 여리한 팔목과 움푹 파인 얼굴 윤곽 광대뼈로 추정했을 터였다.


"은정님, 제가 보기에는 이래도 운동 많이 해요!" 기다렸다는 듯 주먹을 꾹 쥐며 최근 도드라지기 시작한 전완근과 이두근을 보여준다. 한 여름에도 쉬지 않고 야외 달리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그을린 피부에 힘을 주자 발칵 솟는 근육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그런 나의 팔에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어머나! 선생님, 보기와는 다르네요!" 말이 나온 김에 자랑이 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운동 기록용 SNS를 열어 폼을 잡고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자 눈보다 더 큰 입이 떡 벌어진다. "세상에! 이게 선생님이라고요?" 옷 속에, 그리고 숨겨진 자세 속에 부지런히 가꾼 몸이 탄탄하게 존재한다. 뼈 걱정은 노! 인바디 수치상 골질량이 '우수'에 가까운 나는 단백질과 체수분 수치도 높아 운동을 부지런히만 해주면 탄탄한 몸이 잘 유지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타고났다.


건강한 몸을 만드는 이유가 단순한 노화의 예방이나 신체적 건강만은 아니라고 말씀드리며 달리는 삶으로 들어선 후 달라진 일상과 자연스럽게 몸을 돌보고 가꿔가는 것의 의미를 한참 이야기 나누었다. 쉰이 넘으면서부터 갱년기 증상처럼 몸과 마음이 눅진해져 고민이 깊다는 관장님도 옆에 앉아 계셨는데 40대에 운동을 시작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며 이제라도 '걷는' 운동부터 시작해야겠다 두 눈을 반짝이셨다. 몸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아령을 들고, 플랭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상태로 더 오래, 더 길게, 더 즐겁게 달리기 위해 운동한다. 달리기로 얻은 소득은 비단 심폐지구력만이 아니다. 몸의 모든 부위가 달리는 몸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서 마주치는 나를 누구보다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게 만나는 나는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던 나이고, 생경하지만 반갑고 생각보다 멋진 모습이라 자꾸만 끌어안고 싶어진다.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며 한탄하고 있다면 달리기를 시작해 보길 바란다. 어느 날 멋진 스스로를 두 팔 벌려 꽉 안아줄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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