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내는 사람

'잘'을 빼고 그냥 '하는' 사람!

by 책사이애

“당신 참, 열심히 산다.” 저 너머에서 나직이 읊조리는 남편의 말에 마음속 스위치가 켜진다. “그렇지! 나 진짜 열심히 살지?” 투정 부리듯 쨍하고 쏘아버리고는 통화를 끝냈지만 남편의 한마디에 잠시나마 컴컴했던 마음속 방안에 훤해졌다.

잘하고 싶어 내 것이면 무엇이든 갈아 반죽을 만들 때가 있었다. 혹여 상대의 무엇이 필요하게 될까 싶어 그전에 내가 가진걸 탈탈 털어 재료를 만들었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고 또 잘 해내야 하는 부담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잘하라고 하지 않았지만 잘 해내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것 같은 시절이었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매번 나의 반죽은 옹골졌고, 상대에게 꽤 높은 만족감을 주었음에도 스스로는 늘 먹다 남은 찌꺼기까지 다 처리하고도 그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내가 먹기 위한 요리가 아니라 상대를 만족시키기 위한 요리에서 내가 가져올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런 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잘’을 빼기로 한 것이다. 계기는 단순했다. 그동안 나는 ‘잘’했다고 생각했던 믿음이 사실 착각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내가 한 일들이 상대에게 만족을 주지도, 또 감동을 주지도 못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착각이었다. 내가 ‘잘’하고 있었다는 착각.

잘하기 위해 기울였던 그간의 애씀이 아깝다는 생각에 한동안 몸서리를 쳤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이렇게 애쓰는데! 노력하는데! 이걸 몰라? 느닷없이 몰아치는 억울함에 며칠밤을 괴로워하기도 했고, 혹여 누군가 만족스럽지 못한 눈빛이나 태도를 보이면 화가 나기도 했다. ‘내가 이걸 위해서 얼마나 애썼는 줄 알아? 근데 그 표정은 뭐야?’


잘하고 못하고 가 온전히 상대의 평가에 따라 좌우된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나는 과감히 선방을 날리기로 마음먹었다. 마주하는 상대의 태도를 무시하는 게 아닌 그것과 무관하게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서 만족감을 찾기로 한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일테니 스스로에게 보이는 면면들로 나를 들여다보자. 단순한 일조차 꽤 많은 정성을 들이고, 작은 성취에도 누구보다 축하해 주었다. 끊임없이 생각의 활로를 만들어 냈고 읽고 쓰는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사실, 그런 결말로 귀결되는 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부서져도 보고, 무너져도 보고, 망가져도 보면서 단단해진 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마흔의 중반, 여전히 ‘잘’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꾹 붙잡아둘 순 있는 건 그간 내가 나에게 보여준 모습들 덕분이다. 누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모습에서조차 ‘내가 알잖아!’로 되받아치니 어느 것 하나 아쉽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잘하는 사람보다 ‘해내는 사람’이라는 슬로건을 스스로에게 내걸어 매 순간 해내는 나를 누구보다 응원해주고 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의 그 한마디는 아무도 모르고, 또 몰라도 상관없다 생각한 해내는 나를 누군가는 알아보고 또 응원해 주는구나 싶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왔다. 매 순간 열심히 해내는 나는 잘하는 사람일 수 없고, 또 그런 사람이기도 싫다. 오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묵묵히 해내는 것으로 나의 하루를 일으켜 세우기로 한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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