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달리기와 오늘의 달리기는 다르다
처음 러닝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았다. 러닝 용품에서부터 용어, 자세나 주의사항 등 그저 ‘하나 둘 셋, 뛰어!’ 마냥 밖으로 나가 달리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러너들이 인증하는 앱도 저마다 다르고, 각 앱을 사용하는 데에도 적잖이 공부를 해야 했다. 사진은 어떻게 넣는 거지? 시간 설정은? 심박수가 중요하다는 데 워치를 사야 하나? 헤드셋은? 소지품을 넣고 다닐 벨트 하나를 고르는 데도 몇 날 며칠이 걸렸다.
준비를 어느 정도 했다 싶으면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러닝화 탓인지 자세 탓인지 발가락, 발목이 시큰한 게 다시 또 러닝 정보를 검색한다. 러닝복과 러닝화, 심지어 러닝 양말의 가격도 만만치 않다. 사실 무엇을 입고 신을지 고르는 일등 일련의 준비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무작정 뛰어! 마인드여야지만 가능한 게 또 러닝이니 어찌어찌 우격다짐으로 여기까지 잘 왔다.
막 30분 연속 러닝에 성공 한 이후 여러 명의 신참 러너들을 모아 러닝크루를 만들었다. 나도 누군가의 뛰는 모습을 보고 용기 내어 시작한 만큼 또 다른 누군가 나의 모습을 보고 뛰기로 결심한다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혼자서만 뛰다 여러 명이 함께 모여 러닝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설왕설래 말이 많았다. 오늘은 공복에 뛰었다는 나의 코멘트에 그렇게 뛰면 몸 상한다, 결국 근육이 다 빠진다, 각자 아는 운동 지식들이 조언과 겁 사이의 메시지들로 단톡방에 줄을 섰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때 시작한 공복 달리기 이후 9개월 이상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한 여름에도 공복을 유지했다) 근력운동을 수시로 해준 덕분인지 근육이 빠지지도 않았고, 몸이 상하지도,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현재의 달리는 몸이 만들어지는 데에 공복이 한 몫한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3~5km 내외의 러닝은 사실 별 다른 조건이 필요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신경 쓸 것’과 ‘주의 사항’은 장거리, 그러니까 최소 1시간 이상의 거리를 달리는 상황에 필요한 조건들인 경우가 많다. (단, 처음부터 주의하고 조심할 것들을 체크하는 건 필요하다) 달리는 시간대나 식사 유무, 러닝복장과 날씨 등등의 여건은 30분 내외의 달리기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저 그것을 즐기고 있느냐 아니냐가 오히려 더 유의미한 체크 조건이 될 수 있다.
최근, 식사를 하고 식탁을 정리하는 시간 동안 소화를 시키고 곧바로 러닝팬츠를 입고 밖으로 나간다. 이전 같았으면 덮어놓고 “두세 시간은 지나야 뛸 수 있어! 오늘은 밥 먹어서 러닝 못하겠어!” 그러고는 냅다 포기했을지 모른다. 9개월 전까지만 해도 러닝 전 물만 마셔도 배가 꿀렁거려 불편했다. 15km를 쉬지 않고 뛰었을 때도 13km 지점에서 한두 모금 마신 게 다일만큼 물을 마시는 것도 저어했던 내가 밥을 먹고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레이스 위로 오른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몸을 뜨겁게 달구며 구동시키면 4~5km를 기분 좋게 달릴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1km에서 오늘 러닝의 기쁨을 만끽한다. 오히려 간단한 식사 후 러닝에서 몸이 더 날렵해지는 느낌도 든다. 식사의 유무나 날씨와 관계없이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 어디서든 달릴 수 있다.
타이밍, 인생이 그렇듯 달리기도 타이밍이다. 오늘 하루 중 언제, 어디서, 어떻게 뛸까. 하지만 그 타이밍이 기존의 ‘카더라’나 고정관념 속에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면 오늘은 한번 그것들을 깨트려 보길 바란다. 9개월 전과 지금의 나도 다르고 몸도 다르고 또 달리기도 다르다. 우리는 매번 새로운 몸과 달리기를 만난다. 그간 신경 써왔던 것들에서 한 번쯤 놓여나 다른 달리기를 만나보는 것과, 꾸준히 달려온 나의 몸이 하는 말과 원하는 것들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보자. 모든 타이밍과 가능성을 열어 놓고 ‘즐겁게’ 뛰는 것에 의미를 두면 분명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몸과, 달리기가 하나가 되는 환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