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만 읽는 게 아닙니다
타원형 모양의 초콜릿이 있다. 길쭉한 알모양의 껍데기를 반으로 나누면 한쪽에는 초콜릿이, 다른 한쪽에는 장난감이 들어 있다. 아이가 어렸을 때 한창 그 초콜릿에 꽂혔을 때가 있었다. 질퍽한 초콜릿은 독특하고 맛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초콜릿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조잡한 장난감은 대부분 엄지손가락 크기도 안될 만큼 작고, 조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금세 흐트러질 만큼 부실했다. 초콜릿은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나뉘어 장난감의 종류도 달리 했다. 파란색은 자동차나 공룡 따위의 남자아이들 기호에 맞춘 구성이었고, 분홍색은 여자아이들의 취향에 맞게끔 작은 요정이나 반지, 머리핀 따위의 구성이었다. 파란색 분홍색 할 것 없이 아이는 그날그날 번갈아 제품을 구매했고, 가지고 노는 대부분의 장난감은 파란색 알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이따금 조립하기가 어려운 장난감이 있었다.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건지가 모호하고, 실제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도 헛갈릴 만큼 의아한 장난감도 있었다. 그럴 때 아이는 두 번 고민 없이 설명서를 펼쳐든다. 자신의 손바닥 크기만 한 작은 종이에 더 작은 글씨로 장난감의 조립 방법이 쓰여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맥도널드 해피밀 세트를 주문하면 딸려 나오는 장난감들 또한 마찬가지다. 설명서를 이렇게 열심히 보는 아이가 또 있나 싶을 만큼 골몰히 들여다본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떤 장소에서 제공하는 팸플릿을 꼭 챙겼다. 처음 그것들을 챙길 때 아이는 마치 그것이 아주 귀한 책자라도 되는 듯 행복한 얼굴이다. 박물관에 갈 때도, 미술관에 갈 때도 하다 못해 은행을 갈 때도 아이는 꼭 서너 개의 팸플릿을 챙겨 왔고 한동안 차에 차곡차곡 쌓아 뒀다가 처분하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팸플릿이나 명함을 곧잘 챙기는데 어쩔 때는 계산대 옆 진열된 판매용 엽서를 그냥 가져오려고 해서 주인과 내가 당황하며 웃었던 적도 있었다.
아이는 종이와 종이에 쓰인 글자 읽기를 즐겨한다. ‘책’만을 읽을거리로 생각지 않는다. 아이뿐 아니라 우리들도 꼭 책이 아니어도 하루 중 읽어내는 활자량이 적지 않다. 하다 못해 식당에서 골라야 하는 메뉴도 읽어야 하고,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 커피의 컵 사이즈와 농도까지도 하나하나 읽어가며 주문해야 한다. 순차적인 읽기 없이 감으로만 빨리빨리 해버리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읽는 일의 중요함을 아이는 일찍이 깨쳤다. 일을 해결하는 상황 속에서 차분하게 방법을 고민하고,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읽고, 그것으로 해결을 넘은 저 편의 사유도 조금 더 진하게 고민할 수 있다. 활자를 읽으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글자를 바르게 해석해 보는 작업. 결국 문해력과 연결될 수 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발견한 화단의 꽃말에서, 스쳐 지나가는 가게의 간판에서 한 글자씩 건져내 읽으며 아이들은 한글을 배운다. 활자를 읽어내는 힘이 꼭 책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읽을거리가 풍부한 삶은 활자와 책으로 가득한 공간이나 환경이 아니다. 주변 작은 상황 속에서, 아이가 마주 하는 그때그때의 시간 속에서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상황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어보자. 자신이 먹을 음식은 자신이 고를 수 있게 메뉴판을 보여주자.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공항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여행지 정보나 지도 팸플릿은 아이가 챙기도록 해주자. 어른들도 잘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안내문도 부러 아이에게 읽어달라 이야기하고, 이따금 주변의 안내판이나 표지판을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깨알 같은 순간도 놓치지 말자.
아이들의 읽을거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들이미는 일에 부지런해져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알려 준다’라의 의미로만 해석하지 말자. 아이 스스로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작은 관심과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읽을거리를 통해 더 풍성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