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리지

몸과 마음의 대화, 그 시간이 쌓여 마일리지가 된다

by 책사이애

작년 7월, 오버페이스로 무릎 통증이 시작되었다. 두어 달, 거의 달리지 못했고, 달리더라도 기록을 따져가며 달리기가 불가능했다. 정형외과와 한의원에도 가보았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꾀한 건 아니었다. 원인이라도 알아내자 싶어 내원했고, 염증 증상이라는 소견을 얻었다. 고로, 무리해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특별한 치료법이 없었다. 주사치료, 물리치료, 침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최선이라 했지만 마뜩잖았다. 건강하게 달리려면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근력운동을 시작했다.



주 4회 이상 아침저녁으로 매트 위에서 근력을 키웠다. 베란다에 공간을 만들어 집중해서 운동할 수 있었다. AB슬라이드에서 밴드, 아령을 이용해 자잘한 근력을 채워갔다. 하루 2~30분만으로도 몸이 단단해지는 게 느껴졌고, 가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홈트를 시작했다. 사이사이 계속해서 달리기를 시도했다. 달리다가 통증이 느껴지면 멈추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달리기를 멈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근육이 탄탄해질수록 심리적 안정감 덕분인지 쉽사리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달리는 횟수를 줄여 무릎 부담을 낮추었고, 2~3km 내외를 달리더라도 다리 근육의 감각을 온전히 느껴가며 착지 부위나 무릎 각도까지 신경 써 달리기를 했다. 헤드셋을 끼고 그저 거리를 채우는 것에 급급해 마구 뛰기만 했던 예전과는 분명히 다른 달리기였다. 무릎 통증이라 해서 무릎이나 허벅지만 신경 쓰면 안 된다. 대부분 발목에서 시작된 통증이 종아리를 타고 올라가 장딴지와 고관절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발목이 약한 편이라 늘 신경 쓰였는데 이 참에 제대로 자세를 잡아 보자 싶어 달리는 감각에 신경을 집중했다.



근력운동과 산책(걷기는 달리기와는 또 다른 하체 근력에 영향을 준다. 척추까지 텐션을 살려주면 2~30분 제대로 걷기만으로도 하체를 단련시킬 수 있다)을 열심히 한 덕분인지 11월 들어서면서는 무릎 통증이 거의 줄었고, 10km 거리를 무리 없이 달릴 수 있었다. 한때 한 달 마일리지가 120 ~130km였다. 그때만 해도 150km로 늘이는 게 목표였다. 한창 바쁠 때라 달릴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늘 불만이었던 때다. 하루 3~5km를 매일같이 달리는 일은 비교적 쉬웠다. 장거리가 아니면 무리될 일도 없다. 그렇게 달리는 게 적성에 맞다는 착각도 했고, 나 또한 언젠가 풀코스를 뛸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컸다. 언제고 15km를 뛰고 나서야 깨달은 건 풀코스는 아무나 뛸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는 사실. 기안이 청주마라톤에서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했는지 뒤늦게 이해가 되었다. (그 방송을 시청한 후 달리기에 입문한 1인이 접니다!)



작년 3월부터 6월까지, 100일 동안 매일 달리기를 했다. 적게는 1km에서 길게는 12km까지. 그날의 컨디션이나 상황에 따라 거리는 달랐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달렸고, 부부싸움 후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도 밖으로 나가 울면서 달렸다. 아파트 주차장(한 바퀴 돌아도 200m가 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수십 번 내달렸다)에서도 목표한 하루치 달리기 양을 채웠다. 덕분에 달리는 몸은 만들어졌다. 하지만 정작 마라톤이라는 레이스에서 필요한 장거리 뛰기 훈련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릎 부상 이후 달리기에 변화가 왔다. 단거리 달리기를 지양하고 일주일에 1~2번을 뛰더라도 거리를 늘려 10km 내외로 꾸준히 달려보자로 마음 먹었다.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장거리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그날그날에 따라 6~7km를 달리는 날도 많았다. 그럼에도 횟수를 줄이고 거리를 늘리자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마일리지 80km, 달린 횟수 10번. 회당 8km를 달렸다. 만족했다. 통증 없이 80km 달릴 수 있다는 사실과, 거리를 늘리는 데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이다. 그 사이사이 산책으로 이동한 거리도 30km가 넘는다.



한때 마일리지를 늘리고 싶어 애를 썼던 때도 있었다. 남들은 2~300km씩 잘도 뛰는데 나는 언제쯤 저렇게 뛸 수 있을까 조급하기도 했다. 내 목표는 풀코스 완주였고, 기록이 되려면 5시간 안에 들어와야 하니까. 거리와 시간 모두가 완주에 필수 요건이다. 한 번에 42km를 달리려면 얼마나 많은 10km를 달려내야 하나. 그 10km가 쌓여 20km가 되고, 20km가 쌓여야 40km가 된다. 달리기 1년이 조금 넘은 초보 러너인 나는 분명히 조급했다.



달리기는 그날그날의 기록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꾸준한 달리기 속에서 시나브로 쌓여가는 건 비단 거리와 페이스가 아니다. 스스로 끝까지 달릴 수 있다는 믿음과 달리는 몸이 느끼고 반응하고, 그런 몸과 대화하며 차츰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마일리지다. 햇수로 3년 차가 된 지금 나의 달리기 마일리지는 ‘내가 달릴 수 있는 만큼’이다. 어딘가에 보여줄 것도, 기록으로 뭔가를 어필할 것도, 공식이라는 말의 허울도, 러너로서의 자존심도 모두 내려놓고 한 달 7~80km의 마일리지에서 통증 없이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지금을 무한히 응원하기로 한다. 오늘도 내가 달릴 수 있는 만큼, 딱 그만큼만 기꺼이 달려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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