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민속
제주의 마을을 다니다 보면 꼭꼭 숨어 있는 신당(神堂)을 만나게 된다.
제주에서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을 본향당(本鄕堂)이라 부른다. 본향당은 마을 제사도 지내고 굿도 하는 의례적인 장소지만, 마을 주민들이 당신(堂神)을 만나기 위해 드나드는 은밀한 공간이었다. 주로 여성들이 집안의 우환이나 이런저런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소원을 비는 친숙한 곳이기도 했다. 제주 할망들이 본향당을 나와 색동천이 휘날리는 신목(神木) 가지에 가슴에 품었던 소지(素紙)를 붙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훨씬 가볍지 않았을까?
보목마을 본향당 '조노깃당'을 찾아가다.
내가 사는 보목마을에도 본향당이 있다.
‘조노깃당’이라고 부르는 신당은 보목 웃동네에 위치한 '조노기궤'('궤'는 제주어로 작은 동굴을 말한다.)에 있다. 마을 중심과는 조금 떨어진 귤밭이 많은 곳이고, 옆으로 수풀이 우거진 '정술내'라고 부르는 깊은 하천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어릴 적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으슥한 기분이 들어 근처에는 가지 못했다고 한다. 신당에서 굿도 하고 제사도 지냈으니 그럴 것도 같다.
보목마을 본향당은 '조노기'라는 마을의 신을 모신다.
본향당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 표지판과 함께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보목마을 설화에 나오는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던 일곱 형제와 이들을 구해준 백발노인의 얼굴이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다. 어떻게 보면 본향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마을의 설촌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이곳에서 무속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 굿을 하고, 유교식 마을 제사인 포제도 지낸다. 정월에 지내는 포제라고 해서 '정포제'라 불리는 제사는 나흘간 이루어지는데 보목마을회에서 주관하는 마을 행사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본향당에 숨어 있는 이야기 '본풀이'를 듣는다.
본향당에는 '본풀이'라고 해서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 즉, 일종의 설화 같은 것이 있다.
당오름을 품고 있는 송당마을은 오름 둘레길 초입에 본향당이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금백조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제주의 1만 8천 신들을 대표하는 '백주또'(흔히, 금백조 여신이라고 한다.)가 18명의 아들과 28명의 딸을 낳아 제주의 마을로 퍼져 나갔다고 하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굿의 본풀이는 심방(‘무당’을 이르는 말)의 입으로 전해지는 전승 설화의 한 종류로 여러 버전이 있다고 한다.
서귀포 시내 이중섭 거리를 걷다 보면 서귀 본향당을 만날 수 있다.
큰 후박나무를 신목으로 아담하게 꾸며진 신당은 건물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서귀 본향당의 본풀이는 연애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애정의 삼각관계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인간적인 이야기가 마을의 유래와 얽혀 있어 재미를 더한다. 서귀 본향당에 모셔진 당신 '바람웃또'는 부인인 '고산국'을 버리고 처제인 '지산국'과 사랑에 빠져 제주도로 사랑의 도피를 하는 내용이다. 서귀동과 이웃한 동홍동과 서홍동 마을에 통속적인 사랑의 결말이 숨어 있었다니.
제주의 민속을 공부하면서 마을의 본향당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제주에는 본향당뿐만 아니라 산신당, 해신당 등 산과 바다를 주관하는 '당신이 머무는 집'이 존재하고, 그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마을 곳곳에 신당이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마을마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