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것들

제주 이주의 조건

by 박현

내가 제주살이를 생각할 즈음이었다.

제주로 이주해서 제주도민이 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살 집을 마련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제주도는 주거 형태도 다양하고, 지역이나 날씨, 생활 인프라 등 고려 요인이 많았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멈추고 작정한 대로 그냥 살아보기로 했다.




제주도 인구는 약 70만 명 정도이다.

면적으로는 서울의 4배 크기지만 인구는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주민의 통계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외국인을 포함해서 10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적지 않은 인구이다. 여기에 한달살기나 일년살기를 하며 체류하는 인구까지 합치면 상당수의 ‘육지 것들‘이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육지 것’이라는 말은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해 온 사람을 말한다.

보통 집을 옮기는 것을 '이사'라고 하는데 제주도로 이사할 때 '이주'라는 말을 쓰곤 한다. 아무래도 육지에서 섬으로 가다 보니 이주라는 단어를 구별해서 쓰는 것 같다. 서울에 살 때도 이사를 많이 했지만 주로 직주근접이나 자녀교육 등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었다. 제주 이주는 좀 더 다양한 형태를 보이는 것 같다.


'육지 것'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주 이주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은퇴형이든 생업형이든 제주 이주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도시에서의 생활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제주 이주 후의 생활은 육지의 편리함과 효율을 따라갈 수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제주 이주의 조건은 단 한 가지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다.


제주로 이주해서 살아보니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더군다나 이주를 위한 컨설팅이나 상세한 계획은 시간 낭비일 수 있다. 제주에 와서 살면서 주위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곳에 터를 잡고 살면 그것이 새로운 삶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을 제주 이주해서 알게 되었다.


여기 서귀포에는 육지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아침 산책을 하다 보면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육지 사람들을 만난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정도지만 서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무슨 이유로 육지 것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제주로 이주해 온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지난가을 제주살이를 시작하고 여름을 지나고 있다.

여행자로서 느꼈던 제주와 살면서 알게 되는 제주는 분명 다르다. 아직까지는 서울에 오가는 불편을 감수하지만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한라산을 넘어올 때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육지에 살고 있는 지인들은 내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해한다. 여기 제주 사람들은 나의 일상보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그것이 궁금한가 보다. 아직 젊은 사람이 일거리도 없이 노는 것이 걱정이 되는지 자꾸만 물어본다. 그런 속 깊은 이웃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