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 읽기(18) 기형도의 시
기형도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는 시인의 운명을 타고났으나 생업으로 신문기자가 되었고,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생전에 한 권의 시집도 내지 못했다. 젊은 시인의 죽음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사람, 그가 김현이라는 비평가다. 그는 기형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유고시집을 출간해 주기로 약속한다. 『입 속의 검은 잎』 이라는 시집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시는 개인적 체험이라는 상처에 대한 은유와 상징이다.
시인은 가난과 이별이라는 상처를 지나치게 드러내거나 억지로 감추지 않는다. 김현 선생은 기형도의 시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는 화환을 씌워 주었다. 한 젊은 시인을 위한 진혼가라는 부제가 붙은 발문을 읽으면서 시인의 삶조차 읽어버린 위대한 문학비평가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는 망각을 두 번째 죽음으로 치환했던 프루스트의 방식대로 기형도를 추억했고, 젊은 시인의 언어를 부활시켰다.
기형도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는 미발표작 15편을 포함하여 총 6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시인의 자전적 체험이 녹아 있는 시들을 좋아한다. 위험한 가계 1969, 나리나리 개나리, 그 집 앞, 빈집, 진눈깨비 같은 시들이다. 나에게 「빈집」은 실연의 아픈 고백으로 읽힌다. 시의 화자는 "잘 있거라"라는 말로 스스로에게 사랑과의 결별을 알린다. 시의 내용을 재구성해 보면 화자는 안개가 자욱한 겨울밤 촛불 아래에서 이별의 공포와 망설임으로 흰 종이에 눈물을 쏟는다. 그리고, 눈먼 장님처럼 문고리를 더듬어 문을 잠근다. 불쌍한 사랑을 빈집에 가두어 둔 채로.
기형도의 시를 읽으면서 추억과 현실을 같이 읽는다.
그의 시에 표현된 '곰팡이 피어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라는 현실은 그의 추억과 공존한다. 그리고,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부정의 문장으로 딱딱하게 연결된다. 기형도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의 시 「빈집」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