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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프로 May 10. 2021

나의 엄마

내가 누군가의 엄마로서 맞이하는 첫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이다. 기분이 묘하다. 진부한 말이지만 아기를 키워보니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해내고 있는 거였구나. (이제 고작 4개월 지났는데 ㅎ)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나의 엄마를 많이 떠올리게 된다. 테오의 엄마로 보낸 지난 4개월은 이미경 씨를 엄마로 만나서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과연 내가 엄마만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어머니의 날을 맞아 예전에 엄마에 대해 썼던 글을 끄집어내어 올려본다.


우리 집 막내딸이에요.


사람들에게 엄마를 이렇게 소개하곤 한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철없음을 담당하고 있다.


1남 1녀의 둘째인 엄마는 오빠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탓에 외동딸이나 다름없이 자랐다. 홀로 남매를 키우신 외할머니는 엄마가 좋아하는 으깬 감자를 따뜻하게 먹으라고 점심시간에 맞춰 학교로 보내주시던 분이었고, 엄마가 남의 집에서 밥을 먹을 일이 있으면 꼭 개인 수저를 들려 보내는 분이셨다. 아빠의 존재를 대신했던 오빠는 엄마에게 항상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도록 장려했다. 이런 외할머니와 오빠의 사랑과 보호를 듬뿍 받으며 자라서일까, 엄마는 소위 말하는 공주과다.


한 번은 회사 동료들과 맛집에 다녀온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엄마가 보고 전화가 왔다. “여기 알려줘~ 나도 갈래~” 엄마의 성화에 맛집 정보와 주소를 알려줬다. 몇 주 후 알려준 맛집에 다녀온 엄마가 말했다. “음식이 생각보다 별로더라~” 예상한 반응이었다. 이건 아빠의 블로그에서 본 얘기다. 엄마와 아빠가 단골 음식점에서 외식을 했다. 된장찌개가 남아서 포장을 해달라고 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된장이 맛이 없느냐고 물으셨단다. “좀 싱겁네요~” 엄마가 대답했고 당황한 아빠는 황급히 “아녜요, 내일 아침으로 먹으려고요~”라고 덧붙였다.


엄마는 입맛과 취향이 까다롭고 예민한 데다 표현이 지나치게 솔직하다. 그런 탓에 나는 엄마에게 선물을 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선물을 하고도 좋은 소리 못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함께 쇼핑을 가면 엄마가 직원분들께 눈치 없는 소릴 할까 봐 신경이 곤두선다. 가족끼리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숙소가 별로다, 식당이 별로다 등 엄마가 어디에서 어떤 말로 누군가의 신경을 긁을지 그야말로 시한폭탄이다.


‘여보~’ ‘경아~’ ‘민아~’ 엄마는 우리 중 누군가를 끊임없이 부른다. 그중에서도 이름이 가장 많이 불리는 사람은 아빠다. 옆에 없으면 전화를 쉴 새 없이 하는데, 하루에 열 번은 넘게 하는 것 같다. 한 번은 회사 동료들과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잔뜩 걱정된 목소리로 아빠가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얼마 동안 안 되었냐고 물으니 2시간이란다. 다행히 아빠와는 곧 연락이 닿았지만 회사 동료들에겐 꽤 문화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내게도 하루 평균 2번 이상 전화를 한다. “어머니께 전화 자주 드려라"라는 앤써니 어머님 말씀이 민망할 만큼 우리는 자주 통화를 한다. 심심할 때 하고, 궁금한 게 있을 때 하고, 아빠와 민이를 흉볼 때도 한다. “두 남자가 맨날 나만 갖고 그래~” 요즘 엄마의 단골 멘트다.


철없고 소녀 같은 엄마는 알고 보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어느덧 60세가 넘은 엄마는 10년이 넘도록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처음엔 나와 동생을 졸업시키는 것이 목표였고, 그다음엔 MDRT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둘 다 이루고 현재는 60대에도 활발히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새로운 목표란다. 최근엔 보험과 자녀교육을 연계한 콘텐츠를 만들어서 강의를 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새벽에도 주말에도 끊임없이 강의 자료를 찾고, 만들고, 고치고, 연습하는 엄마를 보면 일을 대하는 내 태도를 반성하게 된다.


2년 전쯤 회사에서 잠시 영업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열심히 해서 결과를 내면 되는 업무와 달리 영업은 온전히 상대를 통해 성과를 내야 하는 일이다 보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주어진 시간에 달성해야 하는 목표치는 정해져 있는데 결정은 상대의 몫이고 우긴다고 상대가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도 아니다. 내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그건 내 사정일 뿐 상대는 알 바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비굴해지기도 한다. 영업 업무를 하는 동안 계속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하는 영업은 쉬운 영업임에도 심리적 스트레스가 큰데, 영업 중에서도 힘든 편에 속하는 보험 영업을 하려면 얼마나 큰 부담과 압박감,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할까. 얼마나 잦은 조급함과 실망감을 겪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렸다. 더군다나 공주처럼 자라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어디서든 대접과 존중만 받았을 엄마에겐 더 힘든 과정이었을 텐데 말이다.


가계부를 쓸 줄도 모르던 엄마는 아빠의 사업실패 이후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제적 가장이 되었고, 15년 가까이 그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의미와 목표를 찾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더 대단한 것은 그 와중에도 철없음과 소녀다움을 유지한다는 것인데, 이런 철없는 엄마를 나는 진심으로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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