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하기 전부터 오랜 세월 동안 날 공포에 떨게 했던 출산. 막상 겪고 보니 임신, 출산, 육아를 통틀어 출산이 제일 쉬웠다 (무통주사 사랑합니다...). 반면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수유였다.
예정일보다 2.5주 일찍 태어나 2.5kg로 작았던 테오. 그러다 보니 먹이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키워보니 테오는 먹성 좋은 아기는 아니었다.
신생아들이 평균적으로 1회에 30분가량 수유를 한다고 하는데 테오는 길어야 15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양쪽을 충분히 먹이라는데 한쪽을 먹고 나면 다른 쪽은 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한 번 물었을 때 최대한 많은 양을 먹이려고 애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먹다 자꾸 잠이 드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신생아들이 모유수유를 하다가 잠이 드는 것은 지극히 흔한 일이다. 그래서 잠드는 신생아를 깨우는 팁을 인터넷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그 어떤 팁들도 테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발바닥, 턱, 볼을 간지럽혀도 보고, 얼굴에 찬 물수건도 대보고, 중간에 기저귀도 갈아보고, 잠이 드는 순간 품에서 내려놓아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유수유 자체가 주는 육체적 힘듦만 해도 만만하지 않았는데 이에 정신적 스트레스마저 더해지니 극도로 예민해져 먹지 않는 아기를 안고 눈물을 쏟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테오의 월령이 어느 정도 높아지고 나서부터는 수유에 집중을 못하는 것이 새로운 난관이었다. 주변을 인지하기 시작하고 호기심이 많아지면서 수유를 하다 말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느라 진득하게 먹지를 않았다. 내려달라고 몸부림치는 아기를 붙잡고 1분이라도 더 먹여보려고 사투를 벌이곤 했다.
이렇게 먹는 것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테오의 몸무게 백분위는 항상 5 퍼센타일 이내에 머물렀다.
우리 아기가 너무 안 먹어요ㅠㅠ
테오를 잘 먹게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모유수유 컨설팅을 받으러 다니고, 맘 카페에 글을 쓰고, 구글과 유튜브를 검색하고, 여기저기 친구와 지인들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먹일 수 있을까를 매일매일 고민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테오에 대해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쓸 때 슬픈 표정을 짓고, 슬픈 이모티콘(ㅠㅠ)을 쓰고, 슬픈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세상에 나온 지 고작 3개월 남짓 된 꼬물이. 이 조그만 생명이 혼자 숨을 쉬고, 눈을 뜨고, 눈을 맞추고, 우렁차게 울고, 응가를 하고, 잠을 자는, 모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대견하고 감사해야 할 행복한 시간이 아닌가. 그런데 내가 벌써부터 이 아이를 ‘OO를 못하는 아기’로 만들고, 속상한 마음을 담아 바라보고 있었구나.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싶고 테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우리 테오는 잘하는 게 저~엉말 많다.
첫째로, 응가를 얼마나 신통방통하게 하는지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아주면 깨끗한 기저귀에 어김없이 응가를 한다 글쎄. 1 모닝 1 응가라니, 웬만한 어른보다 낫지 않나.
둘째로, 신생아 때 용을 정말 잘 썼다. 수시로 온몸에 힘을 주고, 슈퍼맨 자세를 하고, 얼굴을 찌푸리면서 낑낑거리는 걸 보면서 키가 180cm까지 클 것이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셋째로,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주변에 궁금한 것이 너무 많고, 그것들을 스스로 탐구해보고 싶은 욕구가 식욕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먹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넷째로, 얼마나 잘 웃는지 모른다. 그동안 많은 아기들을 만나왔지만 테오처럼 많이, 크게, 깔깔깔깔 웃는 아기는 본 적이 없다. 웃는 것 하나로는 정말이지 챔피언 감이다.
테오의 이렇게나 많은 장점들을 그동안 잘 안 먹는다는 어려움 하나 때문에 충분히 알아차리고 칭찬해주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앞으로 테오를 키우다 보면 분명 수월하게 잘 따라와 주는 부분들이 있을 테고 유난히 애를 먹이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부모로서 조심하지 않으면 자칫 애 먹이는 부분에 집착하고 매몰되어 아이를 ‘OO를 못하는 아이'로 바라보고 대할 수 있겠다는, 그로 인해 아이에게 긍정적인 자아상 대신 부정적인 자아상을 심어주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항상 깨어있어야겠다.
‘밥 잘 안 먹는 아이'가 아니라 ‘응가 잘하는 아기'로 키울 수 있도록 항상 테오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