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우리 가족 조금 괜찮아지나 했는데
아빠에 이어 엄마까지 암이라니
온 세상 불행이 다 나를 향해있네
나는 이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 중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하면 되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스물셋, 연이어 닥친 세상의 가혹함에 나는 두 손을 들었다.
그 순간 예전에 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나 좀..내버려 두란 말이야! 그냥 나를….”
처음 본 아버지의 절규 가득한 외침
중학교 시절,
아버지는 1층에서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하고 외국으로 사업을 하러 가셨다. 나는 가끔 엄마에게서 넘겨받은 전화나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아버지가 잠시 한국에 돌아와 집에 올 때면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언가 좋지 않은 상황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래서일까. 아버지에게 더는 웃으며 내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평소 약주를 조금씩 즐겨하시던 아버지이지만 그날 약주를 한 아버지는 세상을 향해 포효하고 있었다.
“왜..나한테 그런거요! 왜! 나 좀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되냐니까…!”
“아유 그만 좀 소리쳐요! 야밤에 이게 무슨 난리야 정말, 애들 다 깨!”
그 외침은 분명 누구에게도 아닌 세상을 향한 이야기였다.
힘든 환경에서도 한평생 우리 집을 일궈왔던 아버지.
십 리를 걸어 학교에 가고, 점심시간에는 운동장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웠다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다시 찾아온 시련은 두려움을 넘어 환멸을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환멸을 넘어서 결국엔 받아들여야 할 운명(運命)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덤덤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러 나가셨다.
그리고 나는 그 기억으로 내 인생을 다시 살아갔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운명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은 반드시 있다. 그것은 내가 맞설 수 없고 수용(受容) 해야 한다는 것.
다시 생각했다.
불행한 사람 중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하면 되나?
‘........’
다음 날 나는 일을 하러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