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별의 축제

by 현상

칼디아 왕국 북동부 어딘가.

드넓은 사막과 드문드문 펼쳐진 초원이 만나 이룬 황량한 분지 지대에, 지도에도 정확히 표시되지 않은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하이델.

오래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별의 분지’로 불리는 곳이기도 했다.


하이델은 거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칼디아 왕국에서도 이런 곳에 사람이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나 워낙 척박한 땅이라 세금 등을 걷을 수 없는 등 경제적 이득이 없는지 왕국의 간섭 없이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낮에는 사막의 열기가 온 마을을 뒤덮고, 태양 빛은 흙벽돌과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풀과 진흙으로 마무리된 지붕을 금세 달구었다.

아이들은 나무 그늘이나 얕은 동굴 속으로 숨었고, 어른들은 젖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일을 했다.

밤이 되면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낮의 뜨거움을 잊을 만큼 매서운 냉기가 땅 위를 타고 스며들어, 마치 바람 속에 얼음이 섞여 있는 듯했다.


물은 귀했다.

농사는 그리 잘되지 않았지만, 그나마 수확이 되는 곡물과 바람에 강한 풀들이 소중한 자원이었고, 일부 가족은 야생초를 말려 향신료로 만들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동물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우유, 고기를 통한 단백질 제공원일 뿐만 아니라 가죽, 뼈 등을 주는 귀한 존재였다.

그러나 하이델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다.

그들은 땅에 별을 새기고, 밤하늘을 기억하고, 바람 속에서 조상의 숨결을 느끼는 이들이었다.


마을 중심에는 ‘추장회’라 불리는 장로회가 있었는데, 세 명의 장로가 공동으로 마을의 주요 결정을 내리고 계절마다 돌아오는 제사를 주관했다.

이들은 가문이나 혈통보다는, ‘같은 별 아래에서 태어난 이들’이라는 믿음으로 묶여 있었다.

하이델의 문화에서 별은 단순한 천체가 아니었다. 별은 운명이며, 조상의 혼이며, 자신들이 속한 세계 그 자체였다.


그날은 마을 최대의 명절, ‘별의 축제’였다.

일 년의 단 하루 별이 가장 많이 떠오르고 빛나는 날, 그리고 하이델 조상들의 별이 하늘을 스치는 밤이 오는 날이었다.

하이델 사람들에게 별의 축제는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와 뿌리를 확인하는 신성한 날이었다.

라크는 작은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축제의 의미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가슴이 울렁였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은 분주했다.

아이들은 마른 가지와 낙엽을 모아 마을 곳곳에 자신만의 작은 성소를 만들었고, 어른들은 축제 며칠 전부터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빵과 술, 고기, 말린 향신료와 수공예품을 광장으로 옮겼다.


사람들은 이날을 위해 가족마다 전통 의복을 꺼내 입었다.

여성들은 별빛을 형상화한 은색 실과 유리구슬이 장식된 얇은 흰색 천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었고, 남성들은 흰색 셔츠 위에 별이 수 놓인 주황색 조끼를 입었다.

아이들은 별 모양의 장신구를 달고, 일부 장난꾸러기들은 손등과 얼굴에 별무늬를 그려 넣었다.


하이델의 전통 의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각 가문이 기억하는 별자리에 따른 상징적 표현이었다.

북동쪽 하늘의 샛별을 상징하는 가문은 옷깃에 세 줄의 자수를 새겼고, 사막별을 기억하는 이들은 모래색 천에 금색 실을 섞어 별무늬를 수놓았다.

그들은 별을 외웠고, 별의 위치로 밤의 시간과 방향을 알았으며, 별로 서로의 운명을 나누었다.


축제의 중심은 마을의 중앙에 있는 ‘별의 광장’이라 불리는 원형 공간에서 이루어 졌다.

그곳엔 모래 위에 별의 상징을 새기고, 중심에는 조상신을 위한 제단이 세워졌다.

제단은 바위 위에 쌓은 검은 돌과 흰 조약돌로 만들어졌으며, 별을 닮은 촛대가 주변을 둘렀다.

제단의 서쪽에 마련된 탁자에는 식기들이 놓이고 있었고 음식들로 채워졌다.


오늘 축제를 주관하는 추장회의 의장인 세렘 바즈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제단을 정비하고 축제를 하기 위한 의식을 연습했다.

그리고 축제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삼 년 만에 하려니 어색하네.

그나저나 오늘 무사히 축제를 치러야 할 텐데’ 세렘 바즈는 겉으로는 웃으며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다녔으나 속마음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는 며칠 전 하늘이 검은 연기로 뒤덮이는 꿈을 꾸었다.

몇 년 전 축제 때 갑자기 세찬 모래바람이 불어 축제가 갑자기 중단된 적이 있었는데 그와 유사한 것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세렘 바즈는 걱정하였다.

축제마다 한 번씩 돌아가면서 하는 추장회의 일원의 입장에서 자신의 차례에 축제가 망쳐지게 되면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 잘못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라크는 열다섯 살이었다.

그날은 이상했다.

라크는 다섯 살 이후로 이 축제를 아홉 번 겪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달랐다.

부모님의 눈빛이, 그 촛불 위로 흘러가는 그림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이제 어른이 되기 위한 의식을 앞두고 있었고, 별의 축제는 그 전야제처럼 여겨졌다.

부모와 함께 그는 별 문자의 의미를 되새기며 작은 촛불을 준비했다.

그 촛불은 밤 제단에 바칠 것으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가는 길목에서 별에게 바치기 위해 처음으로 직접 만든 제물이기도 했다.


“이 별들이 너를 지켜줄 거야, 라크. 너는 오래된 피를 품고 있으니까.”

“라크 내 친구가 오고 있어. 이름은 에스마 자라. 그 이름을 기억해야 해.”

집을 나서며 들은 어머니의 말은 따뜻했지만, 어딘가 두려움도 담겨 있었다.

라크는 그 말을 되새기며, 부모와 함께 축제 장소로 향했다.


부모님은 별 문자를 해독하는 마을의 유일한 학자였다.

그들은 따로 별 문자를 공부하고 있다가 축제에서 서로가 같은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 후 사랑에 빠졌고 그 둘 사이에 라크가 있었다.

생계를 위해 낮에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일했지만, 밤과 새벽에는 부부가 연구에 매진하였다.


집안에는 여기저기 문서들로 가득했다.

어머님의 집안은 대대로 별 문자를 연구해 왔는데 일부 자료들은 언제부터 이 집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집에도 자료가 조금 있었다고 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 문서들을 계속해서 보았다고 라크는 들었다.

라크도 부모님의 어깨 너머로 조금씩 별 언어를 익혀가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최근 연구는 별 문자로 작성된 한 가지 책을 해독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제목은 ‘갈릴로스 제국, 별의 이야기’로 부모님은 그책에 과거의 역사와 미래에 대해 담겨있다고 라크에게 말해 주었다.

어머님의 얼굴은 얼마 전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최근 해독한 예언서에는 오늘을 가리키며 이런 구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타오르리라. 그리고 위대한 황제가 다시 탄생하리라.’


어둠이 내리고 별이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하자, 마을 전체가 정적에 휩싸였다.

세렘 바즈가 제단에 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제단의 남쪽에 서서 때때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제단 위에 서 있는 그가 축제를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세렘 바즈는 제단의 촛불을 바라보며, 문득 꿈속에서 보았던 검은 하늘을 떠올렸다.

‘혹시... 오늘이 그날일지도 모르겠군.’

손끝이 살짝 떨렸다.

그는 그것을 감추듯 지팡이를 강하게 쥐었다.

그는 손에 별 문양이 새겨진 지팡이를 들고 하늘을 향해 별을 그렸다.

이어 별 언어로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기도를 읊었다.

사람들은 두 손을 모으고 그와 함께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

별 언어의 뜻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그 노래는 세대를 넘어 전해 내려온 마을의 혼 그 자체였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서로의 손을 맞잡고 음식과 음료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날을 위해 준비한 빵, 고기, 술, 향신료는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

이날은 일 년 중 유일하게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다음 이틀은 관례에 따라 휴일이니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만든 성소를 자랑했고, 어른들은 잊고 지냈던 옛이야기를 꺼내 웃으며 이야기했다.


축제는 별빛과 달빛 아래에서 절정으로 향했다.

나이 든 자들은 북을 두드리고, 젊은이들은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다.

세렘 바즈는 축제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바람은 평화로웠고 축제를 위해 피워놓은 불들만 밤을 밝히고 있었다.

하늘엔 별이 가득 떠 있었다.

라크는 왠지 모르게, 오늘의 평온함이 무섭다고 느겼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그 모든 것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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