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새벽의 학살, 혼자 살아남은 아이

by 현상

하이델의 밤하늘은 별빛으로 가득했다.

오늘 밤은 다른 어느 축제 때보다 별이 빛나는 듯했다.

한 아이가 외쳤다. “조상별이 지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유성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이델 사람들은 이것이 조상들의 별이 하늘을 스친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저마다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나도 죽으면 별이 되겠지. 그리고 후손들을 보기 위해 오늘 마을 하늘을 날고 있겠지.’


“어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라크가 두리번거리더니 아버지에게 물었다.

항상 축제 끝까지 라크 옆에 있었던 어머니가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일찍 들어갔어. 피곤하다고 하면서.”


“라크야! 잘 들으렴!

별이 구름 등으로 하늘에 보이지 않더라도 별은 그 속에서 항상 빛나고 있단다.

진정 훌륭한 별은 그 자리를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길을 인도하는 별이란다.

저 북쪽 하늘 중앙에서 항상 저곳이 북쪽임을 가르쳐주는 가장 밝은 별처럼”

“별의 운명을 타고난 너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될 거야. 그것을 명심하렴.”

“그리고 어떠한 순간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다.”

아버지는 반쯤 무릎을 꿇고 라크의 눈을 쳐다보며 라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이야기하였다.


“저는 하이델 마을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에요.”

라크가 말하자 아버지는 빙긋이 웃으며 라크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라크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고 심각한 표정으로 아버지에게 조용히 무엇인가를 말했다.

아버지는 침묵했고, 어머니는 촛불 옆에 앉아 오래된 종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라크는 걱정이 되었지만 피곤함에 곧 잠이 들었다.


축제의 불빛은 희미해졌고, 남은 사람들은 별과 달빛을 품에 안은 채 행복한 모습으로 축제의 마지막인 불타는 제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축제를 위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일 년이 길게만 느껴졌다.

이윽고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들어간 마을은 평화로웠고 불이 모두 꺼진 마을은 하늘의 별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말발굽 소리가 땅을 울렸다.

소리에 놀란 어떤 집들은 불을 켰고 일부 어른들은 놀라서 등불을 들고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들린 것은 바람을 가르는 ‘쉭’ 소리였다. 어둠 속에서 날아든 화살이 제단의 깃발을 꿰뚫고, 모래 위에 박혔다.

무기를 든 기수들이 하이델로 돌진했다.

그들은 모두 검은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으며,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아무런 문양도 없는 검은색 깃발을 들고 있었으며, 눈빛에는 자비가 없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죽이고 모조리 불태워라.” 침략자들은 외쳤다.


“우… 우리에게 자비를…!”

추장 세렘 바즈의 외침이 허공에 퍼졌지만, 대답은 없었다.

그는 잠옷 차림으로 복부에 창을 맞고 제단 옆에 쓰러졌다.

피가 모래 위로 스며들었고…, 마치 별 문양을 붉게 덧칠하는 듯했다.


그 다음엔—불이었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들은 횃불을 던지고 불화살을 쏘며 마을의 모든 것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불타는 소리, 비명과 울음소리로 온 마을엔 지옥이 펼쳐졌다.

그들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죽였다.


어떤 부모들은 무릎을 꿇으며 “이 아이들만이라도…” 하면서 사정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에서 불타 죽어간 사람들도 상당했다.

한 노부인이 자신의 손자를 안고 무릎 꿇고 기도하였으나 그들에게 날아든 것은 칼과 화살이었다.

도망가기 위해 마을 입구까지 가까스로 살아서 가더라도 거기서 기다리던 괴한들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그들은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하이델 마을 사람들은 일 년 중 가장 즐거운 날 무엇 때문인지 그리고 누가 자기들을 학살하는지도 모르면서 울부짖으며 한을 남긴 채 죽어갔다.


“어머니! 아버지!!”

라크는 혼란 속에서 부모를 불렀다.

칼날이 아버지의 등을 가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쓰러지며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곧 머리를 떨구고 말았다.


라크는 그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어머니가 그의 손을 잡고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지하실로, 라크! 지금!!”

“안 돼! 안 돼! 같이 가야지!!”

“너만이라도 살아야 해. 그게—우리 모두를 위한 거야.”

어머니는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를 벗어서 그의 목에 걸어주었으며, 힘껏 그를 지하실 안으로 밀어냈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는 마지막으로 불길 속 어머니의 눈을 봤다. 눈물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하나—

그를 지키려는 사랑만이 있었다.


그리고 어둠.


라크는 그 어둠 속에서 울지도 못했다. 고막을 찢는 비명과 타는 나무의 비명, 무너지는 지붕, 가죽 찢는 소리, 아이의 울음.

그 모든 소리를 기억해야 했다.


그날 밤, 하얀 모래 위로 별 대신 재가 흩날렸다.

그날 밤, 하이델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그날 밤—

라크는 혼자만 남게 되었다.


모래바람이 사라졌을 때,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그러나 땅은, 더 이상 그가 알던 하이델이 아니었다.


라크는 검은 연기 속에서 눈을 떴다.

지하실 어둠 속에서, 라크는 입을 닫은 채 숨도 쉬지 않았다.

가슴이 너무 크게 뛰는 것 같아, 그 소리 때문에 들킬까 두려웠다.

주먹 안에 들린 펜던트가 자꾸만 미끄러졌다.

손바닥은 땀과 피로 축축했고, 펜던트는 그 안에서 천천히 식어가고 있었다.


‘너만이라도 살아야 해. 그게—우리 모두를 위한 거야.’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지하의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반복되었다.

라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배어났다. 무서웠다. 배가 고팠고, 숨이 막혔고, 누군가 그 문을 부수고 내려올까 봐 두려웠다.


“살아야 해…”


속삭임인지 기도인지 모를 그 말들을 그는 몇 번이고, 아주 작게 되뇌었다.

그 목소리는 어머니의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바깥에선 여전히 불이 타고 있었다.

타는 냄새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콧속에 박혔다.

어둠은 무겁게 내려앉았고, 공간은 점점 좁아지는 것만 같았다.


“절대 포기하지 마. 절대, 멈추지 마.”

라크는 펜던트를 목에 걸고 눈을 감으며 되뇌었다.

누군가 그의 가슴안에 별 하나를 심어준 것 같았다.

차갑고 어두운 땅 밑에서, 아주 작고 희미한 불씨 하나가 그날 처음 피어났다.


숨이 거칠었고, 입안은 재와 피로 씁쓸했다.

그의 몸은 무너진 흙벽과 타다 남은 나무 기둥 사이에 눌려 있었고, 옆구리는 쓰라렸다.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죽어가던 아버지, 밀치는 어머니, 그리고 지하실 문이 닫히던 순간이었다.


지하실은 붕괴를 견뎠지만, 출구는 막혔다.

그는 며칠을 캄캄한 어둠 속에서, 흙먼지를 씹으며 버텼다.

비상용 식량은 사흘 만에 떨어졌고, 나흘째 되는 날 그는 손톱이 깨지도록 돌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다섯째 날 아침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둠 속에 너무 오래 있으니, 시간도 냄새도 감각도 무뎌지고 있었다.

지하실은 숨 쉬는 법을 잊게 만드는 장소였다.

라크는 이제 목이 마르지도 않았고,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저 손끝이, 온몸이, 말라붙은 나뭇가지처럼 마른 고요 속에 눌려 있었다.


그 순간,

아주 작고, 아주 희미한 빛 한 줄기가 벽 틈 사이로 들어왔다.


처음엔 그것이 환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라크는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빛은 거기 있었다.

너무 작고 약해서, 햇빛인지 불길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라크는 천천히 팔을 뻗었다.

팔은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다.’

그 말이 그의 몸을 끌어올렸다.

빛이 있는 곳을 향해, 손가락 하나하나로 돌 틈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살갗이 벗겨지고, 먼지와 피가 섞였고, 숨은 목에 걸려 헛기침이 반복되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 한 줄기 빛이, 어머니의 눈동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살아야 해. 네가 지나야 할 길의 문이야.”


돌이 바스러졌고, 흙이 무너졌고, 틈이 넓어졌다.

빛은 점점 커졌다.

어느 순간, 따스한 햇살 하나가 그의 볼을 스쳤다.


그는 눈을 감았다.

아주 천천히, 아주 길게 숨을 들이쉬며 입술을 움직였다.


“살았어.” 그러나 바깥은 차가운 현실이었다.

잔해 위엔 아무도 없었다.

연기는 사라졌고, 불은 꺼졌고, 그날의 웃음소리는 모래 속 깊이 묻혀 사라졌다.

사람은 없었다.

집들은 모두 불탔고, 마을 한가운데엔 불타다 남은 것들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라크는 부모님의 시체를 찾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체는 불에 탔다. 제단 근처에서 작은 머리핀을 한 시체를 발견했다. 어머니였다.

라크는 그 핀을 뽑았다.

금속은 뜨겁게 식어 있었고, 그 안엔 반쯤 탄 별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손에 쥐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를 꺼냈다.

은빛 금속은 아직 따뜻했고, 마치 그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


“왜 나만 살아남았지?”

폐허 속에서, 그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걷게 되었다는걸.


어머니의 시체를 지하실 입구 근처에 두고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다녔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칼과 창, 활로 죽인 것도 모자라 모조리 불태워 버린 것이다.


돌아다니다 발견한 삽으로 라크는 집 옆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구덩이에 어머니의 시신을 놓고 다시 흙으로 채웠다. 그리고 오열했다.

어머니의 머리핀은 손에 꼭 쥔 후 주머니에 넣었다.

어머니를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날을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묻어주기 위한 큰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삽을 들고 흙을 파내며,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하나의 이름을 불렀다. 기억나는 모든 얼굴을, 눈빛을, 목소리를….

라크는 하늘을 향해 크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온마을의 시신들이 그 장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라크 자신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슬픔으로 가득 찬 라크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은 채 구덩이에 있는 마을 사람들의 시신 위에 흙을 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단 위에 불타지 않은 별의 장식을 모두 가져와 무덤 위에 놓아주었다.


“아버지 여기 어딘가에 계시겠지요. 어머니 옆에 함께 계시게 하지 못해 죄송해요.”

“마을 여러분들 한 명씩 무덤을 만들어 주지 못해 죄송해요.

제가 복수해서 여러분들의 한을 풀어 드릴게요.” 라크는 조용히 흐느끼며 말했다.

이때 메마른 땅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도 라크의 슬픔을 함께하려는 듯.


라크는 비로 먼지를 씻으며 천천히 걸었다.

깨진 그릇과 반쯤 탄 나무 조각을 지나 제단이 있었던 그 자리로 향했다.


이곳은 단 닷새 전, 사람들이 웃고 노래하며 별을 그렸던 곳이었다.

별모양으로 돌을 배열하고, 은빛 촛대에 꽂힌 초에 불을 붙이며

조상들의 숨결을 기리던 공간이었다.


지금, 그 모든 것들은 하이델 마을과 함께 부서져 있었다.

검은 돌은 금이 가 있었고, 흰 조약돌은 흩어져 있었다.

어떤 돌은 피로 얼룩졌고, 어떤 돌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날 밤 모두가 둘러앉아 노래를 불렀던 원형 공간은 이제 무언가를 묻은 무덤처럼 고요했다.


그날, 라크는 하이델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폐허 속에서 마음속에서 처음으로 결심했다.

‘세상을 다시 쓰겠다.’

라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는 멎었고, 날은 어두워졌다.

그의 눈동자엔 별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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