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무대 위의 빛

아이의 성탄 발표회장, 객석에 앉은 아버지



강당 뒷자리에 앉았다. 이미 앞쪽은 다른 부모들로 꽉 차 있었다. 늦게 도착한 탓이었다. 회사에서 서둘러 나왔지만 교통이 막혔고, 발표회 시작 10분 전에 겨우 도착했다. 아내가 앞쪽 어딘가에 앉아 있을 것이라 생각해 손을 흔들어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무대에 조명이 켜졌다. 빨간 커튼이 천천히 열리며 아이들이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하얀 옷을 입고 반짝이는 머리띠를 두른 모습이었다. 우리 아이가 어디 있나 눈을 가늘게 떴다. 왼쪽에서 네 번째에 작은 얼굴이 긴장한 표정으로 객석을 보고 있었다. 나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들어 흔들었지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멀었으니까.



음악이 흘러나왔다. 캐럴이었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강당을 채웠다. 어떤 아이는 크게 불렀고, 어떤 아이는 입만 벙긋거렸다. 우리 아이는 열심히 부르고 있었다. 손동작도 따라 하고 있었는데 박자가 조금 늦었지만 괜찮았다. 무대 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옆자리 아버지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고 있었다. 나도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줌을 당기니 아이의 얼굴이 크게 보였다. 녹화 버튼을 눌렀다. 작은 화면 속에서 아이가 움직이며 노래하고, 웃고, 손을 흔들었다. 무대 조명이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첫 번째 노래가 끝났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도 손뼉을 큰 소리로 쳤다. 아이들이 인사를 했고, 허리를 90도로 숙이는 모습에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귀여웠다.

아이들은 무대에서 내려가 다음 순서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무대가 어두워지고 다시 조명이 켜졌다. 이번에는 연극이었다. 아이들이 배역을 맡아 대사를 했고, 우리 아이는 천사 역할이었다. 날개를 달고 나왔는데 하얀 날개가 조명에 반짝였다. 대사는 짧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한 문장이었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연습을 많이 했나 보다.


객석에서 또 박수가 나왔고 무대 위 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자신감 있는 표정이었고, 잘했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가슴이 뜨거워졌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 이러나 싶었다. 그냥 학교 발표회인데. 하지만 참을 수 없었다. 저 작은 사람이 자라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연극이 끝나고 아이들이 다시 일렬로 서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커튼이 천천히 닫혔다. 발표회가 끝났다.

사람들이 일어섰고 나도 일어났다. 출구 쪽으로 사람들이 몰렸지만, 나는 무대 쪽으로 갔다. 아이를 찾아야 했다.



복도에 아이들이 우르르 나왔다. 부모들이 아이를 찾아 이름을 불렀고, 우리 아이가 보였다. 아내와 함께 서 있었는데 날개를 아직 달고 있었다. 다가가니 "아빠!" 하며 뛰어와 안아 올렸다. 가벼웠다.

"잘했어, 우리 천사." 머리를 쓰다듬었다.

"봤어?" 하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 봤어. 정말 잘했어."


웃는 아이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긴장했나 보다.

손으로 땀을 닦아주며 "목 안 마르니?" 하고 물으니 "응, 괜찮아" 하고 대답했다. 아내가 물병을 건넸고, 아이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천천히 마셔." 물병을 내리며 숨을 쉬더니 "힘들었지?" 하는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재밌었어."


복도가 시끄러웠다. 아이들 목소리, 부모들 목소리,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천장에 걸려 있었고, 반짝이는 전구들이 켜져 있었다.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는 그 속에 섞여 있었다. 평범한 가족으로, 평범한 주말 오후를.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아이가 내 손을 잡았고, 작은 손이 내 손을 꽉 쥐었다.

"아빠, 나 잘했지?" 물었다. "응, 최고였어." 대답했다.

"엄마도 그렇게 말했어." 아이가 웃었다.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당연했다. 잘했으니까.

차에 타서 아이를 뒷좌석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채워줬다.

"배고파?" 물으니 "응" 하고 대답했다. "뭐 먹고 싶어?" "치킨!" 아내가 웃으며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치킨 먹자" 하고 말했다. 아이가 환호했다. "야호!" 작은 목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


차를 출발시켰다. 백미러로 아이를 봤다.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여전히 날개를 달고 있었다. 집에 가서 벗어야 할 텐데, 하지만 지금은 그냥 두기로 했다. 천사 날개를 단 아이. 오늘만큼은 천사였다. 무대 위에서 빛났던 작은 천사.


신호등에 멈췄다. 아내가 "영상 찍었어?" 하고 물었다. "응, 찍었어." "나중에 같이 보자." "그래."

신호가 바뀌어 다시 출발했다. 치킨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평범한 토요일 저녁이었지만 특별한 날이기도 했다.



치킨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 테이블에 치킨을 올려놓으니 아이가 날개를 벗으며 "이거 어디 둬?" 하고 물었다. "방에 두자." 함께 방으로 가서 날개를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하얀 날개가 책상을 차지했다. "이거 또 쓸 수 있어?" "응, 내년에도 쓸 거야." "그럼 잘 보관해야겠다." 고개를 끄덕였다.


거실로 돌아와 함께 치킨을 먹었다. 아이가 신나서 떠들었다. 무대에서 있었던 일, 친구들 이야기, 선생님이 한 말을 모두 다 말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며, 웃으며 들었다. 아이의 목소리가 집 안을 채웠다.


치킨을 다 먹고 소파에 앉으니 아이가 내 옆에 붙어앉았다. "아빠, 영상 보여줘."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찾아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무대가 나타났고 작은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 아이도 보였다. "저기 나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응, 네가 제일 잘하네." "당연하지!"


영상이 끝났다. 아이가 "다시 한 번" 하고 말했다. 다시 재생했다. 또 봤다. 세 번, 네 번,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겹지 않았다. 볼 때마다 새로웠고, 볼 때마다 자랑스러웠다. 저 작은 사람이 내 아이라는 게.



아이를 재웠다. 이불을 덮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늘 정말 수고했어" 하고 속삭였다. 아이가 웃으며 "고마워, 아빠" 하고 눈을 감았다. 금방 잠들 것 같았다. 피곤했을 것이다. 긴장도 했고 신나기도 했으니까. 불을 끄고 방을 나왔다.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으니 아내도 옆에 앉았다. "오늘 보러 와줘서 고마워." 아내가 말했다. "당연히 꼭 봐야 지." "회사에서 일찍 나오느라 힘들었지?" "괜찮아. 이런 날 못 보면 후회할 것 같았어."


창밖을 봤다. 밤이었다. 12월의 밤이었고 차가운 공기가 창문 너머에 있었지만, 집 안은 따뜻했다. 아이가 자고 있고, 아내가 옆에 있고, 나는 여기 앉아 있었다. 평범한 주말이었지만 기억에 남을 주말이었다.


스마트폰을 다시 켜서 영상을 한 번 더 봤다. 무대 위 아이, 조명을 받으며 노래하는 아이, 작은 목소리로 대사를 말하는 아이, 환하게 웃는 아이, 성장하고 있는 아이. 나의 아이.



영상을 저장했다. 앨범에 저장하고 백업도 했다. 이 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가 크면 함께 볼 것이다. "너 이때 이랬어" 하며 웃을 것이고, 아이는 쑥스러워하겠지만 좋아할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알게 될 것이다.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서둘러 회사를 나선 것, 막힌 도로, 강당 뒷자리, 무대 위 아이, 작은 목소리, 하얀 날개, 박수 소리, 아이의 웃음, 치킨, 영상. 모든 순간이 선명했다. 잊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가 된다는 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객석에 앉아 아이를 보는 것, 작은 무대 위에서 빛나는 아이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무엇을 해도 자랑스러운 것, 잘해도 못해도 사랑스러운 것, 그 사람의 성장을 목격하는 것, 그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었다.


눈을 감았다.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대 위에서 웃던 얼굴, 자신감 있던 표정, 날개를 달고 서 있던 모습. 그 순간을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 나였다. 객석에서 영상을 찍으며 웃고 있던 사람, 아버지.


내일 아이는 또 자랄 것이다.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자라다가 어느 날 문득 많이 컸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안아 올릴 수 없을 만큼, 더 이상 손을 잡고 걷지 않을 만큼. 그때가 오면 아쉬울 것이지만 괜찮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영상으로 남겨뒀으니까.


잠이 왔다.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빠, 나 잘했지?" "응, 최고였어." 그 대화가 반복됐다. 꿈속에서도 그 목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작은 무대 위 작은 빛, 나의 아이, 자라고 있는 사람, 지켜보고 싶은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오늘 있었다.





본문하단 이미지.jpg


이전 06화허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