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 속의 고요

연말 모임 장소의 소음, 창밖의 어둠



금요일 저녁 7시, 회사 송년회였다. 강남 어딘가의 회식 장소였는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들어서는 순간 소음이 귀를 때렸다. 사람들의 목소리, 웃음소리, 술잔 부딪치는 소리, 음악 소리가 뒤섞여 공기를 채웠다. 12월 연말이라 그런지 이 건물 안 모든 층에서 비슷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송년회의 계절이었다. 한 해를 보내는 소음의 계절.


예약된 룸으로 들어갔다. 이미 몇 명이 와 있었다. "왔어요?"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안주가 몇 접시 놓여 있었고, 소주병과 맥주병이 줄지어 서 있었다. 곧 시작될 밤의 예고편이었다. 오늘 밤 우리가 나눌 시간들의 서막.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룸이 꽉 찼다. 부장이 건배사를 했다. "올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짧고 간결했다. 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 잔을 들었다. "건배!" 소리가 울렸고, 술잔이 부딪쳤다. 첫 잔을 비웠다. 목으로 넘어가는 소주의 쓴맛이 확실했다. 한 해의 무게가 그 쓴맛 안에 녹아 있는 것 같았다.


대화가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터져 나왔다. "올해 정말 힘들었죠", "그래도 잘 마무리했잖아요", "내년에는 좀 나아질까요", "글쎄요, 비슷하지 않을까요". 비슷한 대화들이었다. 매년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모두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정말 힘들었고, 정말 내년이 나아지길 바랐다. 알면서도 바라는 마음들이 테이블 위를 떠돌았다.


옆자리 동료가 말을 걸었다. "오늘 분위기 좋네요." "그러네요." 대답했다. 분위기는 확실히 좋았다. 모두 들뜬 표정이었고, 웃고 있었으며, 목소리가 커져 있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였고, 그동안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술은 그걸 돕고 있었다. 언어가 되지 못한 피로를 녹여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소음은 더 커졌다.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고, 웃음소리도 거칠어졌으며, 술잔이 더 자주 부딪쳤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회식 특유의 열기가 룸 안을 가득 채웠다.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었지만 땀이 났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술 때문인지 열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장실 다녀올게요."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시끄러웠으니까. 모두 자기 대화에 빠져 있었으니까. 룸 문을 열고 나왔다. 복도가 조용했다.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다른 룸에서도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나았다. 숨을 쉴 수 있었다. 내 호흡 소리가 들릴 정도로.


화장실로 가지 않고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복도 끝에 큰 창문이 있었다. 창밖을 봤다.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빌딩들의 불빛이 반짝였고,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흘러갔으며, 가로등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고요해 보였다.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까. 유리 한 장이 만든 침묵이었다.



창문에 이마를 대고 서 있었다. 차갑고 시원했다. 술기운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귓가에는 여전히 소음이 들렸지만, 여기서는 멀게 느껴졌다. 한 발자국 물러나니 모든 게 달라 보였다.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그곳이 낯설어 보였다.


뒤를 돌아봤다. 룸 문 틈새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소리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 웃고, 떠들고, 마시고, 즐기고 있었다. 나도 조금 전까지 저 안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밖에 있었다. 참여자가 아니라 관찰자가 되어 있었다. 이상한 전환이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함께 있지만 함께 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속해 있지만 속해 있지 않은 기분이었다. 소음 속에 섞여 있다가도 문득 고요를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웃다가도 혼자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특히 그랬다. 활기가 클수록 고독도 선명해졌다.



룸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자 소음이 다시 쏟아져 들어왔다. 파도처럼 밀려왔다. 내 자리로 걸어갔다. 아무도 내가 없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모두 자기 대화에 열중해 있었다. 각자의 이야기에 몰두해 있었다. 앉았다. 술잔을 들었다. 마셔야 했다. 여기 있으려면 함께 마셔야 했다. 그게 이 자리의 규칙이었다.


건너편에 앉은 과장이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 정말 힘들었죠?"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든 정신이든 정말 힘들었어요." 진심이었다. "하지만 잘 끝냈잖아요." "그래도 아쉬운 게 많아요."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위로였다. 감사했다. 술잔을 부딪쳤다. 마셔야 할 이유가 생겼다. 아니, 이유가 필요 없었는지도 몰랐다. 그냥 함께 있으니까 마시는 것이었다.


옆자리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내년에는 좀 쉬워질까요?" 웃었다. "글쎄요,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 정말요?" "아마도요." 모두 웃었다. 쓴웃음이었지만 웃음은 웃음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웃음이었다.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바라는 마음으로 웃는 것이었다. 웃음 속에 체념과 희망이 뒤섞여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며 사람들이 하나둘 취해갔다. 얼굴이 붉어졌고, 말이 느려졌으며, 눈빛이 흐려졌다. 나도 취했다. 많이 취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취했다. 이 정도면 괜찮았다. 너무 취하면 내일 후회하고, 덜 취하면 오늘 어색하니까. 적당한 취기가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줬다.


부장이 또 건배를 제안했다.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요. 진짜 고생 많았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의 눈가가 붉어져 있는 것 같았다. 모두 잔을 들었다. "건배!" 또 한 번 울렸다. 술을 마셨다. 목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마셨다. 함께 있으려면 함께 마셔야 했다. 함께 아파야 했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 정말 열심히 살았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열심히 살았어요." "인정해야 해요, 우리 자신을." "맞아요, 우리 정말 대단해요." 자화자찬이었지만 진심이었다. 정말 열심히 살았고, 정말 대단했으니까. 서로를 위로하는 말들이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9시가 넘었다. 1차가 끝나갈 시간이었다. 누군가 물었다. "2차 가실 분?" 몇 명이 손을 들었다. 젊은 사람들이었다.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고, 내일도 있었으며, 더 이상 마시면 힘들 것 같았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고개를 숙이고 룸을 나왔다. 문을 닫자 소음이 작아졌다.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점점 멀어졌다. 한 발 한 발 걸을 때마다 그 소리는 희미해졌다.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술기운이 깨는 것 같았다. 하늘을 봤다. 별이 없었다. 서울 하늘은 항상 그랬다. 불빛이 너무 많아서 별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별이 없어도 괜찮았다. 내일은 토요일이었고, 쉬 수 있었으며, 집에 가면 가족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집 주소를 말했다. 기사님이 출발했다. 창밖으로 서울의 밤거리가 흘러갔다.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고, 여전히 불빛으로 가득했으며, 여전히 활기찼다. 연말의 거리였다. 모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모임을 갖고, 술을 마시고, 함께 웃고 있었다. 나처럼, 우리처럼.


스마트폰을 꺼내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곧 도착해. 밥은 먹었어?" 답장이 왔다. "응, 먹었어. 조심히 와." 간단한 메시지였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소음 속에서 나를 기다리는 고요가 있다는 것이.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요금을 계산하고 내렸다. 현관문을 열었다. 집 안이 조용했다. 아이는 잠든 것 같았고, 아내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왔어?" "응." "술 많이 마셨어?" "적당히." "괜찮아?" "응, 괜찮아." 짧은 대화였지만 충분했다. 더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물소리가 귓가를 씻어내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회사, 송년회, 소음, 술, 사람들, 웃음, 대화, 위로. 많은 일이 있었다. 피곤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함께 있다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 서로를 위로한다는 것이 의미 있었다. 그게 연말이고, 그게 우리였다.


하지만 동시에 고독했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혼자였고, 웃으면서도 쓸쓸했으며, 함께 있으면서도 떨어져 있었다. 그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모두 그럴 것이다. 함께 있지만 각자 자기 생각에 잠겨 있고, 웃지만 각자의 슬픔을 안고 있으며, 떠들지만 각자의 고요를 품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활기 속에서 고요를 느끼며 산다.


창밖을 봤다. 12월의 밤이었다. 한 해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송년회들이 계속될 것이다.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사람들은 모이고, 마시고, 웃고, 헤어질 것이다. 그렇게 2025년을 보낼 것이다. 그렇게 또 한 해를 보낼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의식처럼.



눈을 감았다. 귓가에 아직도 소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목소리, 웃음소리, 술잔 부딪치는 소리. 하지만 점점 멀어졌다. 고요가 찾아왔다. 진짜 고요였다. 혼자만의 고요였다. 활기 속에서 느낀 고요가 아니라, 진짜 고요 속에서 느끼는 고요였다. 소음이 없어야 비로소 들리는 침묵이었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소음 속에서 살지만, 결국 고요로 돌아간다.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결국 혼자다. 활기 속에 섞여 있지만, 결국 각자의 고독을 안고 있다. 그게 슬픈 일은 아니었다. 그저 삶의 모습이었다.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인 우리, 웃으면서도 쓸쓸한 우리, 떠들면서도 고요한 우리.


내일은 쉬는 날이다. 천천히 일어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소음 없이, 술 없이, 사람들 없이. 그냥 나와 가족만 있으면 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활기가 아니라 고요가 필요한 시간이 있다. 함께가 아니라 혼자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잠이 왔다. 고요 속에서 잠들었다. 송년회의 소음은 이제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남은 건 침묵뿐이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활기 속의 고요를 견뎌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요였다. 소음을 통과해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침묵이었다.


12월은 계속된다. 송년회도 계속될 것이다. 다시 모이고, 다시 마시고, 다시 웃고, 다시 헤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이 고요를 느낄 것이다. 그게 연말이고, 그게 우리의 삶이다. 활기와 고요 사이를 오가며, 함께와 혼자 사이를 오가며, 소음과 침묵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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