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린 백화점 앞, 반짝이는 전구와 캐럴
토요일 저녁이었다.
아내와 나란히 백화점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즈음이면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일, 선물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아이에게 줄 것, 부모님께 드릴 것, 그리고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물건 하나. 매년 반복되는 일정인데도 마음 한쪽이 괜히 들뜨는 건, 그날만큼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에 가까워서였을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트리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몇 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나무에 전구가 촘촘히 박혀 있었고, 꼭대기엔 금빛 별이 천천히 숨 쉬듯 빛나고 있었다. 트리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연인, 가족, 친구들. 각자의 속도로 스마트폰을 들고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잠깐 멈추는 순간조차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듯이.
캐럴이 흘러나왔다. 어디서나 들리는 노래, 12월이면 자동으로 귀에 익는 멜로디. 익숙해서 새롭지 않은데도, 들을 때마다 계절이 확실해지는 음악이었다.
백화점 안은 밖보다 더 환했다.
천장에는 눈송이 장식이 매달려 있었고, 기둥마다 리본이 감겨 있었다. 산타 인형들이 곳곳에 서 있었고, 조명은 평소보다 한 톤 밝았다. 바닥과 진열대가 모두 반짝여서, 공간 전체가 잠시 현실에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많았다. 주말의 밀도에 연말의 열기가 더해진 느낌이었다. 쇼핑백을 든 손들, 계산대 앞의 줄, 빠른 걸음으로 오가는 직원들. 웃음을 유지한 얼굴 끝에 피로가 살짝 묻어 있었지만, 그조차도 이 계절의 일부처럼 보였다.
아내가 내 팔을 잡았다.
“아이 선물부터 볼까?”
짧은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베이터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숨이 조금 답답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다들 이 정도는 감수하는 얼굴들이었다.
완구 코너에 도착하자 소리가 먼저 밀려왔다. 아이들의 목소리, 장난감이 내는 전자음, 부모들이 아이를 달래는 낮은 톤의 말들. 진열대에는 로봇과 인형, 보드게임과 블록들이 빼곡했다.
며칠 전 아이가 보여줬던 로봇을 떠올리며 둘러봤다. 변신하는 로봇. 찾고 보니 금방 눈에 띄었다. 가격표를 보는 순간 잠깐 숨이 멎었지만,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다. 아이가 떠올랐다. 그 표정 하나면 충분했다.
아내는 곁에서 곰 인형을 집어 들었다.
“이것도 괜찮은데?”
괜히 웃음이 났다. 결국 둘 다 샀다. 로봇과 인형. 포장을 부탁하자 직원이 빨간 리본을 묶어주었다. 손끝에서 매듭이 완성되는 순간, 선물이 비로소 선물처럼 보였다.
부모님 선물은 의류 코너에서 골랐다.
아버지에겐 목도리, 어머니에겐 스카프. 매년 비슷했지만, 그만큼 실패 없는 선택이었다. 캐시미어의 부드러운 감촉을 손으로 한 번 더 확인했다. 가격이 가볍지는 않았지만, 그 무게가 오히려 안심처럼 느껴졌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니 손에 쇼핑백이 여러 개 들려 있었다. 손목이 조금 당겼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고른 물건들이 손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이 그랬다.
1층으로 내려와 출구 쪽으로 향하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유리창 너머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합창단이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정돈된 화음이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퍼졌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아내와 나란히 서서 노래를 들었다. 주변 사람들도 말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눈을 감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이를 안은 채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 같은 속도로 숨 쉬는 것처럼 보였다.
공연이 끝나자 박수가 번졌다. 짧고 단정한 인사, 흩어지는 사람들. 우리도 다시 길을 나섰다.
밖은 추웠다.
하지만 가로수마다 감긴 전구 덕분에 거리는 환했다.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었고, 가족들이 나란히 보폭을 맞췄다. 하얀 입김이 웃음과 함께 공중으로 흩어졌다.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이 거리에서는 이상하게도 쓸쓸하기보다 다정하게 느껴졌다.
노점에서 군밤 냄새가 났다.
“사 갈까?”
고개를 끄덕이자 종이봉투가 손에 쥐어졌다. 하나를 까서 입에 넣었다. 따뜻하고 고소했다. 겨울은 이런 맛으로 기억되는 계절일지도 모른다.
카페에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 핫초코를 마시며 밖을 바라봤다. 불빛은 계속 반짝였고, 사람들은 계속 지나갔다. 영화처럼 보였지만, 알고 있었다. 저 장면들이 모두 현실이라는 걸.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은 조용했다.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피곤한 얼굴들이었지만, 어딘가 정리된 표정들이었다. 해야 할 일을 마친 사람들 특유의 얼굴.
집에 도착해 쇼핑백을 내려놓자 손이 비로소 가벼워졌다.
“어디 숨길까?”
잠깐의 상의 끝에 다락을 선택했다. 아이가 쉽게 찾지 못할 곳. 크리스마스까지 그대로 둘 장소.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았다. 우리 동네도 나름의 연말을 맞고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은 조명들이 성실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크리스마스 특집이 흘러나왔다. 화면 속 웃음이 조금 과해 보여서, 소리를 줄였다. 대신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반짝였던 공간, 무거웠던 쇼핑백, 따뜻했던 군밤.
침대에 누워 불을 끄기 전, 이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게 잠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 그래서 더 집중하게 되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는 생각.
눈을 감으니 낮부터 들리던 캐럴이 희미하게 맴돌았다.
지겹도록 반복된 멜로디인데도, 12월이 지나면 또 그리워질 노래.
곧 일상이 돌아오겠지만, 오늘 같은 저녁이 그 일상을 조금은 견디게 해줄 것이다. 반짝임과 고요함 사이에서, 우리는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