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가 머무는 길 위에서
늦은 오후, 덕수궁 돌담길에 빛이 기울었다.
우리는 나란히 걷고 있었다.
말이 없어도 괜찮았다.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
발걸음의 리듬,
그 사이로 스며드는 고요.
그게 전부였다.
대한문을 지나 석조전 앞에 섰다.
햇살에 닿은 건물의 표면이
세월의 색으로 반짝였다.
“저기 봐, 경비대.”
아내가 손짓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경비대원들이
꼿꼿이 서 있었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었고,
우리도 서툴게 셀카를 남겼다.
그 웃음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궁의 담장, 근대식 건물, 현대의 카페가
한 풍경 안에 겹쳐 있다.
마치 우리의 시간처럼.
정동길의 작은 도서관에 들어섰다.
책 냄새가 좋았다.
아내는 책을 펼쳤고,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여기 공연장 있었지?”
“응, 정동극장.”
언젠가 공연을 보러 오자고 약속했다.
그 짧은 대화가 유난히 따뜻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미사는 끝났지만, 성당은 열려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기도의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함께 있는 그 시간 자체가
기도 같았다.
성당을 나서자 저녁이 내려앉았다.
“저녁 뭐 먹을래?”
“회 어때?”
“좋지.”
작은 횟집에서 광어회를 시켰다.
소주잔을 부딪치며 웃었다.
“오늘 좋았어.”
“응, 나도.”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딸기가 듬뿍 올라간 팥빙수를 하나 시켰다.
“한 입만.”
“조금만.”
“너 더 먹어.”
소소한 실랑이,
그마저도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내의 손이 차가웠다.
내 손으로 감싸 쥐었다.
오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함께여서 충분히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