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약속이 있는 겨울날
유리창 밖으로 하얀 눈이 흩날렸다.
아내가 창밖을 향해 손가락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여보, 첫눈이야.”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들었다.
조용히 내리는 눈.
그리고 그 눈을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
우리는 오래전부터 약속해 두었다.
첫눈이 내리면, 청량리 시장으로.
크고 화려한 곳이 아니라, 서로에게 익숙한 온기가 남아 있는 곳으로.
두툼한 패딩에 목도리를 감고, 우리는 지하철을 탔다.
첫눈 날엔 늘 그렇다.
차가 아닌 지하철.
유리창에 비치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으니까.
청량리에 도착하자, 골목은 이미 통닭 냄새로 따뜻했다.
어느 가게 하나를 고르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래된 간판, 약간 기울어진 플라스틱 의자,
그리고 테이블 위로 김이 피어오르는 볶음소금.
우리는 옛날통닭 한 마리와 닭강정, 생맥주 두 잔을 시켰다.
“한 잔 할까?”
아내가 먼저 잔을 들어 올렸다.
여느 날보다 조금 더 밝은 표정이었다.
“짠.”
잔이 닿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했다.
바삭한 소리, 달콤한 양념이 손끝에 묻고,
아내는 그걸 살짝 닦으며 웃었다.
“이 맛이 겨울이지.”
아내가 말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겨울의 정답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오갔다.
“괜찮지?”
“응, 좋아.”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배를 채운 후 골목을 걸었다.
눈은 어깨 위로 소복이 내려앉았다.
작은 액세서리 가게 앞에서 아내가 멈췄다.
고양이 모양의 키링 하나를 들고,
조심스럽게 내게 보여주었다.
“귀엽지 않아?”
“응, 우리 가방에 달아볼까.”
그렇게 겨울을 담은 키링 하나가
우리의 시간 속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시장을 지나 조금 걷자
오래된 단관 극장을 개조한 스타벅스 건물이 나타났다.
한때는 영화를 상영하던 곳,
지금은 사람들이 머무는 따뜻한 공간.
운 좋게 창가 자리 하나가 비어 있었다.
아내는 라떼를, 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리고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
케이크 위에 내려앉은 초콜릿 가루를
아내가 포크 끝으로 살짝 떠서 내 쪽으로 밀어주었다.
“먼저 먹어봐.”
그 말투가 참 부드러웠다.
한 입 베어 무니 달콤함이 천천히 퍼졌다.
아내는 내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행복하다.”
나 역시 행복한 미소를 가득 담아,
컵을 들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눈 아래에는,
우리가 함께 앉아 있었다.
지하철 안,
아내는 내 어깨에 살짝 기대 잠들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깨우고 싶지 않아서.
유리창 밖으로 스치는 겨울의 불빛들이
느리게, 부드럽게 지나갔다.
집에 도착해 신발을 벗으며 아내가 말했다.
“오늘... 참 좋았다.”
“응. 나도 그래.”
평범한 하루였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 둘만의 겨울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