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

거울 속 타인을 마주하는 시간



아침 세면대 앞에서였다. 칫솔을 입에 문 채로 거울을 보다가 멈췄다. 관자놀이 근처,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 가닥 하나가 섞여 있었다. 어제까지는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 어쩌면 어제도 있었는데 내가 못 봤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그걸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손을 뻗어 그 머리카락을 만졌다. 다른 머리카락과 질감이 달랐다. 좀 더 뻣뻣하고 거칠었다. 뽑을까 생각하다가 손가락으로 집었다가 놓았다. 뽑아봤자 또 날 거라는 걸 알았다. 이건 시작이었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열이 되고, 어느 순간 세지 않게 될 것이다.


거울 속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눈가에 잔주름이 있었다. 웃을 때 생기는 주름이 아니라, 웃지 않아도 남아 있는 주름이었다. 피부는 예전처럼 팽팽하지 않았고 턱선도 조금 흐려진 것 같았다. 이 얼굴이 내 얼굴이 맞나 싶었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 오늘은 낯설었다.



처음 흰머리를 발견한 건 서른다섯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는 신기했다. '아, 나도 이제 흰머리가 나는구나' 정도의 감상으로 뽑아버리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흰머리 하나가 단순히 색 변화가 아니라는 걸 안다. 이건 시간이 남긴 표식이다. 내 몸이 말하고 있는 거다. 너는 늙고 있다고.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거울에 물기가 맺혔다가 천천히 흘러내렸다. 흐릿해진 거울 속에서 내 얼굴도 번져 보였다. 윤곽이 희미해진 얼굴을 보며, 어쩌면 이게 더 정확한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명한 척하지만 사실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는 얼굴.


회사에 도착해서 화장실에 다시 들렀다. 형광등 아래서 거울을 보니 집에서보다 더 밝았고, 그래서 더 적나라했다. 눈 밑 다크서클, 이마의 가로주름, 입가의 팔자주름이 모두 제자리에 있었다. 어제도 있었고, 그제도 있었을 주름들인데, 왜 오늘따라 유독 눈에 띄는 걸까.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화면에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검은 화면에 반사된 얼굴은 윤곽만 보였는데, 오히려 그게 편했다. 세밀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변화도 느리게 보이니까.


점심시간, 식당에서 동기를 만났다. 그도 나와 같은 나이였다. 머리숱이 예전 같지 않았고 이마가 넓어진 게 눈에 띄었지만, 그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서로 모르는 척했다. 나이 드는 건 함께 겪지만 함께 말하지는 않는 일이었다.


밥을 먹으며 그가 말했다. "요즘 계단 오르면 숨차."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것뿐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혼자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오후 회의 중에 문득 손등을 봤다. 혈관이 도드라져 보였다. 예전에는 이렇게 선명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손등의 피부도 조금 거칠어진 느낌이었다. 손바닥을 펴고 오므렸다. 관절이 뻣뻣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냥 예전 같지 않았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와 서랍에서 오래된 명함을 꺼냈다. 10년 전 명함이었다. 사진이 박혀 있었는데, 젊은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다. 눈빛이 또렷했고 피부가 팽팽했으며 턱선이 날카로웠다. 이 사람이 나였다. 그런데 지금의 나와는 닮지 않았다.


명함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10년이면 긴 시간이다.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생각해봤다. 결혼, 아이 출산, 승진, 이사. 많은 일이 있었다. 행복한 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었는데, 그 모든 시간이 내 얼굴에 새겨진 것이다. 주름 하나하나가 사건이었다.


명함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과거의 나와 작별하는 기분이었다. 그 얼굴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중요한 건 그 얼굴을 그리워할 것이냐, 아니면 지금의 얼굴을 받아들일 것이냐였다.



퇴근 후 집 근처 공원을 걸었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봤다. 해가 지고 있었다. 구름이 주황빛으로 물들어 아름다웠지만, 석양은 항상 쓸쓸했다. 끝나가는 것의 아름다움은 어쩔 수 없이 슬프다.


옆 벤치에 노인이 앉아 있었다. 흰머리가 대부분이었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다. 나는 저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저게 나의 미래다. 30년 후, 혹은 40년 후의 내 모습. 피할 수 없다.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노인이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갔다. 허리가 약간 굽어 있었고 걸음걸이도 느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걷게 될 것이다. 무서웠지만, 동시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사는 게 그런 거니까.


벤치에서 일어나 집으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몸이 무거운 게 아니라 마음이 무거웠다. 나이 든다는 건 몸의 변화만이 아니었다. 마음도 함께 변한다. 가벼운 것들이 무거워지고, 선명했던 것들이 흐릿해진다.



집에 들어서자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왔어?" 평범한 인사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거울 앞에 섰다. 다시 내 얼굴을 봤다. 아침에 봤던 그 흰머리가 여전히 거기 있었다. 뽑지 않기로 했다. 그냥 두기로 했다.


손으로 그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얼굴이 지금의 나다. 젊지 않다. 주름이 있다. 흰머리가 난다. 그래도 괜찮다. 이게 내가 살아온 시간의 증거니까.


거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생각했다. 나이 든다는 건 추해지는 게 아니다. 변하는 것이다. 젊음에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성숙으로 가는 것이다. 탄력을 잃는 대신 깊이를 얻고, 매끈함 대신 질감을 얻으며, 빠름 대신 신중함을 얻는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완전히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믿으려고 노력했다. 이 낯선 얼굴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매일 아침 마주하게 될 얼굴이니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어두운 방 안에서는 나를 볼 수 없었다. 거울도 없고 사진도 없었다. 그냥 내가 나를 느끼는 것만 있었다. 몸의 감각, 피곤함, 뻐근함, 묵직함. 이것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켜서 사진첩을 열었다. 몇 년 전 사진들이 나왔다. 젊은 내가 웃고 있었고, 아이를 안고 있는 내가 있었으며, 여행지에서 손을 흔드는 내가 있었다. 모두 과거의 나였다. 그 나는 이미 없다. 지금 여기 누워 있는 나만이 진짜다.


사진을 계속 넘겼다. 최근 사진까지 왔다. 얼굴이 달라져 있었다. 조금씩, 천천히 변해왔다. 어느 순간 확 변한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변했는데, 그걸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오늘 거울 앞에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나는 이미 변해 있었다는 것을.


사진첩을 닫았다. 내일 아침에도 거울을 볼 것이다. 그리고 또 낯설 것이다. 하지만 덜 놀랄 것이다. 이미 한 번 마주했으니까.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천천히 받아들이면 된다.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내 얼굴을 떠올렸다. 흰머리, 주름, 흐려진 턱선. 모두 나였다. 낯설지만 나였다. 타인 같지만 나였다. 거울 속 그 얼굴은 내가 되어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이 든다는 건 자신을 잃는 게 아니다. 다른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 젊은 나와 작별하고, 나이 든 나를 맞이하는 것. 그 과정이 낯설고 두렵지만, 피할 수는 없다. 거울은 매일 진실을 보여준다. 받아들이든 외면하든, 변화는 계속된다.


잠이 왔다. 내일은 조금 덜 낯설기를. 그렇게 바라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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