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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수 Aug 31. 2017

행복의 조건은 격리다.

[일상잡설]

행복의 조건은 격리(隔離)다.


이것과 저것, 이 사람과 저 사람, 여기와 저기를

얼마나 적절히 격리시키느냐는

행복 지킴이의 필수다.
행복을 관계관리 차원에서 바라보면 그렇다.

가정을 꾸렸나?

그래서 새로운 관계의 유닛을 생성했나?

그렇다면 유별난 시부모와 복잡한 가족력의 시댁이 내 경계를 넘어

아내와 가족에게 전이(轉移)되지 않도록 차단해야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전쟁 같은 비즈니스를 치르고 퇴근한다면,

회사에서 얻은 상흔은 현관문 앞에서 격리시켜야 홈 스위트 홈이다.

기쁨은 함께 나눠도

슬픔은 서로 격리시켜야 한다.

격리는 나와 연결된 관계의 객체들이

각자 행복하기 위해서 내가 세팅해줘야 할 기본 전제다.

제때 제대로 그들을 격리시키지 않으면 내가 행복에서 격리되고 막 그런다.


대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퍼지는 불행의 전이는

관용적(慣用的) 착각에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행복하기를 바란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모든걸 함께 해야 한다고도 믿는다.

여기서부터는 문제다.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고통도 모두 나눌 수 있거나

혹은 그래야 한다고 요구한다.

여기서부터는 큰 문제다.

이런 믿음은 착각을 넘어 우격다짐에 가깝다.
상대는 물론 스스로에게조차 그렇다.

이는 전통적이고 습관적이며,

자기연민적인 대단한 오판이다.

소통의 대상은

모두는 아니어야 하고,

모든 것도 아니어야 한다.

관계 속에서 행복하기 바란다면,

소통은 통제되어야 한다.


종종 소통은 정보의 교류에 그치지 않고,

감정의 동조화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감정이나

불행한 감정이라도 그것이 감당할 만큼이라면

동조화 돼도 괜찮다.

그것으로 인해 관계가 무너지진 않는다.

오히려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속적인 슬픔의 공유, 강한 고통의 분담요구는

관계에 균열을 부른다.  


그래서 관계는

철저히는 아니어도

적절히는 격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인간관계에서 행복은

소통보다 격리가 우선이다.

경리 아니다. 격리다.


P.S.

때로는 누구와 누구를 격리시키냐가 문제가 아닐 때도 있다.

그들로부터 나를 격리시키면 모두가 행복한 경우가 있다.

 

회식할 때 나는 웃는데 직원들은 똥씹고 있다면 스스로를 격리시키자.


"그러면 격리가 내게 행복이 아니라 불행의 시작이잖나?"


그렇겠지.

하지만 생각해보자.


나 하나 격리시켜서

나 빼고 나머지는 다 행복하다.


역방향으로 생각해도 역시

격리는 행복의 조건인게지.

2차는 늬들끼리 가. 그래서 행복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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