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칠한 객관보다 민낯의 편견이 낫다]
1.
솔직히 말해보자.
김상조나 공정위가 네이버를 보는 시선은 새삼스럽지 않다. 원래 그랬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일의 김상조 인터뷰도 예전처럼 그냥 그런 모습이었다. 단지 차이는 ‘잡스’를 비유로 들었다는 점이다. '한낱(?) 공무원이 잡스 운운해서 짜증 울컥'들 했다. 아니라고 가슴에 손얹고들 말할 수 있겠나. 만만한게 공무원이다.
만약 같은 말을 성공한 톱 레벨의 벤처기업인이 했다면? 그가 네이버 시장독점을 문제제기하며 잡스를 입에 담았다면? 그래도 지금 김상조에게 하듯이 과하다, 오만하다, 건방지다는 욕을 수두룩하게 던졌을까. 아마 그랬다면 담론은 오히려 심층적으로 발전했을지 모른다. 이렇게 김상조에 쏟아진 격앙된 반응들은 아니었을게다. 참으로 무의미하고 소모적이다. 그 수많은 욕 댓글들이 ‘어디서 (한낱 공무원 따위가) 잡스 어쩌고냐, 뭐 아냐?’는 논평이라니.
2.
이재웅이 이해진을 두둔하며 김상조를 격하게 나무랐다. 그가 쓴 말 역시 ‘오만’이다. 시선이 쏠리자 그는 이를 ‘부적절’로 수정했다.
이재웅씨 발언의 본질은 비합리적인 정부 규제를 지적하려는 것이리라 애써 이해해본다. 그래도 뉘앙스는 '당신이 뭘 안다고 어딜 감히..' 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여전히 그게 웃기다.
김상조가 이해진 깎아내리자…이재웅 “김, 오만하다” 직격탄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0/2017091002084.html
3.
그렇다. <오만>이 아니라 <부적절>이 적절하다.
<오만>과 <부적절>은 다르다.
업계 사람들이 잡스 비유 한마디에 '오만'하다며 부르르 떨 일이 아니다. 그저 <부적절>하다며 그 내용을 두고 논쟁할 일이다. 그렇게 이슈의 본질을 파헤쳤다면 나는 이상하지 않았을게다.
이재웅씨가 이처럼 자신의 말실수(?)인 '오만'을 ‘부적절’로 바로잡자, 비로소 논의가 ‘적절하게’ 흐른다. 부적절이 적절을 불러온 셈이다. 재미난 아이러니다.
그러자 이런 말들이 흐른다.
- 네이버도 총수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 왜 네이버만 예외냐?
- 나쁜 대기업처럼 네이버를 보면 안된다.
- 네이버 괴롭히지 마! 인터넷 기업 다 괴롭히지 마!
지난 7일 김상조 인터뷰로부터 번지는 논의와 반응들은 처음부터 이랬어야 한다.
오만하다, 과하다, 건방지다는 비난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체가 오만하다.
4.
이번 이재웅씨 발언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이재웅씨는 개인적으로 업계 선배로서 존경한다. 그건 그거고, 그의 발언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앞서 9일 페이스북에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도 없이 한국과 일본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사업가를 김 위원장이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라고 적었다. 나중에 '오만'을 '부적절'로 수정했지만.
이해진은 왜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 없이 한국과 일본의 인터넷 최고 기업을 일으"켰을까?
- 자기 회사니까.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 자기 회사의 이익과 시장점유.
그게 본질이다.
대한민국 인터넷 사업의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 그 지난한 길을 시작하고 걸어온건 아닐거 같다. 걷다가 그런 생각이 났을지는 몰라도.
엘론머스크가 테슬라의 전성기부터 전기차의 생태계를 위해 기술을 공개한 뭐 그런 과정이 네이버의 발전 과정은 아니었던거 같다.
대인배 테슬라, 전기차 특허 기술 무료 개방
출처 : http://www.bloter.net/archives/196056
이해진씨는 이재웅씨 말대로 자기 회사를 위해 노력했고, 재무적으로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어쩌라고.
그게 왜 공무원이 한마디 나무라면 들고 일어날 일인지, 왜 김상조가 비판하면 오만한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해진씨가 정부 도움없이 자기 회사 이익 늘려온게 신성한 일인가? 세금내는 국민들 위한 공익추구가 아니라, 일개 민간기업과 주주들을 위한 사익추구 아닌가?
오히려 네이버는 이땅에서 세금내며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대중의 소비로 큰 회사다.
이해진씨가 회사의 성장에 따라 사회적 책임감도 함께 컸을지는 내가 모른다.
훌륭한 기업인이니 그랬으면 좋겠고, 그랬으리라 믿는다.
사실 삼성의 이병철, 이건희 회장도 그랬으리라 믿는다.
나는 그들도 국가경제 이바지한다는 최소한의 소명의식은 있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어쨌든 중요한건 자기 지분의 회사 이익이 우선이지, 누구도 한소리 못할만큼 신성한 소명의식이 본질은 아니었으리라.
오만을 부적절로 수정한건 적절하다.
그러나 중요한건 무엇을 부적절하다고 보느냐다.
김상조가 한마디한 그 행위 자체를 부적절하다고 호통치는건 여전히 웃기다.
부적절하다는 비판은 김상조가 주장하는 '내용'에 관해서여야 한다.
5.
아무튼 공무원이 잡스 하나로 이해진에 훈장질했다가 갑자기 네이버의 파수꾼들이 범람하는 현상을 목격했다.
재미난 현상이다.
돌아보면 개별 주장이 맞든 틀리든, 네이버가 시장을 지배한 이후 IT업계 사람들이 네이버의 공헌과 명분을 한목소리로 지지하지만은 않았다.
분명 다른 시선과 이해관계들이 있었고, 네이버를 비판하는 주장들이 존재했으며, 심지어 횡포라고도 했다.
구글이 검색 엔진은 물론 미래를 대비한 여러 기술을 진화시킨 반면, 네이버는 SEO나 기술혁신보다는 시장지배력으로 가두리 양식장에 몰두한다는 볼멘소리도 많았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로 모바일 시대를 준비할 때 네이버는 뭐했냐고도 비판했고, 작은 신생 벤처의 신박한 서비스 뒤늦게 따라하며 스케일로 누른다고도 외쳤다.
거슬러 올라가면, 네이버 검색결과 중 ‘바로가기’로 발생한 쇼핑몰 매출도 네이버에 바친 시절이 있었다. 그 경로로 발생한 매출에 대해서도 수수료를 내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네이버로부터 답도 제대로 못듣고 갖다 바친 기간이 수년이었다. 이를 바로잡은 건 공정위였던걸로 기억한다.
짧은 인터뷰에서 김상조가 감히 그리고 어설프게 잡스 입에 물어서 그렇지, 그전에도 네이버 시장독점 이슈나 사회적 책임 여부는 존재하던 화두였다. 그런데 새삼스레 공무원의 잡스 비유 하나로 갑자기 왜들 그러는지가 나는 웃겼을 뿐이다.
6.
이 와중에, 안철수는 이걸 낚아채 정부를 맹비난하고, 김상조는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린다.
이재웅처럼 단어 교체 사과가 아니라, '다 제 잘못입니다'의 완전체 사과다.
안철수 "기업가를 머슴으로 보는 오만 드러나" 김상조 비판
이 두 사람의 사과와 안철수를 보자니 생각나는 말이 있다.
"코미디야 코미디"
요며칠 소동은 내겐 블랙코미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