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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수 Jan 13. 2018

유시민과 블록체인에 관한 시키지 않은 변명

[분칠한 객관보다 민낯의 편견이 낫다]

유시민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암호화폐를 악마의 장난감인 양 표현했다. 언제나 그랬듯 격한 공방이 핀다. 공방의 에너지원은 크게 세 가지다.


이해관계, 신념, 잉여.


풀어 말하면,


1) 이해관계 -

내 돈 넣었는데 왜지랄이야 좀 조용히 해, 닥치고 나서지 마 vs 다들 벌었는데 나만 못벌었어, 잃었어, 판 엎어 썅


2) 신념 -

이건 옳지 않아, 쇄국정책으로 뒤쳐지면 안 돼, 신문물을 받아들여야 vs 이래선 되겠느냐, 경제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건강한 펀더멘털이나 핵심가치의 실체가 없다


3) 잉여 -

시간이 남는데 유시민이 싫다 vs 시간이 남는데 유시민이 좋다


[단독] 유시민 "암호화폐는 인간 어리석음 이용해 돈 뺏는 것"
출처 : 중앙일보, 2018-01-13 http://v.media.daum.net/v/20180113023055136 


나는 이해관계가 없고 신념도 없지만 유시민이 좋은 잉여로서 한마디 거든다.


기술과, 그 기술의 결과물은 구분하자.


시민이 형아가 구분 안한건지, 그는 했는데 기사에서 흐릿하게 표현된건지 모르겠다만. 글에서는 블록체인(기술)과 암호화폐(그 기술의 결과물)를 가르지 않아 모호하다. 문맥상 유시민은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도 현재 투기판이 된 '암호화폐'의 의미로 쓰는 듯하다. 대변인도 아닌 내가 굳이 그의 말을 대신 구분해, 그의 주장을 해석하는 바는 이렇다.


1) 이해관계


정부가 지금 당장 할 일은 우선 관리대상에서 벗어나 투기판으로 흐른 암호화폐를 다잡는 일이다.

나는 동의한다.  

정부가 타이밍을 놓쳤든 대중이 너무 발빠르게 도박판 하우스를 진 꼴이든. 지금 상황은 응급이다.


"일본처럼 장려하고 세금도 부과해 미래 시대를 대응해야지 왜 뒷덜미 잡냐"는 이들이 있는데. 이게 한가한 소리라는걸 자기도 알면서 그렇게 말하는 속내는 이해하겠다. 그러나 이해관계 없는 입장에서 보자면, 무책임해도 되니까 맘껏 무책임하게 던지는 말로 들린다.


일본 좋다. 한국 정부와 시장도 그래야 한다. 그런데 '당장' 수일내로 일본처럼 거래소 관리를 체계화고, 세금을 부과하고, 금융 인프라로 구조화할 순 없잖나. 그 방향으로 정부가 가겠다 한들 그 사이 거악의 도박판에서 터져나올 부작용들이 뻔히 보이는데 그냥 응급조치 없이 하자는 말인가. 나는 화자의 이해관계로 들린다.

흥선대원군 개화기 쇄국정책 뭐 이런저런 이야기 다 끌고 나오는데, 십분 동의한다. 근데 늦은걸 어쩌라고. 일찍 움직이지 못해 서있다가 총맞았으면, 아쉽지만 일단 총알은 빼내고 지혈은 하고 사람은 살린 다음에 다시 총을 쏘게 하든가 해야지.


나름 지적 나르시즘 강하고 좀 배웠다하는 이들이 <암호화폐 규제=정부 무능>으로만 몰아가거나, 암호화폐 과열화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가리켜 무식하다며 거칠게 비난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이들의 특징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밀려드는, ‘다가올 명백한 도박의 패배자들’의 모순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는 점이다. 그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각자도생할 일이고 자유시장 경제가 보장되는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뭔가 멋지게 각잡고 말하는데, 유감이지만 솔직히 듣다보면 "내가 부지런해서 미리 알아채 돈 넣었어. 이거 빼야하니까 뒤에 들어오는 애들 못들어오게 막지 말고 좀 조용히 계셔. 걔들은 계산 느리고 게을러서 그런거니까 나라가 나설 일이 아니지"로 들린다.


폭탄 돌리기인데 내 폭탄 받아줄 사람 뒤에 못 들어오면 내 손에서 터지니 그건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이해한다.

근데 내가 넣은 돈은 내가 지키자. 내 폭탄 받아줄 사람 못들어오게 막는다고 호도하거나 성내지 말고. 무슨 좋은 말씀 전하러 오셨나~ 귀기울여 들어보니 결국 폭탄 돌리기 게임을 굳이 현학적으로 하시는 말씀일 때 존나 허무하다.  


문제 많은 하우스 투기판 정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미래 블록체인 기술 봉쇄로 호도하는 어뷰징도 현란하다.


- 투기판 단속하자는 것과,

- 블록체인 기술 활성화와,

- 암호화폐의 양성화 및 관리와 세금부과.


이 3개는 각기 다른 토픽이다.

솔직히 이 3개가 구분되는건 너도 알고 나도 알잖나. 다들 모른척하고 뭉개고들 있는거지.


막말로 정부가 욕먹는건 디폴트다. 정부가 벌인 일도 아닌데 이 느닷없는 암호화폐 소동으로 가만있다 돌 맞을 최종 죄인이다. 가만있다 맞으면 왜 가만있냐, 움직이다 맞으면 가만있지 왜 움직여서 힘들게 하냐. 암튼 욕받이는 처음부터 정부로 정했다. 운명이다.


먹을 욕이면 어떤 욕으로 먹어야 할까.

세금없이 돈 쓸어담는 하우스 바로잡다 욕먹냐, 그냥 냅두다 투기판에서 쫄딱 망한 사람들한테 ‘정부는 뭐했냐’고 욕먹냐. 후자보다는 전자가 정부의 할 일이다.


정부가 욕을 먹어야 한다면 오히려 다른 지점이다.  


비판의 초점은 암호화폐 시장 개입이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의 해석과 대응전략이 약하지 않냐는 점이어야 한다.

내 돈 넣었다고 이 둘을 의도적으로 뭉개는 주장이 가끔 있지만, 암호화폐 과열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과 미래 대응은 구별할 일이다. 그게 무엇이든 투기 과열에 정부가 개입하는 트랙, 블록체인 기술을 장려하는 트랙, 암호화폐 거래 장려하고 양성화하는 트랙은 각각 다르게 갈 수 있고, 그래야 한다.


내 이런 긴 블라블라를 짧게 표현한 사람이 있다.  


블록체인 기술과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은 인정한다. 장려해야 한다. 그런데 규제는 강력히 찬성한다. 거래하는 분들은 당황스럽겠지만.

                                                                                                  

현재는 가능성, 가치에 대한 투자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큰 돈 버는데 나만 멍청하게 못버는거 아닌가, 뒤쳐지면 바보야' 하는 조바심,
'누구는 얼마를 벌었다는데' 하는 박탈감,
일확천금에 대한 사행심이 주도하는 투기판이다.

여기에 갑자기 기술, 4차산업 이야기 하는건 한가한 소리다.
강력하게 규제하지 않으면 한순간 폭탄처럼 터질거다.
굉장히 위험부담을 안고 방치하고 있다.
정부가 강력히 개입해야 한다.

기사출처 : https://newsen.com/news_view.php?uid=201801120729552410 


나도 이렇다는 소리다.


2) 신념


이해관계가 아니라, 신념으로 이 논쟁에 뛰어든 이들 중에 이런 시각이 있다.


"정부의 개입은 퇴행을 낳는다"


개입하지 않아서 파행을 낳기도 한다.

다만 제때, 제대로 개입하는가는 비판하고 감시할 일이긴 하다.


부동산 투기 과열과 연관지어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부동산도 주식도 투자와 투기가 오가는 길이다. 뭐든 도박이 되긴 순간이다. 이 지점부터는 각자의 신념이다.

나는 부동산이 투자와 투기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지금 암호화폐의 바닥없는 투기와 좀 다른 면을 생각한다. 지옥의 바닥이 어디냐다.

최소한 부동산은 0이 되진 않는다. 부동산은 개념이 아니라 실체고,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펀더멘털이다. 말 그대로 동(動)이 아닌 부동(不動)인 자산이다. 하드디스크 잘못 갖다 버리면 1조원 없어지는 그런 0과 1의 나열과 본질이 다르다.

이렇게 보면 일반 주식시장도 비슷하다지만, 차이는 있다. 주식시장이나 그 시장의 신뢰를 개런티하는 각종 회계 및 관련 법규는 국가가 개입한다.


3) 잉여


시간이 남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해도 된다.

그러나 시간이 남는다고 뒤늦게 과열된 투기판에 들어가 상투 잡으면 삶에서 잉여마저 사라진다.

잉여라고 해서 빠르고 부지런하고 영리한 이들의 폭탄받이는 되지 말자.

돈이 잉여가 아니라면.


나중에 덧대는 말 -

이 글을 발행하고 며칠 후 법무부 우왕좌왕이 아닌 총리실/국무조정실/금융당국이 나서며 대책을 발표했다.

나는 이런 대책과 발표를 기대하며 쓴 글이었고, 내깐에는 수긍할만한 대책 발표다.

국무조정실이 오늘 정리한 정부 입장은 가상화폐 투기는 강력하게 막되 블록체인 기술은 육성하는 '투트랙' 접근법입니다. 거래소 폐쇄 방안도 부처간 논의를 더 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투기가 지나치다는 정부의 인식은 그대로라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정기준/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 : 가상통화는 법정화폐가 아니며, 어느 누구도 가치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책임하에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당부드립니다.]

투기 억제의 전면에 나서는 건 금융당국입니다.  

[최종구/금융위원장 : 욕을 먹더라도 정부는 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부가 규제하고 있는 것은 가상통화에 대한 과도한 투기적인 거래입니다.]
 
금융위는 거래소에 계좌를 내주는 은행에 앞으로 강도높은 자금세탁 방지 조치를 부과하고 주기적으로 점검할 예정입니다.
혼선 정리 나선 정부…거래소 폐쇄 대신 '자금줄' 압박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76084
출처 : JTBC 201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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