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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수 Jan 19. 2018

지적 허영심과 의도적 오독 - 암호화폐 논쟁을 보며

[분칠한 객관보다 민낯의 편견이 낫다]

이런 타이틀 매치가 드물다. 내 돈도 걸려있고, 선수들도 박빙이다. 효도르, 타이슨, 견자단, 브록레스너가 모여 한판에 싸우면 이런 모습이려나. 오늘 JTBC에서 손석희 심판으로 비슷한 싸움이 있었다.


물론 더 재미난 조합도 있겠다만.

토론 중에서 나는 아래 링크의 클립이 인상적이었다.   

<JTBC 뉴스룸 긴급토론 - 가상통화,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 중에서
https://www.facebook.com/jtbcnews/videos/1660991867293724/ 

출처 : JTBC 뉴스 페이스북, 2018/01/18

그게 이해관계든, 신념이든, 잉여든 나와 다른 의견을 듣는 일은 일반적이다. 다만 오독(誤讀)을 마주하는 상황은 힘들다. 특히 '의도적 오독'은 고약하다. 의도적 오독을 펼치는 자들은 상대의 진의를 알면서 못알아듣는 척한다. 혹은 일부러 왜곡하며 자기 하고픈 말을 방사한다.


질문은 하나, 대답은 메두사 머리카락처럼 갈래갈래


유시민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은, 한가지 질문을 한다. 

김진화로 대변되는 사람들은, 그 한가지 질문에 수많은 대답을 말한다. 

질문하는 이들은 혹시 내 질문이 그렇게 어렵나?싶어서 다시 묻지만 질문은 하나다.

"저기요, 지금 암호화폐 투기판 아니에요?"


질문은 이리도 간결하다.

그에 응하는 대답은 길다. 주로 이렇다.


- 뭘 모르시네. 인터넷 처음 생길 때 생각 안 나? 그땐 인터넷이 뭐 이렇게 될 줄 알았어?
- 화폐의 개념도 진화하는거라니깐 참 고지식하네~
- 기술의 발전을 가로막지 말라고! 가만 있으라.


단순한 하나의 질문인데, 현학적 지식과 미래의 혜안을 버무려 길고 복잡하게 대답..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모습은 결국 대답하지 않는 것이다. 진의를 비껴간다. 그래서 묻던 자는 다시 질문한다.


"아니 그러니까요.. 알겠는데. 지금 암호화폐 투기판 아니냐고요"


도돌이표다. 다시 미래의 기술, 블록체인과 화폐의 미래, 인터넷 초창기 기억 안나세요?를 반복한다.

답답한 많은 유시민들은 다시 묻는다. 이번엔 돌아돌아 묻는다.


"비트코인은 화폐인가요?"


김진화들은 질문의 의도를 잘 파악한다. 그래서 다시 도돌이표로 대응한다.  


유 : 비트코인은 지금 화폐에요? 그걸로 실제 거래 하세요?

김 : 저는 그게 소비자 화폐(Customer Currency)로 될 수 있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유 : 그러면 미래에는 화폐가 될 수 있어요?

김 : 비트코인은 화폐가 될 수 없어요.

유 : 네에?????

김 : 비트코인은 애초에 그걸로 개발된게 아니에요. 비트코인 말고 다른 암호화폐는 미래의 화폐가 될 수 있죠!  

유 : (으잉??) 일단 비트코인으로 예를 들자구요. 비트코인은 암화화폐의 시조이자 상징이니, 그게 미래에 화폐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문제가 없겠죠.

김 : 비트코인을 판 사람들은 그게 앞으로 화폐나 금처럼 될거니까 사라고 한 적 없어요. 법무부가 오도한거에요. 그래서 이 난리가 난겁니다.

한 : 누구도 가치를 말할 수 없는거라면 무분별한 투자를 규제해야 하잖습니까?

김 : 인터넷 처음 생길 때 기억 안나세요? 95년도에 인터넷으로 전자상거래 하셨나요? 그때 누가 인터넷이 이렇게 발전할지 알고 투자했습니까?

한 : 아니.. 인터넷은 그 당시에 이미 기술 체계를 완성한...

김 : 완성하긴요, 그때 이메일 보내면 에러 많이 났잖아요.


(요약하며 대화를 문자 그대로 옮기진 않았다만 오가는 내용은 대략 위와 같았다. 매우 정제된 목소리와 지적인 단어들이 나열되지만, 대화는 그랬다. 설마?싶다면, 위에 링크한 영상을 천천히 보시길 권한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그래서 암호화폐는 미래의 화폐라는 말인가 아니라는 말인가. 


시발 천하의 아귀가 혀바닥이 왜이렇게 길어? 후달리냐?


"그건 화폐인가요?"라는 질문이 중요한 이유


많은 유시민들은 왜 '화폐가 될 수 있냐?'고 자꾸 물을까.

투자의 대상이 되려면 전제가 충족돼야 한다.  

투자 대상의 가치가 분명하고, 앞으로 그 가치가 더 오를 거라는 믿음에서 이뤄져야 정상적인 투자다.

그러면 일단 그 '가치'가 뭔지는 정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가 만약 그 자체로 독립적 가치가 있다면, 적어도 둘중 하나겠다.


1. 화폐 - 예) 국가가 관리하지 않는, 탈중앙화된 미래의 거래 수단으로서 통화
2. 실물 - 예) 금, 석유, 부동산.. 같은 가시적인 현실 자산 


누가 봐도 2.는 아니다. 그래서 유시민들이 자꾸 1.이냐고 묻는다. 

최소한 투기라도 되려면 1.이라도 되어야 하니까. 아니면 사기니까.


김진화들은 질문을 피해야 한다. Yes or No 로 답하면 힘들어진다.

각각의 대답은 다음과 같은 곤란함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1) "미래에 비트코인은 화페가 되나요"에 Yes라고 할 경우, 

가치교환/가치저장/가치척도라는 화폐의 기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암호화폐는 이 답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누가 옛날에 인터넷이 이렇게 될 줄 알았어?'라는 인터넷 기원 드립을 쳐야한다.


정재승의 말처럼 '앞으로 기술이 발전해 처리속도와 에너지 효율이 좋아지면 화폐가 될 수 있어요'라는 이야기는 좀 달리 들린다. 마치 앞으로 오를 환율에 대비해 유로나 달러를 사두는 것처럼, 현재 비트코인 등등을 사두는게 투자로서 의미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코인들은 유로나 달러처럼 가치를 보증해주는 중앙통제기관이 없다. 그게 암호화폐의 정체성이니 당연하다. 유시민들은 이걸 질문하는데 자꾸 기술을 말한다. 나는 이 엉뚱한 답변이 정재승과 김진화가 무식해서 그렇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실 김진화와 정재승은 코드가 좀 다르다. 정재승의 말은 듣다보면 천진하기 이를데 없다. '지금은 화폐가 안 되지만, 우리가 다같이 잘 보듬어 보아요. 기술의 발전을 기다리며 차분히 화폐로 키워가면 우리 사회에 큰 도움이 될거에요~' 가 정재승의 톤이다. 그에게는 지금 왜 이 오밤중에 나와서 토론하는지 모르시냐고 묻고 싶다.)

정재승 교수님, 페이스북 하시면서 이런건 못보시는지..


2) "미래에 비트코인은 화페가 되나요"에 No 라고 할 경우, 

지금 암호화폐에는 그게 투자든 투기든 돈을 넣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비트코인이 화폐조차 될 수 없다면...... 그럼 뭐지??????  

매우 궁금하옵니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의 결과물이다. 블록체인 그 자체가 아니다. 블록체인 그 자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폐도 될 수 없다면, 그 가치의 실체는 뭔가.

차라리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거야'라고 주장하면, 그 말이 맞고틀림을 떠나 주장의 로직은 이해하겠다. '희소성' 그 자체로 화폐의 기능을 한다는 논리로 애써 이해하자면 그렇다. 그런데 또 금은 아니란다. 그러면 그 가치는 뭐지? 왜 과열투기도 납득해야 하지? 그게 유시민들의 질문이다.


이해관계(利害關係)로 이해(理解)하는 논쟁

  

김진화는 국내 최초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만든 이해관계자(利害關係)다. 그의 이런 배경과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이런 희한한 대화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이해(理解)할 수 있다.


코인 자체의 가치를 묻는데 화폐는 아니라면서 자꾸 기술혁신, 블록체인만 강조한다. 

(코인은 기술혁신의 결과 혹은 부산물이라면서요. 당신들도 하는 말 아닌가요.)


블록체인을 위해선 불특정 다수의 컴퓨팅 자원을 노드로 끌어들여야 하고, 그 정합성을 위해 보상체계가 있어야 하며, 그래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분리할 수 없다는 의견에 (대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이 말은 ‘지금 암호화폐 시장 투기광풍 아니에요?’라는 질문의 대답이 아니다. ‘암호화폐는 미래에 화폐가 되나요?’의 대답도 아니다.


'비트코인은 화폐가 될 수 없어요'로 답하면, 이는 투자든 투기든 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투자할 필요가 없고, 지금은 위험한 투기가 된다.

그러면 규제해야 한다.

여기서 토론 끝이다.


암호화폐가 지금도 화폐가 아니고 앞으로도 화폐가 아니라면서, 가치의 실체가 모호한 대상에  투자인지 투기인지 정의하지 못한 채 사람들이 전세보증금 빼서 돈 넣는 광풍을 보고만 있자는 건 위험하다. 당신 돈 회수할 때까지 <가만 있으라>는 말인가.


<가만 있으라>는 말은 지난 몇년간 숱하게 들었다.

타인들의 삶이 곪아가는데 <가만 있으라> 틀어막지 말자.

우린 그 끔찍함을 충분히 목도했다.


1.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건 좋은데, 토론할거면 질문에 답은 제대로 하자. 비겁해 보인다.


2. 비트코인이 제일 유명하니, 일반인을 대신해 유시민은 비트코인으로 말하자 제안한다. 바쁜 일반대중을 대변한다는 비유로 '문과에 문송'이라고 말한다. 그걸 보고 '유시민은 무식해서 비트코인 밖에 모른다' 는 당신은 유치한건가 모자란건가?


2018/01/20 추가 :

내 이 글보다 훨씬 명징하게 정리한 글이 있어 공유한다. 이 글을 먼저 발견했다면 나는 그냥 이 글 공유하고 말았을 듯.

https://steemit.com/kr/@aaronjung/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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