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린 적이 있니? 너의 20대 마지막 해, 암스테르담 찬 공기 아래에 우리를 추억하자. 나에게 사치란 과분한 넉넉함이야. 샤를 보들레르의 시 ‘여행으로의 초대'에 반복되는 구절이 있어. ‘그곳엔 오직 질서와 아름다움, 풍요와 고요 그리고 쾌감뿐' — 여행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그때가 바로 그러했어. 수학여행 전날 밤 여고생처럼 설레임을 안고 잠들 수 있었고, 눈 뜨는 아침이 참 반가웠어.
앞 구절과 나누기도 연결하기도 어려워. 다음 문장을 쓰기까지 말야. 그때와 너무나 다른 내가 보여. 지금은 여유로움이 사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긴 병원 생활 중, 생필품을 사고 돌아가는 길 들렸던 카페에서의 내 모습이 떠올라. 나라는 존재는 그곳과 함께할 수 없었어. 이국 광야에 이방인 같았지. 커피를 들이켜 마시고 황급히 자리를 떴어. 가만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거야. 늘어지게 잠을 자고, 모니터를 덮고 나면 기억나지 않을 영상을 보고, 뒹구는 거. 그런 여유를 부릴 때, 사치를 부리는 것만 같아.
한편으로 사회적 이슈를 통해 본 사치는 일그러진 모습이야. 누릴 수 있는 능력이란 게 재력만 필요할까?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게 특권은 아니잖아. 몰가치의 혼돈 속 가치는 내버려지고, 삶의 필수 요소마저 사치라 부르는 사회에 우린 살고 있나 봐. 값진 일은 결코 값어치를 따질 수 없는데 말야. 빈궁한 소설가가 작품에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값을 매길 수 없을 거야. 고민하는 시간도 사치로 여기지는 말아야지. 그저 각자의 삶에 충실하며, 안부를 묻는 게 어떨까?
다달이 카드값을 내는 성실함으로 얻은 빅백 보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생활 속 가치를 크게 발견하고 싶어졌어. 그게 남들이 말하는 사치라고 할지라도 말야. 책 한 권, 커피 한 잔, 노래 한 곡, 그림 한 점, 언제고 포근한 면티 한 장, 그리고 너와 함께 먹는 한 끼… 를 누려 볼래. 진짜 럭셔리는 조용하게 빛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