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생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났어. 그게 다야. 시간은 그런 거야. 기차는 순방향과 역방향이 있잖아. 기차 좌석은 예약자의 선택에 달렸지만, 생은 그렇지가 않아.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는 거지. 속도와 거리가 아닌, 농도와 두께로 시간이 다가오기도 해. 특정 시간에는 질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거지.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 온통 메우듯, 부피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 되기도 해. 가는 물줄기 하나가 강물을 타고 와 바다를 이루듯이 말야.
뒤엉켜 있는 기억을 새롭게 배열한다면 어떨까? 흩어진 시간의 조각을 모으는 일이 내 작업 전반에 있을 거야. 혼재된 시간의 복잡함에 관한 작업은 꽤 오래되었어. 하루는 긴 것 같은데 한주는 짧고, 1년은 짧은 것 같은데 한 달은 긴 것처럼 느껴져. 시간표에 따라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갈 때, 오히려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거든. 사건의 질서와 의미는 무색해지는 거야. 무질서는 갑자기 찾아오기 때문에 누가 먼저랄 게 없는 거지. 시간이 날 데려가는 건지, 시간은 제 갈 길을 가는데 뒤꽁무니를 쫓고 있는 게 나인지… 순서나 차례가 없어. 뭐가 뭔지 모르겠을 때 난 연필을 들었어. 시간의 흐름을 스스로 만들고 싶어졌거든. 온몸이 차디찬 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어. 그런데 그림을 그릴 때는 땀에 흠뻑 젖는 거야. 그렇게 ‘켜켜이 쌓이는 회화'는 세상과 만나기 위해, 숱한 시간을 보낸 거야.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라는 개념은 개인적 아픔으로부터 비롯되었어. 하지만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회화라서 숨통이 트이기도 했던 거야.
시간과 차원의 한계를 넘나드는 시간여행 장르가 아니어도,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제법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시간이 흘러도 멜로디는 남아. 자주 가던 카페 앞에서 기억 속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말야. ‘머물고 싶은 순간’에 당도한 적이 있니? 오직 자신과 맞닿는 사이 생겨나는 일인 거야. 너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어. 난 충분히 기다릴 수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