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속도를 높이려다 그만 내 속도 버렸어. 멀미가 시작되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더라. 토악질은 멈춰지지 않았고, 한바탕 울고 나야 끝이 날 것 같았어. 도저히 내달릴 수 없는 상태라면, 속도가 대체 무슨 소용이겠어. 줄곧 상승 가도만 달리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막힘이 없는 뻥 뚫린 길을 달리는 사람 말야. 재촉하는 데는 넌더리까지 났어. 멈추고 싶을 때, 내리고 싶을 때가 있는 거잖아. 우린 대체 어떤 방향으로 자세를 잡아야 할까? 시간이란 거리 위에서 지표를 찾아야겠지? 어쩌면 빠름과 느림 사이, 다른 속도의 삶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는 건지도 몰라.
어릴 적 기억을 찾아볼게. 그래, 난 느린 아이였어. 사생 대회에서 시간 안에 완성하기 힘든 아이였지. 그 시절 나의 ‘느림’은 이해받기 힘들었어. 그럼에도 속도를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창성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아이 성장 속도를 채점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일류와 이류로 순번을 매기잖아. 우리 사회가 다양한 발달 속도를 지닌 아이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었으면 해. 자기 속도대로 배울 수 있도록 말야. 이탈리아어 템포(Tempo)는 시간, 기후 그리고 음악에서 빠르기를 뜻해. 적기와 적정온도, 자기 속도를 찾는 게 성장 아닐까? 체감 속도는 다 다른 거야. 우리가 지나치고 마는 것, 그래서 놓치고야 마는 것을 생각해 보자.
쫓기듯 앞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미소 지을 수 있다면 좋겠어. 우아한 여유는 저절로 드러나, 남다른 거야. 카메라 렌즈 밖의 절경을 느낄 자세가 되어있다면, 순간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수액주사도 빨리 놓아달라고 하는 게 현대인이래. 빠른 속도로 투여하면 혈압 상승, 호흡 곤란, 쇼크 등을 일으킬 수 있는데 말야. 나이, 체중, 증상에 맞춰 투입 속도를 정해야 하는 거잖아. 이처럼 자신이 능히 견디어 낼 수 있는 속도를 아는 게 중요한 거야. 속도에 중독되지 않게, 너 자신을 지켰으면 해. 보폭이 다른 걸음걸이처럼, 같은 길을 다르게 걸을 수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