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은 불시에 찾아온 내객 같아.

운명

by HYUN

시시때때로 보이지 않는 힘이 느껴져. 행운이든 불운이든, 잠시 스쳐 가는 일들마저… 판의 움직임처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아. 나를 위해 열린 영화제를 기억하니? 내가 영화를 보러 가면 꼭 비가 오잖아. 어느 해 영화제에 갔었는데, 영화의 거리에 도착하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지는 거야. 우린 동시에 “축제다. 진짜 축제야.”라고 말하며 웃음이 터져 나왔어. 마치 비를 부르는 나를 위해 준비된 영화제 같았지. 지금도 영화 보러 가는 날엔 어김없이 비가 와. 자주 가더라도, 가끔 가더라도 꼭 비는 따라다녀. 비가 오는 게 아니라 이쯤 되면 내가 비를 부른 거지 싶어. 이제는 “오늘도 축제로구나” 미소 지을 수 있어.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기엔 마냥 꼬이기만 하지도 않거든.


돌이킬 수 없는 일이거나, 기적처럼 뒤바뀌는 상황… 크게 다른 듯 보여도 같아. 운명과의 거리는 얼마만큼일까.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모순덩어리야. 오히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운명이라 부르고 싶어. 운명적 사랑을 꿈꾸다 한편 사랑이, 대단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라면, 운명적 사랑의 신호라 할지라도 외면하고 싶어. 긍정도 부정도 아닌 대답이 있을 수 있는 거잖아. 대단하지 않은 사람과 대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는 거야말로 일상적 행복이야. 평안을 함께 느낄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말야. 끝내 운명에 기대야 할까?


예감이 결과가 되어 나타날 때는 좋은 일은 없었던 것 같아. 간절히 바라는 일에 무심해졌을 때, 그제서야 기회가 오더라고. 물론 아닐 때도 있어 종잡을 수 없지만 말야. 운명과 교감할 수 있다면 꽤 신경전을 벌어야 할 거야. 보이지 않는 것들은 까마득하다가,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거든. 운명은 불시에 찾아온 내객 같아.


보이지 않는 운명이라도 허상만은 아닐 거야. 우린 태평하지도 조급하지도 않게 한 걸음 한 걸음 걷자. 걸어서, 뛰어서 당도한 길이 새로운 길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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