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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Jul 01. 2017

젊은 부부가 노는 법

미국 지방 소도시 거주자의 클럽 공연 즐기기


나는 라이브 공연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바에서 술을 마실 땐 10불짜리 칵테일이 아까워 6불짜리 병맥주를 시키는 짠순이지만, 동네 클럽에서 하는 공연 입장료가 20불이라고 하면 '오 나쁘지 않은데?'라는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선뜻 공연장 안쪽으로 들어선다. 공연장을 즐겨 찾는 사람치고는 막귀인지라, 공연장에 들어가서도 웬만큼 합 안 맞고 박자 안 맞는 연주가 아니면 리듬을 타면서 신나게 음악을 즐긴다. 언제 어디서나 흥을 발산할 수 있다는건 좋은걸까?


다행히 남편도 음악과 공연장을 좋아해서, 우리는 연애 때부터 제법 많은 공연을 보러 다녔다. 장르는 주로 재즈와 락이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클래식 공연이나 뮤지컬 같은 건 한 번도 같이 간 적이 없다. 아무래도 둘 다 시끌벅적한 곳에서 술 한 잔 하면서 춤도 출 수 있는 그런 곳을 더 선호하기 때문인 듯.) 특히 뉴욕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55 Bar'나 이태원의 '올댓재즈' 같은 재즈클럽은 음악을 즐기기에도, 술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기에도 좋아서 데이트 때 마다 자주 애용하곤 했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서는 더 이상 모종의 긴장감 같은 것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일까. 결혼 후에는 라이브 공연을 보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공연이 보고싶어 죽을 것 같은 지경이 아니고서야, 집에서도 충분히 맛있는 술에 재밌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데, 굳이 둘이서 해 다 저문 저녁에 주섬주섬 차려입고 나가 놀 필요를 느끼지 못 했던 것 같다. 연애 때는 뉴욕-서울 대도시만을 오가며 만나다가, 결혼 후에는 인구 6만 명의 소도시 알파레타에 살고 있다는 점도 크게 한 몫 한다. 애틀란타 중심가로부터 차로 사십 분쯤 떨어져 있으니, 서울로 치면 수원, 일산 정도의 느낌이려나.


대부분의 미국 지방 도시들이 그렇듯, 알파레타 역시 공연장의 밀집도가 뉴욕이나 서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홍대 앞을 걸어다니며 공연장 이곳 저곳을 엿보다가 분위기가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슬쩍 들어가보는 일은, 뉴욕, 시카고, 엘에이 같이 유명한 대도시나 오스틴, 뉴올리언스, 내쉬빌 같은 대표적인 음악 도시들이 아니고서야 상상하기 힘들다. 동네 근처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면 공연장의 정보와 시간을 면밀히 검색한 뒤 출발해야만, 소중한 불금, 불토에 허탕을 치는 수고로움을 면할 수 있다. 적당한 공연 정보를 찾은 뒤에는 최소 십오분, 최대 사십오분을 차로 달려야 하고, 공연장 근처에 도착하면 어디에 주차를 해야 좋을지 한두 바퀴 주변을 돌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공연장에 입성하게 되는데, 이런 전반의 프로세스가 이미 편안하고 캐주얼하게 공연을 즐기기엔 과도하게 진을 빼놓는다. 특히 나와 남편같은 집순이, 집돌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흥이 다 깨져버린달까?


이런 우리에게 지난 주말은 황홀한 일탈이었다. 집에서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Athens라는 도시의 음악 페스티벌에서, 그동안 목말라 있던 도시 공연장 물을 잔뜩 마시고 왔기 때문이다. Athens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와 동일한 스펠링을 가졌지만, 미국에서는 조지아대학교(University of Georgia) 캠퍼스가 있어서 유명하다. 또 도시 규모에 비해 공연장이 많은 것도 미국 내에서 나름 유명하다. 공연장이 많다는건 그만큼 뮤지션들의 활동도 활발하다는 뜻. R.E.M이라는 밴드가 여기 출신이라고 다들 입을 모아 이야기하던데, 혹시 아시는 분...?


Athens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우선 도시가 풍기는 에너지에 들떴다. 알파레타의 전원적인 분위기와 대조되서 그런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떠는 모습부터, 너도나도 힙스터인 척하는 자유로운 옷 차림, 여기저기서 뿜어대는 담배 연기며 마리화나 냄새들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AthFest 2017 @Athens, GA


페스티벌은 25불만 내면 살 수 있는 팔찌로 모든 클럽 공연을 2박 3일 간 자유롭게 드나들며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세 개 정도의 스트릿에 걸쳐 열두 곳이 넘는 클럽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는데, 홍대의 '라이브 클럽 데이'랑 비슷한 컨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음악의 장르가 락앤롤부터 포크, 발라드, 힙합까지 조금 더 다양하다는 점 (재즈 공연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수익금은 직접 설립한 교육재단에 기부된다는 점 정도. 거기에 더해, 야외에 설치된 3개의 무대에서 무료로 관람 가능한 공연들이 낮부터 밤까지, 그러니까 클럽 공연들이 시작되기 전까지 계속되고, 로컬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플리마켓도 제법 큰 규모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곳에서 너무나 개인적인 취향을 저격하는 바구니+도자기 조합을 만났다. 너무 예뻐서 이틀 연속으로 구경을 갔다. 작가님이 직접 워크샵도 하신다던데, 애틀란타에도 오셨으면. (ㅜㅜ)



확연한 레벨 차이와 프로 의식이 느껴지던 노익장 할배들의 공연부터 (현재의 폴 맥카트니 공연을 가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려 차마 끝까지 들어줄 수 없었던, 'yo, yo, click, click'을 남발하던 프리스타일 힙합 공연까지 범위가 다양했는데, 남편과 내가 공통적으로 최고로 뽑았던 공연은 단연 40 Watt Club의 락 밴드 공연들이었다. 총 세 팀의 무대를 봤는데, 모두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이었다.


공연장이 좋아서 사운드가 빵빵하긴 했지만, 음악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고 평소에 즐겨듣는 장르의 노래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어린 친구들의 밴드 공연을 보는 내내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순수하달까. 치기어린 목소리로 고래고래 고함 지르듯 노래하는 보컬들과, 반항적이고 퇴폐적이려고 노력하지만 그 허세가 다 가리지 못한 기타리스트의 얼굴에 오른 젖살이 너무 귀여웠달까. 홍대 클럽에서 들어본 것 같은 스타일의 음악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공연장을 꽉 채운 관객의 절반은 밴드하는 사람들의 친구인 것 같았는데 (아닌 것 치고는 다들 너무 미친 듯이 호응했다) 그마저도 왠지 정감가고 흐뭇했다. 그 틈에 끼인 우리도 공짜로 5년은 어려진 것 같았다. 


Big Morgan @40WattClub


지역 신문을 보니, 이 페스티벌은 텍사스 오스틴의 SXSW에 영감을 받아 1997년부터 시작했다고 하는데, 마침 두 명의 창립자 중 한 명이 40 Watt Club 사장이어서 신기했다. 지역 주민들 인터뷰에 따르면, 칼리지 타운 특성 상 대학교 여름방학 시즌에는 지역 상권들이 다 죽어있기 마련인데, 이 페스티벌 덕분에 6, 7월을 버틸 수 있는 매출이 난다고 한다. 지역 경제도 살리고, 뮤지션들이 설 자리도 만들고, 나 같은 사람들에게 양질의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끝으로, 이번 기회를 통해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밤 12시, 1시까지 서서 클럽 공연을 즐기려니 어찌나 피곤하던지. 나도 나지만, 남편의 얼굴에 서려있던 '오랜만에 이런 신나는 분위기에서 공연을 계속 즐기고 싶긴 한데 체력은 따라주지 않고 너무 피곤해서 멍 때리던' 얼굴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요즘 술 먹을 일이 없어서 주량이 줄었다'고 말했더니 '그렇지. 꾸준히 노력해야 해.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노는 것도 다를 바 없다. 꾸준히 노력해서 더 열심히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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