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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Oct 05. 2018

오랜된 독후감

신혼 주부의 현실 자각 타임


그러니까, 이토록 life-changing 하는 책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책을 반만 읽다가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하는게 특기인 내가 중간에 쉬지 않고 끝까지 한 권을 완독한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내용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에는 멋대로 굴러가려는 눈알을 애써 붙잡으며 천천히 음미하며 끝내려고 애썼다. 마지막 챕터를 읽으면서, 또 그 뒤에 따라붙는 옮긴이의 글과 추천사들을 읽으면서, 마지막 십 분 동안 이 책이 몇 배는 더 좋아졌다. 침대에 엎드려서 읽다가 "I love this book!"을 외치며 거실로 뛰쳐 나왔다.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젠더 이슈를 이야기할 때, 'a, b, c가 문제다' 라고 이야기하는건 효과적이지 않다. '젠더'라는 주제는 너무 포괄적이어서, 역사, 종교, 경제, 문화, 언어, 섹슈얼리티, 그리고 섹스 그 자체까지도 모두 긴밀히 얽혀있는 사안이다. 실타래를 한 줄 한 줄 풀어서 이야기하면 별로 큰 문제가 아닌 것 처럼 보인다. 가장 큰 이슈는 여러 갈래의 실들이 엮이고 꼬여서 만든 큰 덩어리 자체이기 때문에, 문제점을 하나씩 열거하는 방식으로는 진짜 핵심 문제를 드러내기가 어렵다. 이럴 때 '미러링'이라는 기법은 너무나 효과적이다. 복잡하게 꼬여있는 사안들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그냥 통째로 보여주는거다. 대신 성별에서 비롯된 관념과 특징을 현실과는 거의 반대로 뒤바꿔서 말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성 역할이 지금과 반대였다면 어떤 모습일까?'


소설은 이 단순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중간중간 과연 작가가 이 설정의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뻔하지 않게, 끝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의심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참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작가의 세심하고 정확한 관찰력과 자유로운 상상력 덕분에 매 챕터마다 감탄을 연발했다.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아, 이런건 왜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지난 이십칠 년 동안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것들을 다시 질문하고 확인하는 일은 개인적으로도 너무나 재미있고 또 중요한 과정이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질문하는거다.


- 더운 여름에 외출을 할 때 브래지어를 꼭 입어야 할까? 가슴골 노출은 환영받는데 유두 자국 노출은 왜 질타의 대상이 되는걸까?  


- 왜 시중에는 여성의 몸에 잘 맞는 편안한 속옷보다 섹시함만 강조하는 불편한 속옷이 더 많을까? 만약 내가 여성 속옷을 디자인한다면, 생리를 포함한 각종 질 분비물을 고려해서 안감의 흡수력과 통기성을 제일 많이 신경쓸텐데.


- 왜 여성은 화장을 해야, 남성은 정장을 입어야 '프로페셔널하다'고 이야기 할까? 예전에 내가 인턴했었던 한국의 모 회사 사규에는 여자는 화장을 해야하고 남성은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왜 아무도 그 사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 왜 나는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집안일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챙겨주고 신경써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는 왜 남편 본인도 신경 안 쓰는 남편의 점심 도시락이나 옷장 정리상태 같은 것들을 걱정할까?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남편이랑 같이 나눠 먹으려고 저녁을 지을 때 드는 이상한 기분. 누가 남편 저녁밥 좀 해주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물론 어른들이 남편 밥 잘 챙기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지만, 그냥 '둘이서 같이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뜻으로 가뿐히 조정해서 듣는다) 남편이 밥상을 차려달라고 요구를 한 것도 아닌데, 혼자 요리를 하고 있으면 '휴. 나도 결국 이렇게 살림하는 주부가 되고 마는건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였다. 가사 노동이 나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살림을 잘 하기란 굉장히 도전적인 일이다), 내가 하루 여덟 시간 가사 노동만 하며 살고 있는 것도 아니며, 그저 나랑 남편이 같이 밥 먹으려고 요리하고 있는 것 뿐인데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익숙해지면 안 될 것 같은, 어딘가 두렵고 께름칙한 마음이었다.



조리대에 서서 양파를 썰고 있는 내 머릿속에서 늘 부엌 싱크대 앞에 서 계시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반면에 나의 유년 시절 동안 엄마 아닌 아빠가 부엌에 서 계셨던 기억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 기억의 희소성이 남긴 영향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내가 대학생이 되어 오랜만에 본가에 갔는데 그 날 낮에 엄마가 집에 안 계셔서 아빠가 직접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가스레인지를 켜서 냄비에 담긴 국을 데우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짠하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빠가 부엌에서 일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어색했으면, 다 요리된 음식 꺼내서 드시려고 준비하는 모습에 짠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머릿속에서 엄마 아빠의 모습이 지나가고 나면,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넌 결혼하고 미국 가서 이제 직장 안 다니는거야?' 라는 질문이 생각났다. 질문을 한 이가 어떤 의도로 그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질문은 지난 2년 간의 결혼생활 동안 나에게 매우 큰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결혼하고 미국 가서 이제 직장 안 다니는' 여성이 되고 싶지 않아서 부단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첫 해에는 미국 주민번호와 노동 허가를 받는 일에만 몇 달 씩 소요되었고, 노동 허가 만기 시점이 가까워진 지금은 그걸 또 연장시키느라 시간이 소요되고 있지만, 어쨌든 꾸준히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은 여전하다. 그 와중에 집안일이 나의 주 업무(?)가 되어버렸다는 현실 자각 타임이 오면, 마치 지금이 내 발전의 한계점에 도달한 순간인 것 같이 느껴져 어마어마한 우울감이 덮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요리를 하면서 나는 왜 이런 온갖 불편하고 불쾌한 생각들을 하게 되는 걸까. 처음에는 이게 다 요리를 하다 보니 배 고프고 힘 들어서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는 거라고 생각하며, 애꿎은 내 성질머리만 탓했다. 나만큼이나 요리를 자주 하는 남편도 요리하는 도중에 이렇게 불편한 마음을 느낄까? 요리하는 아내의 불편한 마음을 남편은 알고 있을까? 아마 그는 상상도 못 했다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이 불편한 마음을 '성 대결 구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지나친 의미 부여가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으면서 내가 지난 이 년 간 느껴온 압박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가 무심결에, 또 의식적으로, 보고 듣고 말해온 것 모두가 근원이었다. '여자로서' 또는 '아내로서' 해야 마땅한 일이 정의되어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불평등이다. '남자로서' 또는 '남편으로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 문제다.


소설 끝에 덧붙은 옮긴이의 말은, 소설의 내용 자체 만큼이나, 혹은 소설보다도 더 중요하게 눈여겨 볼 대목이었다. <이갈리아의 딸들>의 사회는 현대 페미니스트들이 원하는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과 남성이 모두 행복해지는 사회'를 바란다. 소위 '남성에 대한 역차별'은 여성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고, '가부장제'라는 미명 하에서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것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남성들이 단합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닌 것 처럼 말이다.


'결혼'이라는 엄청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이후에 줄곧 느껴온, 행복감과 비례한 크기로 공존해온 이 불편한 마음의 진실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원래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 하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더 깨끗한 공간에서 살고 싶어서 청소를 하는 것일 뿐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밥을 나눠 먹고 싶고 요리를 하는 것 뿐이다. 내가 스스로에게, 또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남자에게도 가사 노동이 자연스러운 일이어야 한다. 여기에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이 일을 해야한다는 둥, 말아야 한다는 둥, 첨언이 되는 순간, 가사 노동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노동이 되고 성 대결 구도가 시작된다.


불편했던 마음의 근원과 문제점을 인지하고 나자, 신기하게도 압박감 자체가 많이 사라졌다. 집안일에 있어서 나에게도, 또 남편에게도 너그러워졌다. 지금은 '살림이란, 잘 하면 좋지만 못 해도 큰 문제는 없는 것' 정도로만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가 직접 만든 음식이 맛있게 잘 되면 행복하니까.




* 친구가 추천해준 관련 스웨덴 독립영화 <SE MIG> : https://www.youtube.com/watch?v=kjZpk4yTE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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