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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Oct 04. 2016

롤드컵(LoLd Cup) 데이

남편이 게임을 시청하는 모양

남편은 롤(League of Legends)를 정말 좋아한다. 

때때로 본인이 플레이하기도 하지만, 주로 프로 선수들의 게임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는 게임도 e-sports의 하나이니 게임 경기를 보는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임이 남편에게 미치는 영향을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내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여보~!"하고 불러도 묵묵부답.

"여보~ OOO 좀 해 줘~" 라고 부탁해도 요지부동.

결국 휴대폰을 뺏어들고 "여보, OOO 좀 해달라니까~?!"라고 소리쳐야 그제서 정신을 차리고 "아 오키!"를 외치며 일을 처리한다.


그러나 이미 게임에 정신이 팔려있는 자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낼 리 없다.

모든 일은 '사전준비 - 본 업무 - 사후정리'가 있기 마련인데, 본 업무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사전준비와 사후정리까지 기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게임을 다 보고 난 뒤에도 영향은 지속된다.

옆사람까지 초조하게 만드는 산만함과 뒤이어 찾아오는 무기력증.

남편이 몇 시간 이상 게임을 시청한 날에는 나까지도 불안해지고 무기력해져서 뭔가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좋은 핑계다)


아무튼, 그런 남편에게 롤드컵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세계 각국의 롤 대표팀들이 약 한달여간 경기를 한다는데, 남편은 한달 내내 모든 경기를 다 볼 태세를 취하고 있다.


이미 지난 목-금-토-일 내내 남편은 밤잠을 이기며 최소 두 개 이상의 경기를 시청했고,

게임이 이어지는 두세 시간 동안 다리 떨기, 비속어 사용하기, 손톱 물어뜯기, 입술 앙다물기, TV화면으로 들어가는 척 하기 등 다양한 포즈를 시연했다.


특히 어제밤이 하이라이트였는데, 남편이 응원하는 한국의 SKT 팀이 중국 팀과 경기를 했고,

SKT가 이길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중국 팀이 이겼다. 그것도 아주 빨리.


SKT의 패배가 거의 확실해져갈 때 쯤의 남편의 모습을 포착해보았다.

속상해하던 남편의 모습이 바삭한 나쵸칩보다 더 고소하게 느껴졌던 건 안 비밀이다.



(입술을 앙다물고) '안 돼, S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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