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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a Kim Oct 13. 2016

남 딴짓에 의한 내 딴짓의 위기

매거진 <딴짓>을 읽고 (1)


단어를 정성껏 골라 빚어낸 문장들을 보면, 가끔씩 마음이 턱 막히는 순간들이 있다.

특히 그 문장의 장인들이 유명한 소설가나 전문 작가가 아닌, 2호선 지하철에서 왠지 한 번 마주쳤을 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에 더욱 그런 기분이 든다.

사무직으로 일하며, 출근과 동시에 퇴근을 상상하고, 야근 수당을 주지 않는 회사에 대해 친구들과 분노의 수다 질주를 새벽까지 멈추지 않는 그런 사람.

나만큼이나 평범한 사람이 쓴 글이, 이렇게나 산뜻하고 보송보송할 수 있다니. 생각의 깊이와 표현의 넓이가 이렇게나 심원하고 광활할 수 있다니.


  아니, 딴짓으로 글을 쓰는데 저런 글이 나온단 말이야?

  나도 저렇게 쓸 수 있을까? 언제쯤 저렇게 쓸 수 있을까?

  아, 저 사람은 어릴 때 저런 쪽 공부를 했구나,

  아, 저 사람은 부모님이 저런 쪽 분야에 종사하시는구나,

  아, 저 사람은 적어도 예술 관련 분야에서 일하고 있구나,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감각이 발달했겠지. 부럽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에 당신은 '에, 뭐 이런 찌질한 애가 다 있어'라고 반응할 수도 있겠다.  

나 역시 딴짓을 사랑하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딴짓을 더 열렬히, 더 열정적으로 잘 하고 싶은 '호모딴짓엔스'의 한 명으로서 타인의 딴짓에 모종의 시기심을 느끼는 것은 그다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시기심도 어디까지나 선망의 마음이 단단히 뿌리박힌 후에야 비로소 자라나는 것임을, 내 시기의 대상자들은 알아주길 바란다.


본격 딴짓 장려 매거진. 선망의 대상들의 집합체.


이들의 고퀄리티 딴짓 덕분에 오늘도 내 딴짓은 위협받는다.

광야의 고수들로 가득찬 이 딴짓의 세계에 정녕 내가 설 자리가 있기는 한 것일까?

금전적 수익은 고사하고, 타인의 인정도 칭찬도 필요치 않은, 오롯이 '나만을 위한' 프로 딴짓러가 되기에는 아직 깜깜 멀었다.


시기와 시샘으로 어지러운 내 마음은, <두 번째 딴짓>에서 1호 님이 기획/구성하신 이창동 감독님과의 가상 인터뷰를 읽고 비로소 조용해졌다.

남의 딴짓으로 위협받은 내 딴짓이 또 다른 남의 딴짓으로 위안받는 셈이다.


나도 언젠가부터 내가 하는 것의 효용에 대한 고민, 이 글 가지고 도대체 뭘 하지, 이런 고민을 하면서 압력이 더 커지기 시작했고 결국 글을 쓸 수 없게 된 적이 있었어.
절망을 좀 더 해야 해. (내가) 무가치한 존재라는 걸 받아들여야 해.
절망을 하고 나면 할 일이 쓰는 것 밖에 없게 돼요. 무인도에서 글귀 한 구절을 써가지고 병에 집어넣어서 코르크 마개를 닫고 바다에 던지는 심정이 돼야 해. 누구 하나라도 이걸 주워서 봐줬으면 좋겠다에서 시작하는 거 아닌가? 무인도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서 비단옷 입고 진주목걸이하고 그런 거 상상하면 미치지.
결국은 자기 욕망과 그 욕망으로부터 동떨어진 재능과의 싸움이지.

출처: 이창동 감독님의 TV 인터뷰를 바탕으로 짜깁기한 가상 인터뷰, <두 번째 딴짓> 69-70p

(* 자연스러운 리딩을 위해 첫 번째 문장의 어미를 변형함)


잘난 딴짓이든, 모자란 딴짓이든, 존중받아 마땅하고 사랑받아 마땅하다.

'딴짓'이라는 단어를 '사람' 같은 단어로 대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자아의 발현'이라는 딴짓의 본질을 정확히 되짚어 주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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