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길, #15. 에필로그 - in Asunción
집에 온 후로 사흘 동안 잠만 잤다. 배가 고파 일어나긴 했지만 기력 회복에는 역시 잠만큼 좋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잠으로 기력을 회복하고 나서야 배낭을 정리하고, 옷들을 빨래하고 청소하고, 마트에 가서 먹을거리들을 사다가 냉장고를 채웠다. 이제야 나의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보름 동안의 아니, 정확히는 18일간의 이번 배낭여행은 짧은 편이었지만 아주 길게 느껴진 여행이었다. 그만큼 고달팠다는 것이다. 예정했던 시간보다 사흘이나 늘어졌고, 가는 곳마다 계획이 어긋났으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끊임없이 나타났다. 더군다나 날씨로 인해 여행에 차질이 생겨 시간을 많이 허비했고, 정작 가고 싶었던 곳은 생략해야 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아타카마 사막의 달의 계곡을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잘못 시작한 것이었다. 너무 급하게 계획을 짰고 대충 짰다. 그보다 여행지에 대한 절박함보다는 그저 집을(아순시온을) 떠나 어디라도 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옆동네 놀러 가듯이 '그래? 그럼 거기 한 번 가보지 뭐. 가는 김에 저기도.'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아타카마에 갈 거면 우유니도 같이 묶어서 가고, 이왕 볼리비아에 발을 들여놨으니 볼리비아에서 또 유명하다는 티티카카 호수까지 보고 오는 것으로 하자라고 목표를 정했다. 사실 여행 준비는 한 달도 안 걸렸던 것 같다. 가장 문제였던 볼리비아 비자도 2주 만에 받았고, 날짜를 대충 계산해서 수크레 - 라파즈 왕복 비행기 표를 예약했고, 그 외에 들르고 싶은 도시를 블로그로 조금 살펴보고, 끝이었다. 2주는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고 챙길 것도 많이 없지, 그렇게 대충 배낭을 꾸리고 아무 걱정도 대책도 없이 떠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는 내 몸과 마음의 고달픔과 피로로 돌아왔다. 큰 사고나 사건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아찔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여행사 삐끼를 따라가거나, 모르는 사람과 택시에 동승하고, 어두운 밤거리를 혼자 다니고, 도착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호스텔 예약을 하지도 않고(밤에 도착할 경우 반드시 호스텔을 예약하고 바로 호스텔로 이동할 것 - 이것도 나름의 철칙이었다.), 감히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시도했고, 한적한 터미널 길거리에서 밤을 보내는 등의 이런 위험천만한 일들을 해버렸다. 이런 일들은 여행 중에 절대 삼가야 할 일들로 나름의 철칙을 세웠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해버렸다.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문제가 생겨도 거의 어떻게든 해결이 되는 편이다. 그래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점점 잃어가고 마음 가짐과 경계가 느슨해지기도 한다. 배낭여행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의 경우 짧게 떠나는 여행에 대해서는 준비가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나 홀로 배낭여행을 자주 떠나기도 하고, 배낭여행 경력이 십여 년이 훌쩍 넘다 보니 1~2주 정도의 여행은 아주 가볍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하루를 떠나든 한 달을 떠나든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한다. 준비가 부족하거나 소홀한 여행은 여행의 즐거움을 앗아간다. '여행하면서 준비하면 되지 뭐.'라는 안일한 생각이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고 피로감과 여행 후의 추억에 그늘이 지게 만든다. 같은 장소에 갔지만 모두 각자 다른 느낌과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는 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것은 배낭여행은 그저 훌쩍 떠나고 싶을 때 무작정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계획을 해야 하고 수많은 변수에 대응할 수 있는 정확하고 알찬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 없으니 다니면서 검색해서 바로 정보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이 안되면 아무것도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남미는 인터넷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역시 우유니였다. 소금사막의 일출과 일몰도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지만 함께 동행했던 이들과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고산병의 고통과 여행의 피곤함 속에서도 웃으며 즐길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이 만들어진 곳이다. 여행은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지금까지 내가 안전하게 배낭여행을 해 왔던 것은 위험한 일은 하지 않고 가지 말라는 곳엔 가지 않고, 어두워지면 무조건 숙소로 들어가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주 기본적인 것이지만 여행을 하다 보면 지키지 못할 경우가 무단히 발생한다. 게다가 다행인 것은 내가 오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배낭여행은 좋아하지만 오지로 들어가 고생하고 생소한 체험하는 것은 싫어하기 때문에 되도록 피하는 쪽이다.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체험하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안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은 여행을 하며 불안전한 것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다시 한번 깊이 반성을 하며 다음 여행엔 철저한 준비를 하고 떠날 것을 다짐했다.
며칠 후 사막 여행을 같이 했던 A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마존 여행을 가서 죽을뻔하다 살아 돌아왔다고 축하해 달라고 했다. 악어를 보러 갔다가 악어에게 잡혀갈 뻔했다는, 수풀을 헤치고 아마존 강을 헤엄쳐서 내려가는데 강물이 흙탕물 같았다는 등 정말 정글의 법칙을 찍고 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내심 정말 같이 안 가기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여행 리스트에서 아마존 여행을 말끔히 지웠다.
*2017년 1월 22일 ~ 2월 8일까지 반짝반짝 빛나는 길에 대한 기록
반짝반짝 빛나는 길: 살타(Salta_Argentina) - 아타카마(Atacama_Chile) - 우유니(Uyuni_Bolivia) - 코파카바나 티티카카 호수(Copacabana_Bolivia) - 라파즈(La Paz_Bolivia) - 수크레(Sucre_Bolivia) - 아순시온(Asuncion_Paragu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