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길, #14. 볼리비아 - 파라과이 국경을 넘어
이제 버스를 타고 한숨 자고 나면 파라과이 국경과 가까운 도시가 나올 터였다. 거기서 몇 시간만 기다렸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또 한숨 자고 나면 파라과이에 도착하겠지...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서 씻고 밥 먹고 또 잘 것이다. 아니 지인한테 연락해서 한식을 먹으러 가자고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수크레 버스 터미널로 갔다. 어제 나에게 표를 팔았던 아줌마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표를 보여주니 승차 명단에 이름을 적어주면서 나한테 친구가 생겨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자세히 들어보니 이 버스에 외국인 여행자는 나 혼자였는데 오늘 다른 외국인 여행자가 표를 사서 너희를 나란히 앉도록 자리를 배정했으니 둘이 친구 하면서 좋은 여행 하라. 뭐 이런 말이었다. 그때 약간 느낌이 싸~했다. 왜 외국인 여행자들이 이 버스를 안 탈까...? 보통 버스에서 배낭 여행자 세네 명 정도는 만날 수 있는데... 게다가 이틀에 한 번 꼴로 출발하는 버스라서 분명히 배낭 여행객들이 좀 있을 텐데... 이상했다. 그래도 다른 한 명이 있다니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아줌마가 말한 외국인 여행객은 키가 아주 큰 프랑스인이었다. 그도 어지간히 배낭여행에 찌든 모습이었다. 우리는 간단히 통성명하고 목적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파숑이라는 그 남자도 파라과이로 간다고 했다. 아순시온을 지나서 이과수 폭포를 보고 아르헨티나로 넘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난 아순시온에 살고 있고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다행히도 그와 나의 짧은 영어 실력은 긴 이야기를 나눌 정도는 아니어서 그쯤하고 서로 할 일을 했다. 차 안은 이내 어두워져서 잠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버스표를 팔았던 아줌마의 배려로 우리 좌석은 다른 좌석 칸에 비해 조금 넓은 듯했다. 자다가 추워서 일어나 보니 파숑의 긴 다리가 침낭에 싸여서 길게 쭉 뻗어 있었다. 침대버스도 아닌데 거의 반은 누운 자세로 언제 꺼내 덮었는지 침낭까지 둘둘 말고 있었다. 하긴 처음 봤을 때 그의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가 조금 걱정되기는 했었다. 그렇게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었고 버스는 어느 정류장에 잠시 멈췄다. 거기에서 바구니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과 엠빠나다 같은 것을 담아 팔러 다니는 사람들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 밖에서도 소리를 지르며 자기 꺼를 사라고 난리들이었다. 볼리비아 엠빠나다 중에 오븐에 구운 것은 속에 육수가 들어있어 촉촉하고 겉은 바삭하니 맛있다는 소릴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하나 먹어보기로 했다. 정말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뜨거운 육수가 흘렀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파숑에게 먹을 거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아침을 안 먹는단다. 혼자 줄줄 흐르는 육수를 수습해가며 얼른 먹어 치웠다.
14시간 만에 버스에서 내렸다. 온몸이 쑤시고 꼬리뼈가 너무 아팠지만 불평할 틈도 없이 배낭을 찾아 메고 파숑과 함께 매표소로 향했다. 버스 터미널은 작았지만 안은 깔끔하고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파라과이 가는 표를 팔지 않았다. 몇 군데의 버스회사 매표소를 거쳐 겨우 정보를 얻어냈다. 매표소 건물 밖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작은 매표소가 또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에서만 파라과이행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과연 나가서 돌아가니 길가에 매표창구가 두 개 보였다. 그런데 둘 다 문이 잠겨져 있었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아순시온행 2시'라고 적힌 종이 안내판이 보였다. 나는 호들갑을 떨며 찾았다고 그리고 2시 버스면 세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고 파숑에게 들뜬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한숨 돌리려는데 파숑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 종이 표를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에는 'AM'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이건 뭐지? AM이면 밤? 새벽 2시?! 그렇다. 그 버스는 새벽 두 시에 출발하는 버스였다. 우린 수크레에서 1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와서 거의 아침 10시에 버스에서 내렸고 지금은 11도 되지 않았는데... 14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악... 소리가 나면서 동시에 너무 짜증이 났다. 이래서 다른 배낭여행자들이 없었구나... 싶은 생각과 수크레의 그 매표원 아줌마는 왜 이 이야기를 미리 해주지 않아서 이 고생을 하게 만드나... 이런저런 생각에 짜증이 밀려왔다. 파숑도 멘붕인 것은 마찬였다. 우린 한참 동안 말없이 배낭에 기대어 앉아 서로의 멘털을 재정비했다. 나는 다른 매표구로 가서 파라과이로 가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 했으나 아르헨티나로 가는 버스가 있긴 한데 내일 밤에 출발하는 버스였다. 이렇게 보면 이 버스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며 방법을 찾다가 파숑이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 타고 파라과이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파라과이 국경으로 통하는 큰 도로가 있는데 거기 가면 파라과이로 가는 차들을 얻어 탈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른 방법도 없고, 할 것도 없으니 우선 파숑을 따라가기로 했다. 여행 중에 절대 위험한 짓은 하지 않기로 했는데 위험천만한 히치하이킹을 하려 하다니... 이번 여행은 정말 뜻대로 되는 것도 없지만 스스로의 금기를 너무도 많이 깨고 있다. 그래도 일단 가보자하며 파숑을 따라 큰 배낭을 메고 걸었다. 걷다가 보니 시장이 나오기도 하고 사람이 구름처럼 모인 버스 정류장이 나오기도 했고 또 한적한 골목이 나오기도, 잡초가 무성한 흙길이 나오기도 했다. 우린 시장 근처의 빵가게에서 빵과 물을 샀다. 아침과 점심인 셈이다. 정말 '하루 5불 배낭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배낭을 메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었더니 기진맥진해졌다. 명색이 배낭여행자지만 큰 배낭을 이렇게 오랜 시간 메고 다닌 건 거의 처음이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배낭을 숙소에 벗어던져 놓으니까 이렇게 오래 메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큰길 옆에 있는 주유소에 도착했다. 나는 숨을 고르며 쉬고 파숑은 주유소에 가서 길을 물어보았다. 주유소 끝에 큰 사거리가 보였기 때문에 어느 길이 국경으로 가는 길인지 정확히 알아야 했다. 파숑이 찢어진 종이 박스를 들고 돌아왔다. 그가 가리키는 길 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큰 트럭들이 지나가기도 하고 정차해 있는 것도 보였다. 우리는 도로가의 작은 가로수 얕은 그늘 아래 배낭을 내려두고 쉬었다. 파숑이 볼펜을 꺼내 들고 'PARAGUAY GO'라고 크게 쓰고 검게 칠했다. 다 완성한 그는 나에게 들어 보이며 씩 웃었다. 나는 엄지 척을 해주었다. 그 후로 우린 번갈아 가며 그 판을 들고 도로가에 차가 지나갈 때마다 손을 들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도 우리를 태워주는 차는 없었다. 한참만에 큰 정유 트럭이 정차를 했다. 운전기사는 차에서 내려 주유소로 갔다. 주유소에서 돌아오는 그에게 파숑이 달려가서 뭐라 뭐라 사정하는 듯이 보였다. 한참만에 파숑이 아주 다급하게 돌아왔다. 그리고는 '저 차가 파라과이로 가는데 차에는 한 명만 탈 수 있는 자리밖에 없대. 어쩌지?' 하면서도 그는 이미 자기 배낭을 챙길 준비를 한다. '그래? 그럼 네가 타고 가. 난 기다렸다가 버스 타고 갈게.' 했더니 그는 약간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하더니 쿨하게 배낭을 메고 나에게 그 종이판을 주면서 '너에게도 행운이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우린 서로의 행운을 빌며 바이 바이 손을 흔들었다. 그가 트럭에 타고 손을 흔들고 떠날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나도 떠나는 트럭에 손을 흔들어주고 배낭을 챙겼다. 땡볕에 몇 시간을 앉아 있어서 살이 따끔거렸다. 얼굴은 아마 벌겋게 익어있을 것이 틀림없다. 끊임없이 발랐던 선크림도 가방에 넣고 파숑이 준 종이판도 챙겨 들었다. 처음엔 가다가 휴지통에 버려야지 했는데, 혹여 파숑같은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니 우리가 있었던 자리에 종이판을 두고 큰 돌이 찾아 올려두었다. 혹시나 누군가에게 필요할지도 모르니...
터미널로 돌아오니 5시가 다 되었다. 그래도 시간은 잘 간다는 생각에 몇 시간 남지도 않았는데 호스텔에 들어가 가도 아깝고 그냥 배낭만 맡기고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매표소에 가보니 다행히 문을 열어 놓았다. 파라과이 표를 달래서 샀는데, 매표소 직원이 딱 한 자리 남았다며 운이 좋은 거라며 약간 거드름 피우듯 표를 내주었다. 그런데 표 가격이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거의 100달러 가까이 되는 돈이었는데, 있는 볼리비아 돈을 다 긁어 모아도 조금 모자라서 달러도 같이 끼워서 어째 어째 계산을 하고 볼리비아 돈 몇 푼이 남았다. 그걸로 저녁은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고 나면 이제 진짜 돈 한 푼 없는 거지 꼴이다. 물론 비상용 달러가 조금 있긴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비상용이다.
아주 작지만 그래도 나름 번화가가 있고 광장과 공원이 있다는 시내로 가서 쇼핑몰과 시장을 구경하고,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저녁 식사를 했다. 그러고도 해가 지지 않은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터미널로 돌아갔다. 저녁 9시쯤 되니 거의 불을 켜 둔 상점도 없고 길도 너무 어두워져서 터미널 밖으로 나가기가 겁이 났다. 터미널에서 몇 시간만 견디면 되겠지 했는데 10시가 되니까 터미널 문을 닫는다고 나가란다. 헉! 그럼 난 어떡하란 말인가... 터미널 앞에 있는 아주 불량해 보이는 호스텔로 들어가서 두 시간만 있을 수 있는 방이 있냐니까 없단다. 그럼 하루 밤 있는 것은 있냐니까 있단다. 그런데 계산은 달러도 안되고 카드도 안되고 볼리비아 화폐 볼(Bol)만 된단다. 시내로 가서 현금지급기를 이용해서 볼리비아 화폐를 뽑아서 계산할 수밖에 없는데, 이 시간에 시내로 걸어가기도 또는 택시를 타고 가서 돈을 뽑아오는 일도 위험한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로비(카운터가 있고 의자와 짧은 소파가 있는 좀 좁은 곳)에 좀 앉아있으면 안 되냐니까 안된단다. 주인 남자는 나보고 나가라는 듯이 열쇠를 흔들어 댔다. 내가 나오자 주인은 유리로 된 입구 문을 잠궜다. 영락없는 거지 꼴이 되었다. 다른 곳으로 갈 엄두도 안 나고 그냥 그 호스텔 계단에 앉아서 두세 시간을 버텨야 했다. 그나마 그곳이 가장 밝은 곳이었다. 인적도 없었고 다른 불 빛도 거의 안 보였다. 가끔씩 어디서 나타나는지 개들이 어슬렁 거리며 지나갔다. 정말 최악의 밤이었다. 인정머리 없는 호스텔 주인은 끝까지 그 작은 로비에서 기다리란 말을 하지 않았다. 텅 빈 로비가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그나마 불을 끄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여행 중에 겪은 사람 중에 가장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가고 드디어 버스 출발 시간이 되었다. 당연히 버스는 제시간에 오지 않았다. 여기가 출발지가 아니고 정류지여서 다른 곳을 들르고 들러서 여기로 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늦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다행히 버스 출발 시간 한 시간 전에 매표소 직원이 나왔고 매표소에 불을 켰다. 다른 승객도 몇 명 모여들었다. 배낭을 찾아 메고 거의 30분가량을 더 기다렸더니 덜컹대며 버스가 한 대 왔다. 디오스 미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버스가 도착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되고 낡은 시내버스 같은 버스였다. 안에 타니 사람들이 빽빽이 앉아 있었다. 모두 볼리비아인이나 파라과이인으로 보였고 만차였다. 딱 봐도 배낭여행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였다. 시큼하고 탁한 공기를 지나 좌석 자리를 찾았다. 창가라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는데 좌석의 스프링이 바닥까지 꺼지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 탄 볼리비아인인지 파라과이인인지 모를 덩치 큰 아저씨는 내 자리를 자꾸 침범했다. 창문이 열려있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벽 쪽으로 최대한 붙어 앉았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좌석의 스프링은 바닥을 향해 꺼지고 딱딱한 판자가 느껴졌다. 이러고 9시간 넘게 달려야 했다. 모든 걸 체념하고 감사히 받아들이며, 이 버스가 무사히 아순시온에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는 국경에 도착했다. 작고 초라한 국경 사무실에서 간단한 출입국 절차를 마치고 버스에 탔다. 버스가 출발하려다 다시 서더니 사무소 직원과 파숑이 버스에 탔고 운전기사와 뭐라 뭐라 이야기했다. 파숑이 낙담한 표정으로 버스 좌석을 둘러보았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고 앞에서 세 번째 자리인 내 앞으로 그는 한 걸음에 왔다. 그리고는 아주 빠르게 자기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이유를 말했다. 즉, 그 트럭을 타고 국경까지 왔으나, 여행객은 트럭을 타고 입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국경을 건널 때 교통수단도 신고하는데, 버스표를 살 때 여권을 확인하고 꼼꼼히 기록하는 것도 이 때문인 듯했다.) 누가 봐도 파숑은 유럽인 배낭여행객 같아 보였는데, 그래서 국경에서 통제를 받고 그 트럭은 그대로 떠나고 파숑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서 출입국사무소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버스에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버스기사와 뭐라 뭐라 이야기하더니 파숑에게 바닥에 앉아서라도 가겠냐고 물었고 파숑은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운전기사는 현금으로 당장 결재하라고 했는데, 파숑은 돈이 부족했다. 달러도 없고 볼리바아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순간 나는 내 비상금 30불을 생각했지만, 내가 30불을 빌려준다 해도 돈은 부족했다. 하는 수 없이 파숑은 쓸쓸한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려야 했다. 차창 밖으로 그에게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거기서 돈을 인출해서 버스를 탈거라고 했다. 그래 이제 트럭은 절대 안 돼! 그 뒤에 그가 어떻게 파라과이에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고생을 엄청했으리라. 그러니 여행 중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은 가면 안된다. 특히 배낭여행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은, 오지 체험이 아닌 이상 우선 주위에 배낭여행객이 없으면 루트에 대한 의심을 해봐야 한다. 파라과이 차코를 통해 아순시온으로 가는 이 버스도 그렇다. 모두 현지인들이 어쩔 수 없이 타는 버스인 듯 보이는데, 굳이 여행자들이 이 길을 택하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었다. 차가운 뭔가가 얼굴을 때려서 눈을 떠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창문을 닫으려고 온 힘을 다해 당겼으나 창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옆에 아저씨는 내가 아무리 낑낑대며 창문을 닫으려 힘을 써도 도와주지 않았다. 다른 칸의 창문을 보니 거의 다 열려 있었다. 아마 전부 고장 났거나 닫지 못하도록 해 놓은 것 같았다. 고장 났을 가능성이 더 컸지만. 하지만 버스가 비포장 도로를 들어섰을 땐 먼지가 차 안으로 들어와서 정말 숨을 못 쉴 정도였다. 아침이 밝아오고 그런 비포장도로를 버스는 한참을 달렸다. 나는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만 내놓았다. 눈도 따가워서 계속 감고 있었다. 버스는 또 어찌나 흔들리는지 뒤집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비포장도로가 끝날 때쯤 어떻게 준비했는지 보조 운전기사 아저씨가 아침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아침식사는 정말 놀라웠다. 큰 닭다리와 기름에 볶은밥이 도시락 가득 들어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밥을 어떻게 먹으라고 이렇게 거나한 아침을 주나... 차라리 빵이나 한 조각 주지. 그런 내 마음이 통했는지 아저씨가 빵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바구니에서 치빠(파라과이 전통 빵) 꺼내서 하나씩 나눠주었다. 나는 도시락은 반납하고 치빠와 주스를 마셨다. 입 안에 먼지와 함께 빵이 씹혔다. 배고픔은 차치더라도 얼른 이 버스에서 내리고 싶었다.
버스는 끝없는 들판을 지나며 비포장과 포장도로를 번갈아 달리다 드디어 아순시온에 도착했다. 아순시온의 낡은 건물들이 멀리서 보였을 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어마 무시하게 덜컹거리고 삐걱거리는 버스를 타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시는 파라과이 차코를 통과하는 버스는 타지 않으리라, 누군가가 탄다고 하면 절대로 타지 말라고 말리리라 다짐하며 배낭을 택시로 옮겨 실었다. 집에 오자마자 배낭을 내던지고 샤워하는 것으로 보름 동안 고달팠던 사막에서 호수까지의 여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