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기 #2
최고의 오지라퍼
한때 대학 시절 최고의 오지라퍼 중 한 명이었다. 과 학생회장을 하고, 여러 활동들을 함께 하며 학교 안을 걸을 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왜냐면 지나가는 아는 사람이 너무 많아 계속 인사를 했어야 됐기 때문이다. 사람이 좋고,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고 외쳤었다. 없어졌던 학생회를 다시 살리고, 많은 사람들의 감사 인사와 수고했다는 이야기를 원동력으로 활동했다. 나 자신보다는 우리 조직을,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며 살았던 시절이었다. 사람 냄새나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가진 재산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인간관계 같았다. 다들 예상하듯이 사실 이런 이상적인 상황이 그리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책임질 것처럼 날 끌어들이고 데리고 다니며 모든 걸 알려줬던 선배의 배신 아닌 배신과 시간이 지나 서로의 관심사가 어긋나고, 먹고살기 위한 노력에 천착할 수밖에 없어진 우리에게는 더 이상 의미 있는 관계라는 건 없었다.
E에서 I로
한 번도 내향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았지만 관계에서 오는 타격감이 점점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나는 마음의 문을 닫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그리 모질게 닫진 못했다. 매번 이번은 다르겠지라는 쓸데없는 희망을 멍청하게 가졌다. 이젠 기대하고 실망하기 전에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는 연습도 충분히 되었고, 굳이 오지랖을 떨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도 않는다. 이 모든 걸 스스로 깨닫고 극복하는 과정은 적어도 몇 년은 걸린 것 같다. 그 과정은 사실 수많은 소주 병과 눈물, 속 쓰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나의 MBTI의 첫 글자는 E에서 I로 바뀌었다.
정리할 건 정리하자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와의 관계까지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날 보며, 내가 문제인지 그 친구가 문제인지 정말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었다. 사실 이제는 누가 문제였는지 보다는, 그 친구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 한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의 자유분방함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답답함으로 바뀌었고, 내가 어렵게 이루어 놓았던 성과물들은 그에게 책임이 넘어간 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그 친구는 내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면 지금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난 매번 참았고 그 친구는 애초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쌓인 건 나 홀로였고, 답답한 것도 나 혼자였다. 정리도 나 혼자 하면 됐다. 여전히 그 친구는 내가 왜 관계를 정리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고 돌아다닌다. 사실 한 번 자세하게 설명도 했지만, 기억을 못 하더라. 그마저도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 이제는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부분이 있다. 덕분에 정리할 건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