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달리기를 돌아보며 ...
오늘도 달린다.
내가 오늘 이렇게 달릴 수 있는 건, 모두 ‘처음 달리기’ 덕분이다.
달리기는 남편이 먼저 시작했다. 그는 달리기로 지인분들과 동네에서 한인 마라톤 클럽을
만들었다.
매주 일요일 새벽에 모여 마라톤 회원들과 달릴때에도 나는 달리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저 옆에서 아이들이랑 강아지랑 걸으며 산책하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후배는 마라톤 대회 글씨가 쓰인 언더아머 티셔츠가 탐나서 마라톤
대회에 등록했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남편의 첫 마라톤 대회 날!!
자는 아이들을 깨워 새벽에 주섬주섬 챙겨서 응원하러 갔다.
난생처음, 마라톤 대회라는 걸 가까이서 보게 된 나는 달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 우리 아이들보다 더 어린 아가들도 유모차에 태워 엄마나
아빠를 응원하러 나온 걸 본 그날의 충격이란.
특히 젊은 엄마들이 달리고 아빠랑 아이들이 응원하는 모습은 더 보기 좋았다.
달리는 사람들도 응원하는 사람들도 하나가 되어 열기로 가득했다.
내가 달리는 것도 아닌데 응원하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 이날 ‘나의 달리기에 대한 꿈’이 생긴 것 같다.
그 이후도 나는 응원부대로 마라톤회에서의 임무를 잘해냈다.
여느 때와 같이 아이들과 걸으려는 나에게 같이 한번 달려 볼래?라며 남편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덥석 남편의 손을 잡았다.
내 맘속에는 이미 마라톤에 대한 열망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가 올해가 10년 되는 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그냥 상투적인 말이 아니었다.
돌아보니 내 삶은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2014년 3월 15일 워싱턴 디시에서 열리는 ROCKNROLL 해프 마라톤을 위한 준비로
2013년 겨우내 열심히 달렸다.
운동을 해본 적도 없는 나는 모자 쓰는 것도 어색할 정도였다.
이때의 나는 여전히 집에서 틈만 나면 뜨개랑 베이킹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과연 잘 달릴 수 있을까?
2013년에서 2014년으로 넘어가는 그해의 겨울은 오로지 해프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훈련을 했다.
마라톤 동호회 분들과 일주일에 두 번씩 공원 오픈 전인 새벽 5시에 쪽문에서 만나 내가
이름 붙여준 RUNNER'S LAKE 를 돌고 돌고, 또 돌았다.
해드라잇을 머리에 매고 달리다 보면 어느덧 해가 뜨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 장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멀리 해돋이를 보러 가지 않아도 가까이서 빨갛게 뜨는
해를 볼 수 있다.
고요한 가운데 달리는 우리의 숨소리만 들린다.
달리기 전에는 늘 고민한다.
재킷을 입고 달릴까? 너무 추운데...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민한다.
니트 모자를 쓰고 달리면 나중에는 머리에서 나는 김이 얼어서 하얗게 변한다.
모자 밑으로 나온 머리에는 고드름이 열리고~
달리고 난 후의 뿌듯함을 이미 알고 있는 나는 그냥 달리고 또 달린다~~
주중에는 남편과 동네 언덕 훈련을 했다.
그해 겨울은 나의 달리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겨울이었다.
드디어 마라톤 당일!!
2014년 3월 15일 워싱턴 디시 ROCKNROLL MARATHON& HALF MARATHON 나는 해프 마라톤, 남편은 풀마라톤을 등록했다.
달리기를 하기 전의 마라톤 대회날은 완전 축제의 시간이다.
두려움 반 기대 반 설렘을 안고 출발했다.
남편은 옆에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말과 농담을 하는데 나는 속으로 그냥
조용히 달리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때의 내 심정은 그랬다. 속으로는 '입 좀
닫아줘 .내가 왜 달리기하는 남편 만나 달려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별별 생각을 다
했다. 그러나 조금 더 달리다 보니 이른 아침부터 응원 나와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마음이 정말 고맙게 생각되었다.
언덕을 올라갈 때 남편이 내 등 뒤에 손가락을 대고 밀어주는 흉내를 낸 것뿐인데도 엄청
힘이 되었다. 고마운 마음도 들고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 손가락 법칙은 내가 마음에 담고 잘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해프와 풀의 갈라지는 지점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고 각자의 길을 갔다.
나머지 길은 오롯이 나만의 발걸음과 나만의 생각과 의지로 달려가야 하는 길이었다.
그동안 연습한 대로 호흡도 해보고 팔 동작도 다시 해보고 보폭도 정비하고 남편은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나보다 두 배를 달려야 하는데 나랑 달리느라 시간이 늦어져서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하면서 달리다 보니 사람들의 함성이 크게 들리는 것이다. 피니시라인이
가까이 왔다는 소리다.
도착하는 사람의 이름과 지역 번호등을 사회자가 불러주고 있다. 사람들의 응원은 더
열기를 더하고 "HYUN 얼마 남지 않았어, 너 너무 잘하고 있어, 멋지다!"라고 내 이름을
부르며 응원해 주는데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다. 어떻게 저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알지?
했는데 빕넘버에 적힌 걸 보고 응원을 해주는 것이었다. 감동이 넘쳐흐르는 곳!
내가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이유 중 하나다.
이날 받는 응원의 힘으로 평생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감동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마라톤 대회 응원 나가는 것도 좋아한다. 나가서 목이 터져라. 응원한다.
달리는 사람들과 응원하는 사람들과의 하나됨!!
피니시라인이 보일 때의 황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드디어 피니시라인을 밟고 메달을 목에 걸고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쳐다본다.
해냈다!! 드디어!!
풀마라톤을 마친 남편과 만나 서로 꼭 안아주고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등 두드려 주었다.
우리 마라톤 회원 전원이 완주했다는 기사가 지역 신문에도 났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도 전화를 드리고 식구들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대단하다 했다.
어릴 때부터 알던 친구들의 반응은 누구보다도 뜨거웠다.
나의 체육 시간을 함께한 친구들이기에….
'친구들아 나를 보고 희망을 가져!!'
나의 달리기 인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달다리 부부의 즐기며 오래 달리기~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To Be Continued~!
나에게는 남편이 달리기를 시작하게 해주었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의 작은 꿈들이 많이 퍼져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