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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Mar 21. 2019

그 돈부리 가게가 노 아재존이 된 이유

문학 아재들에 대한 귀여운 패러디입니다ㅎ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감성적이었다. 이상하게 걔는 감성적이었다. 울기도 잘 울었고 웃기도 잘 웃었다. 남자애 같지도 않았다. 얼굴도 이쁘게 생겼는데 여자애들하고만 놀았다. 남자애들은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안전한 여자애들하고만 놀 거야!" 남동생은 매일 나에게 놀아달라고 칭얼댔다. 특히 남동생은 종이인형을 갖고 노는 걸 너무 좋아했다. 말도 안 되는 요정나라 공주이야기를 잘도 따랐다.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해 전개를 가끔 엉망진창으로 만들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너랑 안 놀아" 하면 눈물을 흘리며 "누나 나랑 놀아줘"라고 매달리곤 했다. 정말 감성적인 아이였다.

결국 그 애는 감성을 살려 작가가 되었다. 다만 어린 시절에는 발현되지 않았던 그 애의 남성성은 약간 이상한 방향으로 성장해, 모든 장면이 에로틱하기만 한데 글 잘쓰는 척에다가 맨스플레인이 심한 문학 아재의 감성으로 피어났다. 처음에는 그정도는 아니었다. 그 애가 재미있게 읽히는 글도 많이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차례 상을 받고 나자, 그리고 상을 받은 글들은 모두 어이없을 정도로 에로틱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자 그 애는 폭주하기 시작했다. 모든 글에서 주인공이 뜬금없이 에로틱하게 뜬금없는 여자랑 뜬금없이 섹스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이상했다. 게다가 표현 묘사도 길고 생생했다. 굳이 이런 상황에 이런 장면을 넣어야 하나? 성적 대상화가 너무 심한 것은 아닌가? 여성을 도구로 이용하는 표현이 난무한 것은 아닌가? 나는 줄곧 그런 의심을 품었으나 그 애의 글은 승승장구했다. 문학 아재들은 그에게 찬사를 쏟아냈으며 그 애는 어느 순간 우리 시대 최고의 한국작가 반열에 올랐다.

안타깝게도 내 글은 그렇게 빛을 보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에로틱한 글을 못 쓰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갑자기 진행되는 섹스를 떠올릴 만한 상상력도 부족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이상한 상황을 마주한 적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런 걸 글로 옮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문학 아재들에겐 그런 상황이 일상이 되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모든 인정을 포기하고 절필을 선언, 돈부리 가게를 개점했다. 내가 만든 돈부리는 옛날부터 맛이 그리 좋았으니 말이다. 곧 나의 돈부리 가게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일단 맛이 좋은데다가 가게의 그릇과 인테리어가 이뻤고 나의 인스타그램 홍보력도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가게는 2030 여성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유명해졌고 2030 여성들은 대학생부터 직장인 가정주부 할것없이 모두 내 돈부리 가게 앞에 줄을 섰다. 근데 어느날부턴가 문학 아재들도 내 돈부리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가게를 찾아온 그들은 자연스럽게 2030 여성 손님들에게 말을 걸었다. 몇몇 문학 아재의 방문이 입소문을 탄 것인지, 내 가게를 방문하는 문학 아재의 숫자는 기하 급수적으로 늘어만 갔다. 내가 만든 돈부리를 맛본 그들은 이 돈부리에게서 "소녀의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움" 그리고 "젊은 처녀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샘물같은 따뜻함"이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또 한편으로는 "생전 할미꽃과도 같던 우리 어머니께서는 이 돈부리가 그리도 좋다고 하셨는데, 돈부리 한 그릇 못 사드린 이 불효자 이제사 사과 드립니다"라느니 "돈부리를 사 왔는데 왜 먹지를 못했니, 왜 먹지를 못했니... 이년아... 괴상하게도 그날은 운수가 좋더니만...!"하며 갑자기 돈부리를 처먹다 말고 우는 문학 아재들도 있었다.

이런 문학 아재들은 돈부리집에서 소주를 너댓병씩 까대고는 나 혹은 자리를 피하려는 2030 여성 손님의 손을 슬그머니 붙잡고 "문학과 예술이라는 것은 말이지, 젊은 처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여긴 기본안주가 없나?" 하며 맨스플레인을 해 대곤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기분이 매우 ㅈ같아 졌다. 어떻게 'ㅆ같다'보다 'ㅈ같다’가 더 빡침을 표현하는 욕설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상황이 매일 연출되었다. 결국 매출의 대부분을 책임지던 2030 여성 손님들의 발걸음이 줄기 시작했다. 트위터에서는 불매 운동이 진행되기까지 했다. 결국 나는 특단의 조치로 가게 문 앞에 이런 문구를 써붙였다.

~개저씨 출입 금지~

그리고 나의 돈부리 가게는 다시금 쾌적하고 인기 있는 명소가 되었다. 늘 그렇듯, 돈부리에서는 소녀의 젖가슴이나 젊은 처녀의 깊은 곳이 아니라 돈부리 맛이 났다.


* 실제로 남동생의 글이 쓸데없이 에로틱해서 놀리던 와중에 더 구체적으로 놀리려고 휘리릭 써본 글으로, 남동생 외의 특정인물과는 연관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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