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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Mar 14. 2019

그런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감정쓰레기통인 것은 아닌데.

4년 전 스물세 살 여름, 나는 가장 친했던 친구와 완벽하게 관계를 끊었다.

멀어지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 많은 이유를 말했지만 내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우리가 너무 달라져버렸다는 것.

열네살 때부터 함께해온 사이였는데, 바늘에 실 가듯 1+1처럼 껌딱지처럼 늘 붙어있던 친구였는데 나는 그 친구를 그리고 그 친구는 나를 서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게 됐다. 스무살이 스물셋이 되는 그 짧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은 그렇게나 크게 바뀌어 버렸다. 우리는 서로에게 잘 지내라는 말을 했고 그 후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다.

그때 그 친구는 나한테 그랬다.

“난 너 성격을 알아. 너는 나 없어도 아무렇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가끔씩 함께했던 추억이 떠올라서, 억눌러뒀던 미안한 마음이 올라와서 장문의 카톡을 썼다 지우는 날이 나라고 왜 없었을까. 아무리 길게 잘 써봐야 보낼 용기는 없었다. 내가 먼저, 몇 년이라도 더 빨리 연락했더라면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그때처럼 '베스트 프렌드'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고, 그 분명함은 술김의 만용마저 차게 식혀버렸다.

근데 그 친구의 예상은 꽤 정확했다. 일년에 한두어번 술기운에 추억탐험에 나설 때를 제외하면, 나는 그 친구가 더 이상 내 인생에 없다는 것이 크게 슬펐던 적이 없다. 그리고 점점 더 술기운에 그 친구를 떠올리는 일도 줄어들어 갔다. 이제는 얼굴조차 희미하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학원을 다니고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다니며 같은 선생님 같은 친구들을 사귀던 시절을 지나,

다른 지역에 살면서 다른 학교를 다니면서 다른 친구를 사귀고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선생님께 배우고 다른 생각을 갖게 된 후,

우리의 대화는 이전처럼 마냥 편하지 못했고 나는 자꾸만 눈치가 보였었다. 우리는 마치 계약연애를 하는 커플마냥 서로 '베스트 프렌드'가 해야만 할 것 같은 행동과 리액션을 했다. 우리는 이렇게 이미 달라졌지만 어쩔 수 없는 영원한 친구 베스트 프렌드라서 그런 연극을 했다. 물론 함께 앉아 드라마 이야기나 남자 이야기를 하면 웃기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내면의 생각과 가치관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깊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우리는 서로 점점 눈치를 봤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대화를 하는 건 어색했고 힘이 들었다. 서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전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끝나지 않는 연극은 없다. 우리 관계는 결국 막을 내렸다. 우리는 완전히 타인이 되고 남이 되었다.

관계가 파탄나자 일상은 편해졌다. 더 이상 맞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이해하는 척 위로하는 척 받아주는 척 조언을 새겨듣는 척 하지 않아도 됐다. 베스트프렌드라면 매일같이 해야 하는 생활보고형 카톡/페이스북에 댓글 달아주기/휴가에 시밀러룩 맞춰입기 뭐 그런 것들도 더 이상 안 해도 됐다. 편했다. 정말 솔직히 편했다. 가끔씩 추억 쓰나미가 몰려오는 날 일년에 하루이틀 제외하면 나머지 날들을 너무나 잘 지냈다. 다시는 그 누구와도 '베스트 프렌드' 같은 짓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후 누구한테도 ‘가장 친한 친구’ 같은 표현은 안 쓴다.

결혼을 앞두고 수많은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내가 정리하려고 하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고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찾는 사람일 것이다. 근데 나에게 그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그냥 부담스럽기만 하다.

모든 인간관계가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만인을 좋아했고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고자 항상 노력했다. 둥글둥글한 성격과 밝은 미소로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냈고 사이좋게 지내려 했다. 비관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줄이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고 했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에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닌데, 공감 로봇이 아닌데, 니 말만 듣고 있어 줄 여력도 없는데...

왜 나는 유익하지도 않은 관계를 그리 붙잡고 있었을까. 한때 가장 소중했던 친구와의 불편한 관계도 끊어지고 나자 이렇게 평온하기만 한데, 내가 소중하게 여기지도 않는 사람들의 관계를 왜 그동안 그렇게 못 끊었던 걸까. 정말 짜증나고 귀찮아서 못해먹겠어서 선언한다. 다 끝이야.


* 2018년 여름 개인 블로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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