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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Mar 12. 2019

너의 스무살은 어땠니

나의 스무살은 너무 가난했다. 지갑, 감성, 지성, 모든 게 다.

스무 살, 20세, 갓 성인, 트웬티!

난 사실 스무살과 관련된 모든 걸 좋아하지 않는다.

뭔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나이다.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성인이 됐고, 합법적으로 술도 마실 수 있고, 화장도 해도 되고, 교복도 안 입어도 된다. 온갖 매스컴에선 떠들어 댄다. 자유의 나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 책임질 것 없이 즐길 수 있는 때, 기타 등등.


또 그렇게 띄워 준다니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다. 대학도 가고, 미팅도 하고, 이런저런 이성도 만나보는데 첫사랑도 경험하고, 그러면서 대학공부 놓치지 않고, 놀 건 또 다 놀아야 하고, 여행도 아낌없이 다녀와야 하겠지.

그러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인생이야 뭐 늘 그렇지만 스무살 땐 정말 더욱 그랬었다. 남들 다 그렇게 보낸다는 멋진 나이, 인생 단 한 번뿐인 스무살은 나에게 그닥 녹록지 못했다.

나는 그 나이에 별 추억이 없다. 나의 스무살은 너무 가난했다. 지갑도, 감성도, 지성도, 모든 게 다.

지방 소도시에서 시험문제 하나 잘 풀어서 상경한 여자애가 감내하기에 서울은 너무 무서운 도시였고 대학은 너무 잔인한 곳이었으며 세상엔 나쁜놈이 너무 많았다. 서울의 물가는 생각보다 훨씬 너무너무 비쌌고, 학교에는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예쁘고 돈 많은 애들이 드글드글 투성이었으며 세상엔 호시탐탐 여자한테 술 먹여서 어떻게 해보려는 미X놈들 투성이었다. 나도 혼자서는 처음 살아보는 건데 아빠는 다 내가 돈을 많이 쓰는 탓, 내가 과외를 못 구하고 써빙이니 카페니 따위에서 알바하느라 공부를 못하는 탓, 맨날 놀러 다니는 탓 하여간 다 내 탓만 했다. 나의 스무살은 그렇게 좌절과 자괴감과 혐오감의 연속이었다.

그 지옥 같던 스무살이 지난 이후로는 스무살을 부르짖는 영화를 소설을 노래를 다 멀리했다. 다 싫었다. 스무살이 반드시 아름답고 인생에 다시없을 소중한 시기여야만 하나? 그런 거야말로 진정한 미디어의 세뇌지. 사실 뭣도 모르고 이제 겨우 민증 들고 합법적으로 술 살 수 있게 된 성인 1년차가 뭘 알아서 그렇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가 있겠어?

며칠 전 유튜브 레드의 자동추천재생으로 김예림의 goodbye20라는 노래를 듣게 됐다. 원래 김예림을 좋아했기에 이 노래의 제목은 알았지만 굳이 들은 적은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듯 스무살과 관련된 그 모든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노래는 계속 듣게 됐다. 갑자기 스무살이 그리워져서는 전혀 아니었다.

이 노래 역시 스무살에 대한 미디어의 환상을 꼬집고 있었지만, 내 스무살과는 또 너무 달라서였다.

나의 스무살엔 숨막히는 사랑도 왔고 신세계도 열렸다. 아빠는 그 해 내내 나랑 통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엄마는 서운할 정도로 내 안부를 묻지 않았다. 스무살은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어떤 나이보다도 짜릿하긴 했다. 그 누구보다도 강렬하게 보내려 노력했고 실제로도 그랬었다. 그러나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스무살은 나에게 그렇게 기억되는 나이다. 모든 게 새롭고 짜릿했지만 정작 나는 하나도 행복하지 못했던 나이.

그래서 goodbye20를 듣는 동안, 스무살에 대한 환상을 깨 주는 점은 반가웠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조금도 공감하지 못했다. 나의 스무살은 그냥, 가난 그 자체였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지갑과 감성과 지성의 가난이 인생 최고점을 찍었던 시기. 그때를 생각하면 스무살의 내가 안타까워서 한숨만 나온다. 아마 앞으로 평생 그런 생각을 하며 살게 되겠지만. 이 글을 읽은 당신의 스무살은 행복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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