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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Oct 15. 2019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최진리(1994-2019)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의 성공에 힘입어 걸그룹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고등학교 때였다. 소녀시대의 동생 그룹이 생겼는데 그 이름이 웃기다고, 이름이 무려 f(x)인데 그럼 x값은 대체 뭐냐? 차라리 이차함수라고 하짘ㅋㅋㅋ친구들하고 뭐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 함수 중에서도 눈에 띄는 멤버가 있었다. 일단 컸고, 예뻤다. 당시 아이돌 원탑이던 지드래곤은 한 인터뷰에서 “눈에 띄는 후배”로 그 멤버를 꼽았고 순식간에 그녀의 인지도는 높아졌다. 알고 보니 아역배우 출신이네? 와, 진짜 그런데 너무 이쁘다. 이름조차 설리라니, 정말 사랑스럽다는 표현이 그만큼 딱 맞는 사람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조금씩 성장하는 동안 f(x)도 갓 데뷔한 생 초짜 그룹에서 어느새 꽤나 인지도 높은 아이돌 그룹이 돼 있었다. 그리고 f(x)의 높아진 인기와 더불어 설리를 둘러싼 논란이 시작됐다. 태도 논란, 연애 논란, 인스타 논란, 기타 등등. 나중에 설리가 f(x)를 탈퇴한 이후에는, 먼 훗날 분명 역사를 뒤흔든 황당한 논란거리 탑 10에 올라갈 만한 그놈의 ‘노브라 논란’까지 정말 별의별 논란이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나 역시 처음에 스타라는 잣대를 두고 그녀를 바라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았다. 스타라면 굳이 그런 행동을 해서 자신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조금 많은 시간이 지나 그녀를 일반적인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지 않은, 그저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이라고 생각하면 또 이해가 안 갈 것도 아니었다. 20대 초반의 우리는 모두 관종일 때도 있고, 남들 보기에 황당한 짓을 자신만만하게 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말리는 연애를 자랑스럽게 전시하기도 하고, 괜히 남을 저격해보기도 하고, 그러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었다. 스타, 공인, 아이돌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쓸데없이 너무 엄격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본인들도 그것을 전혀 지키지 못하면서 스타 공인 아이돌들에게만 엄격한 온라인 매체와 인터넷 대법관들의 대환장 콜라보로 매일매일 포털에는 그녀를 향한 무수한 악플과 성희롱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온갖 악플과 성희롱을 긴 시간 당하면서도 그녀는 팬들을 살뜰하게 챙겼던 걸로 기억한다. 가끔 접속해 봤지만, 그녀 인스타그램에는 꽤 자주 “고마워 복숭이들 사랑해”라는 멘트가 올라왔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다들 굳세게 견뎌내는 줄 알았지. 굳이 제가 움츠러들 필요는 없잖아요?라고 말하는 그녀가 진짜 강한 사람인 줄 알았지. 그 모든 논란에도 꿋꿋하게 버티면서, 누가 뭐래도 조금 멋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게 잘 사는 거라는 걸 영원히 천년만년 보여줄 줄 알았지. 그 예쁜 얼굴로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어 셀카를 인스타그램에 오늘도 내일도 게시하며 “복숭이들 사랑해” 해줄 줄 알았지. 아무도 그렇게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만큼 중증의 우울증을 갖고 힘들어했는지 몰랐지.

오늘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보고 목 뒤에 강한 소름이 끼쳤다. 그녀에 대해 평소 별달리 팬이라거나 안티라거나 하는 생각을 가진 적도 없고, 조금 특이하지만 저런 캐릭터 하나쯤 있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정도에 가끔 그녀의 예쁜 얼굴을 보며 기분 좋아졌던 한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안타까웠고 가엾었다. 발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순간의 선택이 이끄는 대로 살았다고 해서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 한참을 고통받다 이렇게 죽어야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공범이라는 말이나, 이제부터라도 악플을 근절하자는 말 같은 건 이미 다른 사람들이 많이 했으니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설리가 그곳에서는 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 예쁜 얼굴로 늘 행복하게 웃고 있으면 좋겠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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