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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Mar 17. 2020

그 남자는 전남친이 아니야(feat.여중여고여대)

내 실수였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던 귀여운(?) 사건.

나는 질투심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사실은 불같은 소유욕의 열혈여자.


사실 우리 부부는 둘 다 질투를 살 만한 일이 거의 없다. 여중여고여대 루트를 탄 덕분에 내 주변에는 전부 여자 뿐이었고, 신랑도 남중남고남대(?)를 나온 터라 문제될 이성관계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신랑에게 길을 물어본 외국인 관광객에게까지 질투를 하며 오징어 세이버를 자처했다.

"왜 굳이 우리 신랑한테 물어보는 거지? 잘생겨서인가? 쒸익,, 쑤ㅣ익,,,"

그런 불꽃여자의 남친이던 신랑은 항상 물처럼 잔잔했고, 내가 뭘 한대도 질투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사실은 그 역시 나 못지않은 열혈질투남아라는 걸 깨달은 건 몇 년 전, 대학 막학기 때 일이다.


날씨가 정말 좋은 날이었다. 삼청동 같은 데서 잘 놀고, 저녁은 동네에서 먹기로 해서 버스에 탔다. 버스엔 사람이 꽤 많아서 서서 갔는데, 그래도 우리는 즐거워했다. 그 와중에 갑자기 버스에 이 세상에 흔치 않은 ‘나의 남자 지인’이 올라탔다.

대학교 1학년 때 했던 아르바이트를 같이 했던 또래의 남성으로, 당시에는 나름 친했다. 하지만 당연히 친분은 알바를 할 때 뿐만이었고, 그 이후로는 한 번 연락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신랑 앞에서 인사를 해도 껄끄러울 것 하나 없는 관계였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당시의 나는 여중여고를 졸업해 여대에 재학 중이던 상태였다.


골목에서 남자들이 단체로 지나가기만 해도 괜히 긴장해 돌아가게 되고, 남자가 많은 장소는 이상하게 기피하게 되며 가게에서 남자 직원과 눈도 못마주치는 여중여고여대 종특 보유자로서, 예전에는 조금 친했지만 지금은 아예 하나도 안 친한 남자 사람 친구의 등장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여중여고여대가 남친이랑 함께 탄 버스 안에서 세상에 몇 되지도 않는 남자 지인을 만날 확률을 구하시오.


인사해야 하나? 인사하면 남친이 누구냐고 하겠지? 남자사람친구라고 소개하면 되나? 근데 저 친구가 날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지? 


내가 혼자 별 생각을 다 하던 매우 찰나의 순간이 지났고, 결국 인사는커녕 말도 못 걸었다. 잠시 반가운 표정을 지었던 남자 지인은 다시 당황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나를 스쳐갔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어머! 안녕! 오랜만이네! 이쪽은 내 남친이야. 오빠 이쪽은 옛날에 나랑 같이 일했던 친구인데 와 여기서 다 보네” 하고 신기한 마음 반가운 마음 그대로 드러냈으면 됐지, 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겐 여중여고여대 특유의 남자 기피증(?)이 있었고, 그건 사회 짬밥을 먹어야 사라지는 병 중 하나다. 내 스스로 컨트롤이 불가능한 것이다.


지인이 어색한 표정과 함께 스쳐가고 난 뒤 나와 신랑 사이의 공기도 괜히 어색해졌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나와 남편은 여전히 괜히 어색했다. 신랑의 태도는 어딘가 냉랭했다. ”햄버거나 먹을래?”

어...어... 구랭,,,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도 주눅이 들었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신랑은 갑자기 “화장실 좀 갔다올게” 하고 가 버렸다. 햄버거가 나왔고, 한참을 혼자 감튀나 깨작대는데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거의 10여분쯤 됐나.


대체 왜? 억울한 마음부터 들었다. 버스에서 남자 지인하고 우연히 마주쳐서 당황한 게 그렇게 삐질 일이야? 세상에 자기 같아도 당황할 걸. 억울한 마음은 터질 것 같은 방광처럼 커졌다.


한참 후에야 돌아온 그는 자리에 털썩 앉더니 나를 뚫어질 듯 째려보며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봐.”


“뭘?”


“그 새X 전남친이지? 옛날 썸남이야?”


아………


그제서야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면서, 웃음이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아니야 그런 거. 그냥 아는 앤데, 아는 남자를 이런 상황에서 본 게 처음이라 당황해서 그랬어. 나 여중여고여대잖아.”


하지만 그는 이미 질투에 미쳐 돌아벌인 상태였다.

“그 새X 뭐 하는 새X야? 무슨 기생 오래비같이 생긴 새X.”


“ㅋㅋㅋㅋ아니 ㅋㅋㅋㅋ 아니 진짜 아니라고 ㅋㅋㅋㅋ아 나 진짜 남사친이 없어서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당황한 거라곸ㅋㅋㅋㅋㅋ 아 오빠 진짜 귀엽다 ㅋㅋㅋㅋ”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무척 빡친 표정이었고, 내 말을 믿지는 않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믿는 게 속 편할 것이라 판단했는지 속아준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는 속이 타는 듯 연신 콜라를 들이켰지만…


사실 나는 묘하게 기분이 되게 좋았다. 나만 질투하는 게 아니었어. 완전 질투가 열혈남아를 넘어 불꽃남자 수준이었구만? 하하하. 어딘가 귀엽고 신났다.


어쨌든 그 날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나는 앞으로 만약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혹시 비슷한 일이 또 생길 경우에 자신있게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그런 의미에서 전국의 모든 여중여고여대 여러분 화이팅!


PS. 그 당시 매우 공감했던 짧은 영상(https://youtu.be/b6xPNJoNNrU). 부끄럼증이라기보다는 약간 다른 종(?)에 대한 어색함이랄까... 그냥 남자라는 종 자체가 어색하던 어린날이었다.


* 이 글은 허프포스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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